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참새가 점심을 저녁때 먹는 법

뚝틀이 2011. 10. 13. 23:30

 ‘수리수리뭐뭐’라는 집 갈 생각 없느냐 아가씨가 묻는다. 다음지도 들어가 보니, 꼬불꼬불 그 길, 운전이 편할 것 같지 않고, 시간도 제법 걸릴 듯. 더구나 토종닭이 주 메뉴. 3뚝이가 해치운 피해보상 그 덕분에 생각만 해도 신물이 올라오는 닭. 기왕 나서려면 차라리 동해안 횟집이 낫지 않겠냐는 내 제안에 싱글벙글. 거기까지는 좋은데, 앞집 아가씨랑 45분 후 출발약속. 이럴 때 답답하다, 화까지 난다. 무슨 미모 자랑 외출도 아닌데, 그냥 척 나서면 될 것 아닌가. 여자들은 원래 그래 다 그래 어쩌고 하는 훈계 또 나올 것 같아 그냥 참는다. 어쩌겠나. 따지자면 즉흥적으로 나서게 만든 내 잘못이 더 큰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도 내 ‘준비’하면서 시간 맞추기. 딴에 제법 애써보지만, 그런 ‘엄청난’ 시간동안 아가씨들과 보조 맞추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 책 뒤적거리고, 차고에서 차1 빼내어 차2로부터 카메라와 배낭가방 또 삼각대와 보조 팩 옮겨 싣고, 그래도 시간 남아 다시 책을 손에 잡고 어쩌다 하다 드디어 출발. 사실, 원래, 제안이 오갈 땐 점심 이야기였는데, 그곳 도착 훨씬 이전부터 배가 고플 전망이라, 휴게소 들려 호두과자 몇 개씩 입에 넣는다. 얼마 왔을까. 참새가 방앗간 지나기. 민둥산 간판이 보이자 슬그머니 유혹에 끌린다. 아직 좀 이르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정선바위솔? 조심스레 떠본다. 소금강 거쳐 갈까? 의외로 흔쾌히 오케이. 편한 국도 벗어나, 단풍감탄 속, 꼬불꼬불 어지러운 산길 오르고 내리며 얼마를 들어가니 드디어 계곡과 바위벽의 소금강. 아직 아닌가 하며 속으로 실망하는데, 앞집 아가씨, 저기 바위솔이, 바위벽을 올려다보며 톤이 높아진다. 어? 어떻게 여기 이런 것이 있는 줄 알았지? 눈에 잘 띄지도 않는데? 집에서 약재로 바위솔 말리고 있는 중이란다. 이건 정선바위솔. 붉은 빛은 도는데 아직은 아닌 듯.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여기 또 저기 또. 저 위를 향한 손가락이 부지런히 오간다. 낮은 곳 눈높이에 어디 없을까 두리번거려보지만, 아직은 아니다. 다음 주? 아니면 작년처럼 10월말에나? 삼각대 탄탄이 세워놓고 릴리즈 연결해 몇 번 찰칵해보지만, 200mm로도 역부족. 500mm는 돼야 잡을 수 있는 위치다. 하지만 그래도 이 녀석 봤다는 게 어딘가.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데 아 저기 또, 눈 정말 좋다. 마음이 착한 사람 눈에 잘 띈다는데. 차를 뒤로. 또 찰칵. 하지만 여기도 너무 높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차에 시동 걸지만, 두 아가씨 재잘거림이 멈췄다. 조용하다. 호두과자 칼로리가 다 한 모양. 어쩐다. 아직 동해안은 한참 멀었는데. 그렇다고 지금 어디 식당에 들어갈 수야 없는 일 아닌가. 아이디어. 정선 재래시장. 길 좀 돌아가지만. 메밀전병 속 김치 맛 제법이고, 녹두지짐 기름 맛도 참을 만하다. 이미 멀리 돌아선 길, 동으로 동쪽으로. 현기증 가라앉을 즈음, 바다가 보인다. 해변 따라가며 적당한 집 있나 찾아보지만, 식당이라는 것, 배고플 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일단 뭐가 들어가며 쌓이고 쌓인 게 식당, 전혀 없다. 점심때는 훨씬 지났고, 마음에 점찍는 정도의 칼로리로는 오래 못 간다. 이번엔 운전사에게 무리증세가. 머릿속 핏기 가시지 시작하면서 정상 동작이 멈춘다. 예전 언젠가 노고단 출발해 몇 시간 걸어 피아골 근처 지나갈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푹푹 쓰러지는 것. 그 후론 이럴 때 대비해서 자유시간이나 흑초콜렛 뭐 그런 것 꼭 가지고 다녔지만 하필 오늘은. 차는 위아래 방향을 혼동하고 무슨 공단 길로 들어서고, 더 이상은 무리다. 어디 자판기 커피라도 있나 찾아보지만, 필요할 때 뭐가 없는 건 만고의 진리. 편의점 간판 보고 좋아했는데, 그 앞에 주차된 차도 많은데, 사람이 없다. 더 이상 운전할 방법이 없다. 벤치 몇 개 놓인 공원 앞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 숨을 돌린다. 커피요. 배달이다. 우리 아가씨들 근처 주유소에서 동냥해온 커피다. 한 숨에 들이킨다. 약간 온기가 돌아온다고나 할까. 여기가 어디쯤인가 들여다보니 촛대바위 2.5km 근처. 그러면 그렇지, 참새의 운전. 일단 그쪽으로 향한다. 널찍한 길 달리는데 가운데 노란 줄이 없다. 좀 가다보니 이쪽으로 오는 차가 보인다. Geistfahrer! 반대편 차선으로 들어와 달리고 있었던 것. 중앙 분리 화단 사이로 급히 핸들을 꺾어 제 차선에 들어선다. 주차장. 차도 제법 많고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의욕 상실. 렌즈 배낭 그냥 놔두고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바위 쪽으로. 그러면 그렇지. 바위틈 해국들이 이미 그늘 속이다. 아침에, 아니, 적어도 오전에 왔어야 할 곳. 지난 번 둥꿩 때랑 마찬가지다. 꽃이라는 것. 햇볕 받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늘 속 꽃들은 처량해 보인다. 더구나 사진 선예도엔 하늘과 땅 차이다. 내 지금 컨디션에서야. 마지못해, 누가 시키기라도 해서 할 수 없이 찍는 듯, 몇 장 찰칵찰칵하는데, 또 배달이다. 이번엔 오징어. 물기 촉촉하게 살아있는 짭짤한 그 맛이 제법이다. 집어넣고 꾸겨 넣고. 허기가 수그러드니, 눈이 다시 보인다. 모래밭의 갯씀바귀, 귀엽다. 납작 엎드려 찰칵찰칵. 어떤 꽃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하늘 높이서부터 내려덮치는 독수리가 아니라 눈높이에서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다. 그들이 보는 각도에서 가장 매력적이다. 어쨌든 이제는 아무 집이라도 들어가야 할 때다. 이미 저녁시간 아닌가. 하지만, 이 유원지 근처에도 그럴듯한 집이 보이질 않는다. 할 수 없이 묵호항 쪽으로. 관광객 상대 악명 자자한 그곳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예상대로다. 관광버스 타고 왔는지 가슴에 이름표 단 사람들. 그래도 와글와글 시장 둘러보는 맛 거기엔 향수까지 살아나곤 한다. 고등어도 싱싱하고 오징어는 팔팔 뛰고. 분위기는 그렇다 해도, 이거다 하고 마음에 쏙 와 닿는 무엇이 보이질 않는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면 의욕도 떨어진다. 할 수 없지 뭐. 그냥 눈에 띄는 횟집 찾아, 수족관 앞 흥정 마치고 안으로 들어선다. 아무도 없는 홀에선 옥상에서 떨어지는 돌을 피하려는 남과 여가 붙잡고 쓰러진다. 연속극이라도 조용만 하면 괜찮겠는데, 갑자기 볼륨이 올라간다. 주인집 따님 보시는 카툰시간이다. 냅킨 좀 달라 카운터로 갔더니, 사장님 아빠님은 컴퓨터게임에 열중이시다. 조금 있다 사장님 부인님이 들어오시더니 남편님을 밀어낸다. 식사하는 손님 시끄러운 텔레비전 소리 그 땨위엔 관심도 없다. 화면에 가득 차는 것은 고스톱 패뿐. 뒷맛 씁쓸해 돌아오는 길은 고속도로를 택한다. 멀리 돌아도 마음이 편하고 덜 피곤한 길로. 하늘이 맑다. 달이 밝다. 달 아래 걸려 반짝이는 목성이 마치 무슨 네클리스의 보석처럼 반짝인다. 간단히 회 즐길 마음으로 떠났던 길, 밤 아홉시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뚝디 모습, 나무에 줄이 엉킨 이 녀석, 꼬리 치며 이렇게 반기지만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그날그날 - o'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11.10.24
환절기  (0) 2011.10.17
새 막, 새 장  (0) 2011.10.12
또 풀이야.  (0) 2011.10.11
맨날 풀이야.  (0) 2011.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