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중국이란 요인, 우리의 앞날

뚝틀이 2011. 2. 16. 20:53

20년도 더 된 것 같다. 내 중국어 배우기 시작한 것이. 그때만 해도 이 땅에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주위에선 그 나라 말을 배우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었고. 내 생각? 단순했었다. 퇴직 후 경제적으로 도저히 우리나라에서 살 형편이 못 되니, 가까운 丹東정도에 가서 노년을 보낼 그런 생각이었다. 그때쯤 되면 남북도 통일이 되어 신의주에 자전가 타고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을 테고. 농담? 천만에, 아주 진지했었다. 지금은? 그 생각하던 그 때는 거기에 인간냄새가 풍겼었지만, 지금은 죽기 살기로 다를 돈만 따지는 세태로 변했으니, 글쎄.

 

내 노후계획이야 틀어졌지만, 중국의 부상, 더구나 일본을 앞지르는 부상 그 자체는 반가운 일이다. 사실, 허풍쟁이 중국학자들에 의하면 宋나라 때는 전 세계 GNP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대국이었던 그 나라가, 또 明나라 영락제 때 鄭和가 도시 규모의 대함대를 끌고 동남아 곳곳을 들려 아프리카에 까지 보내기도 했던 그 나라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종이호랑이란 조롱을 받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었을까. 남의 나라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 거울에 비친 우리를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중국 역사는 그야말로 소설에 다름 아니다. 周나라가 망하고 시작된 春秋戰國시대의 그 사상과 정치철학들에 2500년이나 지난 지금 사람들도 반해있다. 秦시황의 분서갱유로 모든 것 끝내는가 싶더니 환관 조고의 농간으로 스스로 망하고, 사면초가 항우가 유방에게 손든 후 세워진 漢나라에 쿠션 맞은 흉노가 로마를 침입하고, 실크로드까지 개척했던 이 나라가 기울며 삼국지로 잘 알려진 조조 유비 손권의 魏蜀吳 또 그들 사후에 魏晉-南北朝로 갈라지고, 대동강을 건너지 못했던 隋나라는 唐나라에 넘어가고, 지금도 차이나타운을 唐人街로 표기할 정도로 중국인들이 애착을 갖는 당나라도 결국 5대10국시대로 더 조각조각.

 

宋을 세운 조광윤은 족벌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신흥세력을 키우려는 뜻으로 무역을 장려하고 과거제도를 한층 강화시킨다. 의도는 좋았지만, 신흥부자들은 강남의 알짜농지를 급속히 점령해가며 새로운 지주계급으로 부상했고, 그들의 재력으로 자식들 과거시험에까지 개입해가며 권력의 중심부에까지 막강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문화와 예술의 전성기를 누리던 宋의 수도 개봉은 고급음식점과 유흥업소들로 가득 찼고, 점점 더 도탄 속으로 빠져드는 백성은 아랑곳없이 흥청망청 불야성을 이루었다. 왕안석의 개혁정책? 그것은 한여름 밤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막강 기득권층의 반발이 거셌다. 데자뷔? 이 나라의 국방은 여진족 金나라에 조공을 바쳐야할 정도로 취약해지지만, 관료사회에서는 ‘그깟 정도 줘버리는 것쯤이야’ 하는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했었고, 결국은 수도를 강남으로 옮기며 남송과 북송으로 나뉘게 된다. 이때만큼 사회정의가 외쳐진 적은 없었고, 양산박의 108호걸 수호지는 이때의 이야기다. 결국 백성들은 자기네 관리들을 때려잡는 몽고인들에 열광하였다고 하니, 중국역사상 최초로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元나라가 들어서게 된 것은 일종의 사필귀정이라 하겠다.

 

김용의 소설 倚天屠龍記로 잘 알려진 원나라 말의 모습. 결국 주원장은 이민족을 몰아내고 明을 세우는데, 역사에서 교훈을 배운답시고, 외척문제도 권력세습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환관세력을 키우게 된다. 수천 명 환관 모집에 스스로 거세한 사람들이 수만 명씩 지원할 정도였다는 이 시대, 결국 비밀경찰조직 동창의 수장 위충현 같은 인물은 황제들조차 좌지우지 그 위세가 당당했고, 역시 사필귀정 이자성의 난과 오삼계의 배반으로 明 또한 무너지게 된다. 백성들은 이번엔 만주족을 열렬히 환영하게 되고, 明과 淸의 바턴터치로, 다시 이민족 지배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江山風雨情은 그때의 모습이다.

 

淸의 건국. 이때가 언제이든가. 데카르트-파스칼-뉴턴 이름이 오르내리며 새로운 유럽이 열리고 있던 바로 그때다. 사실 淸도 강희제-옹정-건륭의 ‘중국역사상 최대 융성기’를 구가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권력의 안정과 영토 확장이라는 관점 또 러시아와의 분쟁 마무리라는 관점에서 그렇다는 의미였고, 저쪽에서 산업혁명의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군함과 무기로 세계정복의 길에 나서는데도 선교사들이 들고 시계나 망원경 정도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문자그대로의 中華思想. 다른 세상에 대한 경계심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주족 지배를 받는 漢족들은 자포자기 상태로 들어가고, 결국 아편에 찌들어 있던 이 나라는 열강이 모여 뜯어먹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 모습에 겁먹은 일본은 스스로 문을 열고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고. 우리나라는? =(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 이들의 리스트를 보는 것도 흐름을 보는 한 방법이다. 과학자? 정치가? 장군? 음악가? 화가? 철학자? 역사학자? 아무리 애써 봐도 서양교과서에도 집어넣을 만한 이쪽 인물을 찾을 수 없다. 문자 그대로 암흑기. 그런데, 이런 중국이 어떻게 ‘갑자기’ 경제대국으로 떠오르게 되었나. 쓰라린 기억, 그것이 원동력이었다. 이제 중국의 中이 중심이 아니라, 여러 나라 中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난한 나라 中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고나서는 그 자책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섬나라 일본에 또 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양말 장난감 그런 것 가리지 않고 팔아서라도 전투기도 원자탄도 만들 수 있겠다는 각성을 한 것이다. 恭喜發財. 어차피 이 나라 인사는 부자 되세요 아니던가.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 중국도 우리나라도 잘 나간다 하지만, 한 꺼풀 벗기고 보면 미국과 일본 또 유럽의 자본과 기술에 놀아나는 어린 곰 수준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어린 곰이 사람어른이 될 수 있을까. 기술을 더 배워서? 거꾸로 생각해보자.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미국의 유럽의 산업이 왜 저렇게 죽을 쓰고 있을까. 그쪽 두뇌들이 과학을 외면하면서 제조업이 스러지기 시작해서부터이다. 그쪽 두뇌들이 메디컬스쿨 로스쿨만 찾고 있을 때 그곳 연구실 빈자리들은 일본과 중국 학생들로 채워졌었다.

 

무서운 세상이다. 두뇌들이 고시에만 몰리면 宋나라 또 미국처럼 지는 일만 남을 뿐이다. 일본 학생들도 과학을 외면하면서부터 기고만장 일본의 고개도 꺾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벌어놓은 돈이 워낙 많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사, 변호사? 돈 많이 번다. 하지만 그 ‘많이’가 얼마나 될까. 산업계에서 커가는 젊은이들 수입에 비하면 ‘껌 값’ 수준이고, 산업을 일으켜 불러들이는 國富에 비하면 정말로 네글리저블이다.

 

비관적 생각 대신 밝은 쪽을 보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옳은 태도다. 이제 우리는 中日韓이라는 세계경제의 중심 축에 놓여있다. 남북이 통일되면 중국도 자전거로 갈 수 있다. 우리나라나 거기나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이 엄청난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오늘부터라도 ‘머리’에 눈을 돌릴 일이다. 영어에 투자하는 에너지 조금만 쪼개서 중국어에 할애하고, 조중동 대신, 중국 인터넷에도 들어가 보는 것이 사는 길이다. FTA건 뭐건 그런 것 상관없이 어차피 우리나라는 열리게 되어있다.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고, 타령만 하는 사람에게는 무상급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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