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해일이 밀려오는 그 무서운 모습. 장난감처럼 둥둥 떠다니는 저 자동차 속 거기엔 사람들이 타고 있을 것 아닌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 신문을 도배하는 일본인들의 침착한 모습, 질서를 지키는 모습. 모습, 모습, 모습, 그 하나하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그 다음 장면들. 원자력 발전소 지붕이 날아가고, 또 날아가고, 연기가 치솟고, 어어 하는 사이에 이번엔 폐연료봉 쌓아둔 곳에서 물이 빠져 정말 위험상태에 들어가고... 뭐 이런 인간들이 있지? 우리라면 어땠을까.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무슨 조치 신속하게 취했을 것 아닌가. 천재 앞에 일본인들의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했었는데, 이건 완전히 인재다. 이런 재앙 앞에서 저들은...
일본에 가서 세미나 할 때마다 느끼던 것. 학자들을 상대하건 실무자들을 상대하건 상관없이 이 사람들 질문이 없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의 그 냉랭한 분위기. 처음에는 내 이 사람들의 수준을 맞추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자책감까지 가졌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세미나가 무슨 필요인가. 그냥 논문이나 읽으면 될 텐데.
오래 전 어느 일본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희망이 있다고. 자기 강의를 듣는 일본학생들 눈에서는 전혀 생기를 느낄 수가 없는데, 한국에 올 때마다 그 살아있는 눈동자들이 가끔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고. 역동성. 묻잡고 늘어지는 그 질문들. 그 교수의 말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현상을 이제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오바마의 예스 위 캔 그 말도 어쩌면 한국에서 배운 것은 아닐까?
이번에 돌아가는 저 모습을 보면서 차이를 생각해본다. 한국이라면 혼란의 상황에선 누구나 리더다. 다른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며 나설 때까지 기다리질 않는다. 자기 의견을 분명히 내놓고 또 자기 책임하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 '수없이' 나타난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그것이 한국의 한계라 탓해왔다.
하지만, 지금 일본의 저 모습을 보면서 묻는다. 매뉴얼사회 일본? 조직과 경험에서 앞선 사회라 매뉴얼사회일까, 아니면 피동적으로 움직일 줄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매뉴얼이라는 절차규정이 없으면 안 되는 사회일까. 잘 못 나섰다가는 자신의 이미지를 구기는 것이 무서운 것일까, 아니면 나선다는 그 자체가 아예 사고체계에 들어있지 않은 것일까.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는데, 신중에 신중, 무슨 '용기 있는 진전' 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 신중? 아니면 그저 본능적으로 명령복종 그 자세만을 취하고 있는 것이 저들의 본성이 아니고? 우리 사회 분위기를 진돗개사회라 한다면, 저쪽은 무슨 애완견 사회 그런 것은 아닐까? 침착하고 질서를 잘 지키고 하는 긍정적 표현들이 어느 사이엔가 그럴 줄 밖에 모르는 꽉 막힌 국민성이 아닌가하는 생각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역사. 하나의 민족과 또 다른 하나의 민족 비교에서 역사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일본 그 민족이 우리보다 더 '나은' 민족이고, 그들의 문화가 우리보다 더 '앞선' 수준의 문화일까? 혹 그 수천 년 역사에서 지난 얼마간의 짧은 시간 구간 그 사이의 모습이 전체의 모습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창의적 도전성을 가진 진돗개 같은 우리와 그저 복종과 모방 또 애교 섞인 개선 그것이 본성인 애완견 같은 저들, 역사의 축은 다시 원래의 그 순위로 돌아가고 있는 중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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