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책이라는 형태로 접하게 되는 당시의 시대상 생활상. 철학사, 미술사,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당대보다는 시간이 흐른 다음, '여유있는' 객관적 흐름으로 되돌아보는 인류 사고의 성장 이야기. 오늘은? 매스컴에, 그리고 또 인터넷에, 떠도는 그 모든 것이 훗날 정리되어가며 역사와 사상사의 형태를 갖추어나갈 것이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삶은? 마치 조중동이 있고, 한겨레 경향이 있듯, 시각은 두 가지. 이 정도면 됐지 뭔 말이 많냐와 아직도 이 따위냐. 당위성과 현실. 칸트가 있는가 하면 니체도 있고, 버클리도 흄도 루쏘도 있었다는 것, 오늘 이곳에도 그들의 잔영이 비추어지고 있고, 또 이 시대를 사는 사람 중의 하나인 나의 삶에도 이들이 섞여 소용돌이 치고. 로마 아니 그 이전의 시대 그 어느 때에 사람이 사람답게 산 적이 있었던가. 그 언제 당위성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상에 가까운 적이 있었던가. 요순시대? 그 전설의 시대를 읊는 한비자의 이야기 역시 오늘의 시각에서 볼 때 분명 이 시대의 사람들이 선택할만한 그런 동경의 시대는 아니었고. 로마 이후? 그 환상의 르네상스 시대 그 때에도 라파엘 드가를 안 사람이 몇 퍼센트였고, 베토벤이나 힌데미트를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여기에서 가깝던 진, 한, 수, 당, 송, 원, 명, 청은? 아무리 오늘이 불만스럽게 느껴지더라도, 인류역사 그 어느 때보다 '완벽에 가까운 자유'가 허용된 시대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그 단적인 증거가 누구나 '총리실 그 x 같은 사건'만 제외하고 본다면 자기 생각 표현에 어떤 제약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자유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진데, '남들과의 비교'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체의 본능일진데, 불만이라는 느낌은 불행이라는 느낌으로 발전하기 십상이고. 경쟁의 삶이라는 것이 하루하루를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고.... 당위성? 그것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의 동의어. 이상? 그것 역시 영원한 꿈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축구는 왜 하는가. 애써도 애써도 생각처럼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에 그 짜릿함이 즐거운 것 아닌가. 배가 끊어질 것 같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내 노력과는 상관 없이 상대방이 나보다 운이 더 좋기에 그 재미가 끊이지 않는 것 아닌가. 볼행은 불만에서 출발하지만, 그 불만을 안고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지옥이지만, 그 불만이 바로 재미의 근원이고, 그 불만 요인을 없애버리려 애쓰는 것 그것이 바로 재미를 키우는 것이고, 그런 재미로 가득할 때 하루하루가 흥미진진 신나는 날이고, 그런 신나는 삶이 결국 행복한 삶이라 이해된다면, 불만스러운 현재가 바로 내 행복의 씨앗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요순시대 로마시대엔 전혀 불가능했던 그런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이 시대.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나. 얼굴 찡그리고 마음 괴로워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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