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William Shockley, 어느 '독특한' 삶

뚝틀이 2011. 2. 12. 20:52

트랜지스터의 발명으로 195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William Shockley(1910-1989). 그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음을 자랑하던 나의 지도교수를 통해 듣곤 했던 이야기들을 그냥 가십거리 정도로만 여겨오다, 1989년 내 MIT에서 겪었던 그날 기억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산망은 이메일 폭주로 완전히 다운, 연구고 뭐고 하던 일 다 접어놓고 여기저기 둘러서서 벌이던 그의 人種優生論에 대한 열띤 논쟁들.

 

지도교수의 이야기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캘리포니아 해변을 산책하다 저녁놀의 아름다움에(지금 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일몰모습도 정말 그렇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제자들에게 빛의 굴절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그 낭만을 꾸짖기도 하고, 독일인 일색인 제자들 앞에서 하도 독일인 예찬론을 늘어놓자 제자 중 하나가 당신은 영국계 아니냐고 반문하니, 예외가 법칙을 완성한다는 궤변적 명언을 뱉어내기도 했다는 둥.

 

두뇌는 확실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모양이다. 아버지는 8개 국어를 구사했고, 어머니는 스탠포드 출신이니. 런던에서 출생, 어린 시절은 팔로알토에서, 학위는 MIT, 벨연구소 연구원, 2차 대전 중 각종 군사장비도 개발, 전 세계를 돌며 그 성능 검토, 종전 후 훈장도 받고, 결국 트랜지스터 발명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위트가 넘치는 달변에, 아마추어 마술사로 학술대회장에서 청중에게 장미꽃도 선사하는 등 분위기 리더였던 그. 사실 여기까지라면 그는 존경의 대상이었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지나친 선민의식과 자아의식. 언젠가는 헐리웃의 대 스타가 되기를 꿈꿀 정도로 괴짜였던 그는 어디를 가도 자기가 중심인물이어야 했다. 트랜지스터 발명 후에도 대접이 별로 달라지지 않자 1955년 벨연구소를 사직하고(노벨상 수상은 그 이듬해), 마운틴뷰에 세워진 쇼클리 반도체라는 회사를 맡게 된다.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 모으려 제일 먼저 접촉한 곳은 당연히 자기가 있던 벨연구소. 하지만, 그의 인간성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아무도 이 회사에 오지 않자, 캠퍼스마다 다니며 스카우트 활동을 벌이며 최고 능력자들을 끌어들인다.

 

물건을 팔아야하는 사업가라는 가장 기초적인 비즈니스 개념도 없이, 그는 항상 엉뚱한 프로젝트를 진행시켰고, 정작 cash cow 역할을 해야 할 트랜스지터는 순위에 밀려, 결국 회사는 경영난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는 그는 자기가 스카우트해온 사람들의 능력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고, 그들에 대한 채찍질의 방편으로 직원들 봉급리스트를 회사의 벽에 붙여놓기도 하고, 비서의 말이 의심스럽다고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하고, 직원과 대화할 때는 자기 부인이 옆에 서서 그 내용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그 사장에 그 마누라), 점점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그의 편집증과 횡포에 견디지 못한 두뇌들은 회사를 뛰쳐나와 페어차일드를 만들고, 쇼클리는 실의에 빠져 ‘8명의 배신자’를 발표하기도 하는데, 역설적으로 이런 현상이 실리콘밸리의 원동력이 된다. 페어차일드 거기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인텔, 또 이번엔 거기서 내셔널, 또 AMD, 이런 식의 연쇄분열 밑에 깔린 ‘이념’은 ‘재주는 곰이 피우고 돈은 누가’ 식이 아니라 ‘재주도 돈도 다 곰’ 그 구조를 지향하는 것. 실리콘밸리의 실리콘은 트랜지스터의 기본 소재고, 따라서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의 기원은 당연히 쇼클리. 어쨌든, 결국, 쇼클리 회사는 설립 5년 만에 완전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우연히 이 때 그의 가족이 탄 차가 사고를 당하고, 거기에서 회복된 얼마 후 그는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가 된다.

 

말년에 그는 ‘자신의 과학적 천재성으로 인류에 봉사하기 위해’ 인종 우생학이라는 분야에 빠져든다. 그의 논지는 명료 그 자체. 우성인자의 사람들은 자식을 많이 낳지 않고 열성인 인간들의 비율이 높아감에 따라, 사람들 평균 IQ는 점점 내려가니, 결국 인류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그래서 그는 흑인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열성인자들을 도태시키기 위해서라도 IQ 100이하의 인간들에게는 강제불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천재들을 위해서는 정자은행을 만들어 자신이 직접 운영하기도 하고....

 

주변의 모든 지인들이 떠나간 그의 죽음의 자리에는 오직 아내밖에 없었고, 자식들조차 신문을 보고서야 그가 떠난 것을 알게 되었다고. 1989년, 그 전후에 있었던 베를린 장벽붕괴라든지 천안문 사태보다 더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그때 그 기괴했던 분위기가 다시 머리에 떠오른다.

'뚝틀이의 생각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이란 요인, 우리의 앞날  (0) 2011.02.16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0) 2011.02.14
Step Function  (0) 2011.02.12
천재  (0) 2011.02.10
옳은 것과 그른 것  (0) 2010.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