책 읽기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뚝틀이 2010. 11. 24. 10:10

책의 원제는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저자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치는 장하준 교수. 여기서 말하는 그들이란 '자유시장 지상주의' 신봉자들을 일컬음이고, 내용위주로 제목을 잡는다면 '자유시장 자본주의, 그 허상과 그 대안' 정도가 되겠다.

 

경제학과는 상관없는 내 입장에서 좀 과장해 표현하자면 '어쩌면 내 평소에 가졌던 생각하고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감탄이 나올 정도다. 나 자신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매인 사람들이 현학적 표현으로 꾸며낸 아전인수 궤변들보다는 나 같은 '상식적 수준 사람'들의 직관적 생각이 진리에 더 가까운 법이라는 것을 밝혀주는 이 저자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대리만족의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각 챕터의 머리 부분에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로 시작되는데, 바로 이 부분이 첫 몇 줄 운만 떼면 누구나 그 다음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일반인들에게조차 친숙한 '이론'들이고, 거기에 이어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론이 제시된다. 일종의 토론 발제 형식으로 이 상반된 이론이 각각 반 페이지씩 소개된 후, 이어 본문에서 다시 일반적 생각, 저자의 반론, 그 반론에 대한 재반론, 또 거기에 대한 저자의 반론 이런 식으로 '토론'을 이어나가며 독자가 느낄 수도 있는 생각의 허점을 하나하나 메워나간다.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그들' 주장 대부분이 도그마에 지나지 않을 뿐 실상은 그 반대라는 것을 주장하는 저자는, FTA가 왜 허상인지, 부자감세가 왜 난센스인지, 미소금융이 왜 원칙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인지, 교육인플레이션이 어떤 부작용을 내는지, 왜 기회균등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결과의 분배라는 개념이 필요한지 등등,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세뇌되어' 있는 23가지 항목에 대해 각종 통계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객관성을 벗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재조명'한다.

 

이 책의 매력은 여기에서 다루는 23가지 테마가 사실은 서로 독립적인 것은 아니고 하나의 주장이 다른 주장과 얽혀가며 결국 하나의 '사고 시스템'이랄까 '주장의 네트워크'랄까 그런 '체계'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크게 보아 하나의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방향을 제시하는 그런 느낌으로.

 

책을 읽는 동안 엉뚱한 생각을 한 번 해본다. 만일, 예를 들어, 약소국 대한민국의 서울대학교의 어떤 교수가 이렇게 정부 시책에 근본적으로 '역행하며' 경제학주류와 동떨어진 주장을 했어도 이런 반응을 받을 수 있을까? 백안시 되는 그에게 그래도 누군가가 그 연구용역을 줄까? 그런 생각을 하다, 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주류'와 대항하기는커녕 거기에 한 몫 끼어들려 애쓰는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쓴 미소를 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