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Samuel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

뚝틀이 2011. 1. 30. 19:23

마른 나무가 서있는 황량한 무대.

아무리 애써도 구두가 벗겨지질 않는다.

한 사람이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계속 나눈다.

이야길 나눠? 그냥 번갈아 이야기한다. 서로 상관없는 이야기를.

그러다 화를 낸다.

화났어?

우리 서로 헤어지는 게 낫겠지 않아?

글쎄, 근데, 갈 데는 있어?

참, 우리 무슨 이야기 했었지?

뭐 이런 게 있어. 그냥 덮어버려?

좀 더 읽어봐? 이거 유명하다잖아. 새뮤얼 베켓 이것으로 노벨상 탔다면서?

그냥 읽는다. 계속 읽어 나간다.

내용이 없다.

무슨 ‘단어’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꼭 우주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다.

무슨 뜻인가 담겨있는 듯, 하지만, 난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는 걸.

가만.

이거 혹시 음악 아냐?

그럴 수도 있지. 잔잔한 음악. 하지만, 음악엔 높낮이라는 것이 있지 않아. 여긴 그냥 모노톤인데.

아. 있다. 있어. 높낮이가 있어.

감정.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감정은 느껴지잖아.

화가 났는지, 체념했는지, 아니면 그냥 관조 상탠지. 또 뭔가를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인지.

드디어 변화.

C와 D의 등장.

처음엔 D가 무슨 동물인줄 알았다. 말을 알아듣잖아.

조금 지나다 보니 D 역시 사람이다. 목줄에 묶여 C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 존재.

A와 B는 짧은 소리였는데, 그것도 스타카토였는데, C 말은 길다. 참 길다. 짜증날 정도로 길다.

내 그 사이에 A와 B에 길들여졌나?

D는 없다. C의 욕지거리와 채찍소리로 그의 존재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무대에서라면 어땠을까.

참, 입장료 내고 앉아 보는 관객의 심정은 어떨까.

음악회? 그럴 수도 있지. 하긴, 무슨 심오한 대사 들으러 음악회 간다던가? 그냥 앉아 듣는 거지.

아예 한 잠 자다 나오면 어때. 그래도 음악 듣고 왔다고 마음 흐뭇하잖아.

C가 말한다. D가 춤출 줄도 알고 생각을 말할 줄도 안다고.

A는 생각을 듣고 싶은데, B는 춤추는 것이 보고 싶다.

오랜만의 타협. 우선 춤을 보고 그 다음에 생각을 듣기로.

몸 낡아버린 D의 춤은 짧게 끝나고, 생각이 나온다.

와~! 길다. 긴 문장들이다. 세상 유식한 사람 이름에 유식한 단어에 그냥 이어져 꺼질 줄 모르고 줄 줄 나온다.

이 녹음기 앵무새 끄느라 고생들 한다. 넷이 한참 고생을 한다.

C 한 참 무게 더 잡고 이것저것 더 들먹이다 떠난다. D 데리고.

우리도 이제 갈까?

아냐 Godot를 기다려야지.

아, 참, 그렇지.

E가 나타난다. 소년이다. 고도의 심부름. 고도는 내일 온다고.

춥다.

그래, 추워졌어.

그런데, 우리 만난 지 얼마나 됐지?

한 50년? 우리 이제 헤어져도 되잖아?

이젠 그럴 필요도 없어.

추워.

가자.

1막이 끝난다. 1악장이 끝난다. 2막이 시작된다.

개 한 마리가 주방에 들어와 순대 하나 슬쩍하다 주방장에 들켜서 맞아 죽고....

이게 개 노래인지 사람 빗댄 노래인지.

고도 기다리기.

눈에 띄는 D의 모자.

놀이 해볼까?

C와 D의 흉내. 욕 해봐, 욕. 더 세게.

고도다. 고도. 드디어 고도가 온다!

잘 못 봤나?

나타나는 C와 D.

C가 장님이 되어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소, 둘이 묻는다.

넘어져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C. 살려달란다. 구해달란다.

구해줘? 저건 인류가 우리에게 구해달라는 이야기 아냐?

오늘은 D에게 노래를 시켜봐? 아니면 낭송?

D가 벙어리라는 C의 말.

응? 어제까지는 멀쩡했던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소, 또 묻는다.

그 놈의 시간 얘기를 왜 자꾸 꺼내서 사람 못살게 구는 거요. 언제, 언제! 여느 날 같은 어느 날 저 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인가는 우리가 귀머거리 되겠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되었소?

사라지는 C와 D.

나타나는 소년. 머뭇거리는 소년.

고도씨 심부름이냐? 네. 오늘 밤에는 못 오겠다는 얘기겠지? 네. 하지만 내일은 온다는 거구? 네. 내일은 틀림없겠지? 네. 오다 누굴 만나지 않았니? 아뇨. 두 사람 말이다. 아무도 못 봤어요. 그래? 고도씬 뭘 하고 있니? 내 말 듣고 있어? 네. 그럼? 아무것도 안 해요.

이 짓 이제 더 못하겠다.

다들 하는 소리지.

우리 헤어지는 게 어떨까?

그래, 나을지도 모르지.

내일 우리 목이나 매자, 고도가 안 오면 말이야.

만일 온다면?

그럼 살게 되는 거지.

가자.

그러나 둘은 움직이지 않는다.

 

Theatre of the absurd 부조리극이요 Tragicomedy 희비극이란다. 기괴한 유머, 깊은 염세주의. 셰익스피어가 보았다면 무어라 말했을까.

Godot를 기다리는 두 사람 Vladimir와 Estragon. 한 사람은 어제도 여기에 왔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한 사람이 오늘은 토요일이라고 하자, 다른 사람은 금요일이란다. 어쩌면 목요일일지도 모르겠고.

Pozzo와 Lucky. 장님이 되건 벙어리가 되건 상관없이 한 사람을 시키는 사람이요 한 사람은 따르는 사람이다.

Estragon의 구두. 막 열릴 때도 벗겨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발은 점점 더 부어오르고.

Godot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또 그가 오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 단지 목을 맬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 밖에는.

Godot 그는 어제도 오지 않았고, 내일도 오지 않을 것이다. 소년만 매일 나타날 테고.

참 이상하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게 아니라, 뚜렷하게 눈앞에 무엇인가 보이는 것 같은 이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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