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삶을 지향하는 보조교사 나르치스가 있는 수도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역시 그런 삶을 꿈꾸며 입학한 학생 골드문트. 나이가 비슷한 두 사람 사이의 우정. 상대방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부친의 소망 뒤에 숨겨진 잠재의식 속 '어머니의 부름'을 일깨워주고, 어느 날 집시여인의 유혹을 계기로 수도원 학교를 벗어나 방랑길에 오른 골드문트는 동물적 성적 탐닉의 세계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동행하던 방랑자와의 격투 끝 살인까지도 겪다가, 어느 날 눈에 띈 성모 조각상에 사로잡히게 되어 그 조각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예술세계에서의 재능도 발견하게 되지만, 다시 방랑길에 나섰다 페스트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삶과 죽음의 다른 모습을 겪고, 또 살인, 이번엔 귀족의 연인과 밀애 중 체포되어 사형을 기다리게되지만, 극적 우연으로 나르치스에 의해 구해져 수도원으로. 그곳에서의 조각가 생활, 다시 방랑, 이미 너무 늙어버린 자신을 깨닫게 되는 골드문트. 큰 부상, 다시 수도원, 결국 나르치스의 품안에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
고전소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여기에서도 그 중심은 사건의 전개가 아니라 이야기흐름의 바탕을 이루는 생각, 또 '주인공과 작가'의 대화 내용. 40년 전 손에 들었을 때, 그때 이 책 번역본의 이름은 '知와 사랑'. 이성의 세계와 감성의 세계, 아마 그런 대비의 뜻이었으리라. 하지만, 나이 57세의 헤르만 헤세가, 자신이 어렸을 적 수도원 학교를 뛰쳐나온 경험이 있는 작가가, 단지 이쪽과 저쪽의 비교라는 단선적 의도로 이런 '성장 소설'을 썼을까? 맑고 깨끗한 이성과 지성 그것만을 추구하는 나르치스, 어두운 기억을 찾아 감정이 이끄는 대로 딸려가는 골드문트, 삶의 아픔, 그 사이의 갈등과 사랑. 이들 모두 사실 하나의 인간 속에 동시에 내재하는 그런 것들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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