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사냥 갈 때 가끔 말도 되지 않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 하나 구할 수 없나? 얘야, 저쪽으로 올라가서 참바위취 하나 찍어오려무나. 배경처리는 약간 흔적만 나타나게 하고, 각도는 꽃 높이보다 약간 낮게.....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 앞에서 요상한 요가자세 취한 채 눈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딱지도 못하고 숨죽이며 우선 초점이나 맞춰보려 애쓸 때 하는 이 생각,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적이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식으로 남에게 맡길 수 없는 일이 또 하나 있다. 칡넝쿨 제거하기. 오늘도 원래는 일기예보 믿고 며느리밑씻개랑 주름조개 접사나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 오늘도 비. 큰 맘 먹고 비탈작업에 나선다. 길이로 따지면 120미터도 넘는 곳, 큰 작업이고 힘든 작업이다. 누가 이렇게 큰 집에 살라고 강요라도 했던가? 사람을 사서 써? 물론 그래본 적도 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마찬가지로 언제나 성의 없는 낫 작업. 그건 전혀 의미가 없다. 환삼덩굴이랑 칡넝쿨은 그래봐야 소용없다. 뿌리를 없애야 한다. 제초제? 그런 것은 내 사전에 들어있지도 않고. 어쨌든 큰마음 먹고 전지가위 들고 출동. 이번엔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도록, 추운 겨울에나 뒤집어 쓸법한 트레이닝과 긴 장화로 중무장하고서.(지난 며칠 간의 작업으로 내 팔은 완전 상처투성이다. 보기에 역할 정도로 흉한 상채기들). 아니나 다를까, 가시덩굴이 반긴다. 정신없이 찔러댄다. 환삼덩굴. 이 녀석들에 얼굴이나 팔뚝이 쓸리면 그 상처도 제법 깊다. 하, 벌써 곳곳에 꽃들이 달렸다. 암꽃 수꽃이. 이제 이 꽃들에 수분이 끝나면 주체할 수 없이 퍼질 것이다. 발본색원. 인내심 갖고 하나하나 줄기를 찾아내려가 붉은 색 줄기부분이 나오면 수직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잡아당긴다. 왜 이렇게 많은 거여? 사방으로 줄기가 뻗어나가는 만큼이나 뿌리도 넓게 퍼져있다. 하긴 그 잎들의 총 면적이 얼마인데. 뿌리 잡아당기면 넓은 면적의 흙이 다 일어난다. 땅의 살갗을 벗겨내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뿌리가 깊어 흙을 잡아주는 힘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쓸모라도 있을 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다 뽑아 없앨 수밖에. 쌓여가는 분량이 보통이 아니다.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 칡의 뿌리위치 찾아내기. 이 녀석은 환삼덩굴보다 더 지독하다. 줄기가 얼마나 길게 뻗어나가는지 5미터 10미터는 아무 것도 아니다. 뿌리 방향 찾느라 환상덩굴이랑 가시덩굴 또 뽕나무 개나리 줄기 함께 잘라나가노라면 그 엉킨 덩어리 쌓여가며 금방 무릎높이다. 마치 건초더미처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숨어있는 뿌리를 찾을 길이 없다. 얼굴이 긁히고 찔려도 할 수 없이 밑을 계속 들춰보며 작업을 해야 한다. 냄새가 얼마나 고약한지. 흙 썩은 냄새. 뿌리에 무슨 독이라도 있는지 이 근처엔 다른 풀 명함도 못 내민다. 이래서 이 작업할 때마다 우리나라 재벌경제를 생각하곤 한다. 겉으로 보기야 화려한 녹색이지. 통계. 하지만, 이 넝쿨 넝쿨들 뻗어나가는 곳에 다른 녀석 자리할 수가 없다. 속을 들여다보면 온통 썩은 경제. 더불어 살기? 그거이 뭔 소리여? 작업을 하다보면 마치 암벽타기 때 밧줄 붙잡고 움직이듯이 이 칡넝쿨 힘에 의지해 비탈 벽면 따라 이동해가야 한다. 물론 또 찔리고 긁히면서. 그래도 또 계속 찾기. 마치 범죄 사령부 찾아가듯. 드디어 위치를 찾았을 때의 그 기쁨. 거기 그 음습한 곳 본거지에 이르면 사방으로 뻗어나간 징그럽도록 검고 흉한 칡뿌리 그 본거지가 보인다. 사람을 쓸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의 즐거움 때문. 마치 야생화 사냥 때 그 힘든 초점작업이 사냥꾼들의 조준작업에 해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듯. 비는 계속 내리고. 온몸은 완전히 땀에 젖어...... 어쨌든 이제 큰 작업을 마쳤다. '다른' 풀이나 나무들이 자리할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구하듯.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진한 땀 흘리고 난 후의 통쾌함, 거기에 보람까지. 이제 오늘 밤엔 얼마나 쑤시고 가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