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최창조의 ‘사람의 지리학’

뚝틀이 2011. 10. 30. 13:06

북향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서러움에 젖어본 적도 있고, 서향 방에 세 들어 살면서 괴로워한 적도 있었다. 뒷산에 올라 동네를 내려다보며 왜 내 지금 사는 곳에 ‘모든 氣가 모여 있는지’ 이곳 스님에게서 긴 긴 설명을 들어본 적도 있다. 찬바람을 막아주는 산기슭에 전망 탁 트인 남쪽을 보며 사는 것이 건강에 좋겠거니 그냥 막연히 그런 정도로 생각해오다 이 ‘기인’이 주장하는 풍수지리학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손에 잡았다. 하지만, 내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책은 저자 스스로 부제를 붙였듯 ‘妄想錄’.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내 생각은 남들이 예전에 다 했다.” 어떤 주장도 그 근거를 고금의 문헌에서 찾아낼 수 있고, 그에 상반되는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랐단다.

 

저자는 말한다. 원래, 사람과 환경과의 조화에 대한 학문이었던 것이 이제는 좋은 묏자리를 잡는 수단으로 전락해 陰宅風水로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풍수에는 어떤 불변의 법칙이나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지혜가 있을 뿐이라고.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自生風水’라는 이론. 고전에 대비된다하여 새로운 이론이라 하지만, 나에게는 ‘사람 사는 곳’에는 다 그 사람들이 거기에 자리 잡게 된 무슨 이유인가가 있게 마련이고, 그런 ‘활용’의 관점이 자연 그 자체로서의 모양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무엇인가 톡 쏘는 그런 맛은 없더라도 이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바로 책의 형식. 한참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다가, 그 전개과정 중간에 불쑥불쑥 자기가 읽었던 책에서의 인용구절을 내세우며 자신의 생각을 ‘대변’시켜나가는 그 형식이 재미있다. 원군의 도움을 청한다고 할까, 아니면 자신의 생각에 권위를 더한다고나 할까. 물론 그 인용된 분야가 풍수지리라는 좁은 영역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문학 역사 경제 각 분야를 망라하는 그의 독서편력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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