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Step Function

뚝틀이 2011. 2. 12. 02:31

바람도 제법 있고, 햇볕도 아직 그다지 따뜻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뚝디랑 뚝틀이 데리고 오랜만에 산책길에 나선다. 마을 쪽 길은 대충 녹았지만, 숲속 눈은 아직 그냥 그대로다. 계곡에 흐르던 물 얼어붙고, 그 위로 흐르던 물 또 얼어붙고, 폭포조차 울퉁불퉁 미끄럼틀 모습을 이루어, 마치 무슨 괴기영화의 한 장면이 불쑥 눈앞에 나타난 듯 섬뜩하게까지 느껴진다. 까만 녀석과 흰 녀석 계곡 넘어 저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다시 돌아오고, 이번에는 이쪽 산으로 달리며 신나게 뛰어노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속이 후련해진다. 찬바람, 심호흡 저절로 끌어내는 상쾌한 찬바람.

 

재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춥지는 않았다. 집 앞 평상에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 별자리 공부하던 미친 낭만의 추억이 남아있기에 그것을 확실히 기억한다. 지난겨울에는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고, 이번 겨울 역시 마찬가지다. 날씨만 이렇게 스텝함수 모양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분위기변화도 그랬고, 정치와 상관없는 내 건강함수 모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이제 계단함수처럼 불쑥 나타난 구제역 파동까지. 봄까치 광대나물 카메라사냥 나서고 싶은데, 미분 값이 마이너스 무한대로 고꾸라진 농민들 그들 생각에 마음만 무거워진다.

 

내 어려울 때마다 생각나곤 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Meister Nein. 그렇다. 그의 이름은 Nein이었다. 하긴 007시리즈 제1탄이던가에 Dr. No가 있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지만. 또박또박 로봇의 발음을 뱉어내는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똑바로 마주앉아 눈을 맞추어야 했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기능이 없었던 그.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기에, 상대방의 입과 표정을 보며 말을 알아듣고, 자신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소리까지 만들어내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었을까. 더구나, 아무나 딸 수 있는 것도 아닌,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마이스터 타이틀까지.

 

Step function 같은 삶의 변화, 그야말로 인간승리다. 출퇴근 칼날같이 시간 지키며, 여름휴가 지중해 겨울휴가 알프스를 즐기는 그의 눈에는, 머나먼 이국땅 연구실에서 밤새우기 밥 먹듯 하는 동양인의 모습이 무척이나 애처롭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무리 애써도 내 연구에 진척이 없어, 정말 모든 것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자상한 그와 이야기 나누다보면, 그런 생각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계단함수 모양의 변화가 오리라는 믿음에.

 

스티브 잡스. 뉴스를 보니, 이번에는 심상치 않은 모양이다. 시리아 유학생의 사생아로 태어나, 가난한 부모에게 입양 되고, 겨우 한 학기 만에 대학생활도 포기해야했던 그. 더구나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고, 설상가상 암 선고까지. 이 정도면 웬만한 불행의 조건은 다 갖추었던 셈인 그 역시 step function 인간승리 거둔 것 아닐까?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보았던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의 그의 연설 끝 부분. 사람은 누구나 늙게 되어있고, 그렇게 되면 젊은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이 세상에서 치워져야하는데, 여러분도 지금은 젊지만 머지않아 마찬가지 운명을 맞게 된다며 하는 말,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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