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해. 지난 이른 봄 검사에서 모든 수치가 정상적 범위로 들어왔으니 이제 마음 놓고 움직여도 된다는 의사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참 좋았었고, 한 동안 정말 거리낌 없이 ‘활동’했었는데, 한여름 지나면서부터는 별로 좋지 않은 컨디션의 연속이었고, 특히 이번 환절기에 들어선 이후론 난조 또 난조다. 테이블에 놓인 카메라조차 생소하게 느껴진다. 급기야 그제는 정말 오랜만에 찜질방에 불을 지피고 그곳에서 지냈지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가지 않을 정도로 악몽 또 악몽의 괴로운 밤이었다. 오죽하면 이 찜질방을 부엌으로 용도 변경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었을까. 하긴, 무엇이 불편하다하여 거기에 조치를 취하면 금방 호전되는 그런 비법이나 마력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있다면...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뚝디의 행동. 한동안 잠에 들었다 눈을 뜨면 이 녀석 어느새 방으로 들어와 내 옆에서 편한 자세로 누워 있곤 했다는 것. 나를 보호하려는 생각에서일까, 아니면 예전 자기가 정말 아팠을 때, 아니 우리가 죽었다고까지 생각했을 때, 그때 생각이 심어져 있어서 그랬을까. 그때 우리는 얘와 이 찜질방에서 '마지막'밤을 같이 지낸 후 보내기로 했었는데, 그 다음날 새벽 얘 가슴에서 다시 숨을 쉬는 그 ‘작은 움직임’을 발견했을 때..... 황토방의 위력. 그 전까지 그런 ‘따위’엔 관심이 없었던 나에겐 정말 ‘큰 사건’이요 인식변화의 계기였다. 참, '다행'인 것 하나 있다. 로마인 이야기, 이 책이 그다지 재미가 없다는 것. 책 열기 전엔 혹 나에게 불면증이라는 부작용까지 일으키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무척이나 망설였었는데, 참으로 다행하게도 그 정도는 아니다. 횡설수설, 중언부언이 계속되고(문자 그대로의 중언부언, 마치 컴퓨터 파일에서 무슨 단어를 고르면 거기 해당되는 파일이 함께 묶여나오는 그런 식이다), 역시 일본 작가의 '간지러움', 그냥 표피를 깔짝거리는 그런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선입관 영향일 수도 있고, 그 동안 읽었던 여러 책의 영향으로 이야기의 진행에서 박진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인간성 그 깊이를 다루는 솜씨도 사마천의 사기는 물론 삼국지나 수호지 또는 초한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고, 문학적 관점에서 ‘수준 이하’인 것에는 틀림이 없다. 그저 사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상상을 얹어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도중 몇 마디 잔재주성 코멘트를 곁들이는 그런 정도의 형태. 지난 13일에 읽기 시작할 때는 하루에 한 권 정도로 제법 속도를 내었었는데, 이제 점점 그 속도도 떨어지고 있다. 오늘부터 며칠간 진행될 세금관련 골치 아픈 일이 마무리되면 경주나 통영으로 떠나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