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한계?

뚝틀이 2011. 2. 26. 12:09

기원에 열심히 나간 적이 있었다. 오죽 했으면, 원장 내외가 우리 집에 와 설거지를 도울 정도로 가깝게 지냈겠는가. 대충 정리 끝내고 잔 기울일 때, 시작 메뉴는 당연히 '프로기사'들의 동태. 프로기사? 바둑이 본업인양 내기바둑에 빠져있는 아마추어들을 일컬음이다. 이들의 호칭? 하루 종일 기원에 둥지 틀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라면 사범, 직업 비슷한 무엇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사장.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프로기사들의 호칭은? 그들은 그저 점잖게 전문기사.

 

물론 그 '프로'들 중에는 진짜 사장도 있었다. TV에 연신 광고를 쏟아내 로고송도 제법 알려져 있는 그런 회사의 사장도. 본업보다 부업에 더 열심이다. 한참 중요한 국면일 때 걸려오는 직업상 전화에 짜증까지 내는 이들 모습을 보면, 분명 그렇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사범들의 돈벌이 대상이다. 이름 하여 황금어장. 세 판 연속으로 지거나 이기면 치수를 고치면서 두는데도, 옆에서 보기 딱할 정도로, 재산재분배의 기능에 충실한 이들의 모습 보기 딱할 정도다.

 

식당 카운터 옆에 모르는 가수의 CD가 놓여있다. 처음 보는 가수네요. 유명한 가수는 아니고, 그냥 자기를 알릴 겸 CD를 낸 사람이란다. 그러고 보니, 여기 어디에선가 만났던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 근처 ‘왕년에 이름을 날렸던 가수’들이 하는 카페 그 두 군데 중 하나였었나? 바둑세계의 입단대회 식으로, 가수의 세계에도 그런 비슷한 관문이 있을까?

 

그런 관문이 있건 없건 어느 분야에든지 상중하의 세 계급이 있다. 일단 어느 분야의 프로라 일컬어지는 사람들 중에서도 역시 세 부류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의 '진정한 프로', 출중하기는 하지만 독보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보통 프로', 또 뭔지도 모르고 허우적대는 '겉모양 프로'. 출발점에서는 다 비슷비슷하게 보였을 사람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갈라지게 되는 것일까.

 

당연히 유전적 요인, 다른 말로 선천적 재능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정말 그럴까? 거기에 하나 더, 훈련이라는 요소의 추가. 그래? 우리 삶에서의 성공요소는 유전적 요인과 훈련? 가장 중요한 관점이 빠져있다. 가수건 기사건 또 변호사 의사 건설현장 종사자 그 누구건 마찬가지로 머리를 쓰는 동물 그것이 사람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지레 겁먹고 중간에 포기하는 순서대로 떨어져 나간다는 것. 바로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의 취약점이다. ‘포기하지 마’ 성진우 그 가수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젊은이 A의 하소연. 제발 B와 떨어져 있으면 살 맛 나겠단다. 아무리 희망을 품고 노력을 하다가도 B의 모습을 보는 순간 모든 의욕이 스러지곤 하니, 정말 못 참을 일이란다. 정말? 그럼, 네가 잘 아는 이 분야의 대가 C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천만에, 그건 경우가 다르단다. 자기가 컸을 때 그 C는 지는 태양이지만, B는 앞으로, 어쩌면 평생, 자신과 경쟁할 사람이라고. 그래? 그렇다면, 지금 네가 모르는 곳에 있을 B보다 더 특출한 사람은? 실제로 미국이나 중국 어디엔가 그런 경쟁상대자가 틀림없이 있을 텐데 말이야.

 

다른 젊은이 D의 하소연. 제발 E와 떨어져 있게 해달란다. 사사건건 붙잡고 늘어지는 그 친구 성격 때문에, 뭘 할 수가 없단다. 더구나 지금 이렇게 중요한 단계에. 그래? 나중에 더 중요한 일을 하게 될 더 중요한 단계 그때에 E보다 더 지독하게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옆에서 온갖 권모술수를 쓰며 못살게 군다면? 삶이라는 것은 어차피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이고, 따라서 어떤 일이 중요하게 된다는 것은 거기에 얽힌 생존경쟁 자존심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진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중요할 때 견딜 수 없는 협잡과 모략이 다가오는 것은 필연의 현상인데도?

 

넘어설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는 상대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 결정적 순간에 발목을 잡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축복인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경쟁자에게서 도토리 키 재기 식 열등감이나 키운다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고,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줘야 하는 바로 그 사람들까지도 우리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삶 흔한 모습일진대, 이런 절호의 기회이자 여건을 떨쳐버리려 한다니. 소란스런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에서도 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는 사람들을 뽑는 것이 바로 우리네 양궁 선수 선발 시스템이라고 하지 않던가.

 

또 다른 젊은이 F의 하소연. 생각하고 또 생각해 내린 결론이라며, 자신은 이 분야에 적성이 맞지 않는 모양이란다. 이건 뭐 승률이 떨어진다고 바둑을 포기하겠다는 그런 이야기나 마찬가지 아닌가? 승부에의 집착하면 자기파괴 효과는 필연. 승부의 관점을 초월해, 물들어있는 습관을 탈피하고 변신을 시도하며 새로운 세계를 맛보아나가는 것, 그것이 바둑의 묘미 아니던가. 아니 축구를 생각해서, 골을 넣지 못한다고 동호회 탈퇴한다고? 들어갈 듯 들어갈 듯 그러면서도 들어가지 않는 골,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통증도 참아가며 같이 뛰는 즐거움의 이유 아니던가.

 

황금어장 그 사장들. 바둑이 아니라 자존심과 체면 또 주위의 눈을 의식해, 어떻게 해서는 패하는 것을 피해보려 발버둥치는 것이 바로 그 연전연패의 근원 아니었던가. 바둑실력을 늘이려는 방편으로 내기바둑을 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승부집착 그것이 그들의 한계점을 설정했던 아이러니로 작용했던 것. 사범들? 그들에게 내기바둑은 프로입단의 꿈을 지키기 위한 생활방편이었을 뿐이다. 실제로 그 중 하나가 비록 늦은 나이에 입단했지만 그 후 줄곧 승승장구를 거듭하는 모습을 내 지켜볼 수 있었고.

 

희망의 빛이 보이는 순간은 잠깐일 뿐 주변의 경쟁자 방해자들 들먹이며 ‘탈락을 향한 자기학대’의 길에 들어서, 쉬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리곤 하는 곳, A부터 F까지 어울려 사는 곳, 우리 삶의 세계는 바로 그런 곳이고, 그게 또 삶의 일반적 모습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 폭을 넓히고 자신을 키워나가는 방법이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큰 틀에서의 그림을 잊지 않고, 자잘한 승부의 감정을 떨쳐버리고, ‘과정’을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보람을 느끼며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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