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풀 작업

뚝틀이 2011. 10. 3. 22:03

날은 화창하지만, 오늘은 꽃 사냥 나갈 생각이 없다. 이른 아침부터 풀 뽑기. 이제 이것으로 금년 ‘노동’은 마지막. 아침저녁으로만 추운 게 아니라 낮에도 쌀쌀하다. 두툼하게 차려입고 작업 시작. 강아지풀, 문제의 주인공. 웬만하면 그대로 놔두고 싶지만, 이 녀석들이 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전원생활’ 이미지를 다 망치고 있다. 뽑기. 평소 쓰지 않던 손동작 시퀀스. 타임 앤 모션 스터디. 내 회사 생활 처음 시작할 때, 여공들 작업 시퀀스 관찰하며 개선방안 마련해 ‘자랑스러운’ 결과를 얻었던 ‘경영학 제 일보’에 대한 반응. ‘여기는 작업소이지 연구소가 아님’. 그 얼마 후 다른 용건 때 사장과의 면담. 한국인에게 수학이 무슨 소용인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을. 그 얼마 후 올랐던 유학 길. 이제 수학도 엔지니어링도 또 타임 앤 모션 스터디 다 필요 없는 풀 뽑기 작업. 생각할 필요 없이 단순 반복 작업을 한다는 것보다 ‘생각’을 더 일으키는 것이 없다. 마치 우리 찜질방 아궁이에 불 넣을 때, 온갖 잡념 다 떨어져나가는 무아지경으로 들어가지만, 그래도 멈춰있던 ‘다른 채널’의 생각이 돌아가기 시작하듯이. 오늘 불현듯 든 생각. 자살하는 사람들 참 위대한 사람들. 더 이상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생각에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그 용기. 하긴 오늘 날이 쌀쌀해서 또 햇볕이 슬프게 느껴져서가 아니라, 또 불현듯 든 생각도 아니고, 얼마 전부터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생각. 앞으로 무엇을 더..... 사치스런 생각? 계속 뽑는다. 어떤 때는 강아지풀이 내 코를 간질이고 어떤 때는 난데없이 모자위에서 내려오다 시야를 가린다. 또 어떤 때는 시야 옆으로 들어오는 사람 그림자에 놀라다가 그냥 나무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묻는다. 어쩌다 이렇게 신경이 약해졌지? 힘들다.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봄이 다시 온 느낌도 든다. 철모르는 제비꽃이 피어있는 모습에. 개쑥갓 민들레가 앙증맞게 피어오르는 모습에. 작업 거부.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순응. 초가 쪽 작업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는다. 잠. 잠깐의 잠이지만 머리가 맑아진다. 다시 저 위 컨테이너 쪽으로. 여기서부터는 본격적 작업이다. 차라리 낫을 쓸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냥 뽑기로. 쑥 이 녀석들 정말 단단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뿌리 힘이 보통이 아니다. 그래도 초지일관. 벌개미취, 참 많이도 퍼졌다.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오늘은 정말 여기 와서 제일 중노동인 셈이다. 뚝디도 지쳤는지 그냥 땅바닥에 착 붙은 낮은 자세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차고 옆 저기까지 만이라도 오늘 마쳤으면 좋겠는데... 다시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검지에 쥐가 나는 모양이다. 펴진 상태에서 동작 스톱. 할 수 없지. 두 번째 순응. 낫 작업. 일이 좀 편해질 줄 알았는데, 정 반대다. 허리가 끊어질 듯. 뽑기 자세와 베어내기 자세의 차이. 캄캄하다. 더 이상 보이지도 않는다. 가끔 낫이 위험한 각도에서 나를 위협한다. 오늘만 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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