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Rudolf Pfeiffer의 '인문정신의 역사'

뚝틀이 2011. 10. 29. 09:30

원제는 ‘History of classical scholarship from 1300 to 1850’. ‘인문정신’이라는 매력적 단어에 호기심에 주문한 책이지만, 몇 페이지 들쳐보다 그냥 덮어두었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의 위력. ‘로마인 이야기’에서 작가가 언급했던 키케로 티투스 베르길리우스의 작품들. 무슨 낚싯밥처럼 그 이름들에 이끌려 이번에는 마치 내가 아는 사람들의 모습이 복원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바뀐다.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옛 로마시절 작품들, 또 그 후, 옛 그리스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문제는 인쇄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당시 필사라는 과정을 겪으며 전승되어올 수밖에 없었던 그 과정에서 생겨난 오류들을 어떻게 교정해서 최초 원본 상태로 복원할 수 있을까 하는 것. ‘이제는 변해버린’ 발음 또 운율법칙을 복원해가며 틀린 곳을 바로 잡아야하는 그 작업에 핵심적인 것은 정확한 언어지식을 바탕으로 한 고도의 ‘추정 작업’. 위작을 가려내기도 하는 ‘내용비판’ ‘텍스트비판’이란 단어들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그런 ‘고전문헌학’에서 발자취를 남긴 연구가들에 대한 이야기.

 

그 분야에 전혀 문외한인 나에게는 당연히 대부분이 생소한 사람들. 하지만, 그래도 가끔, 들어본 적이 있는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들이 이야기의 끈을 이어준다. 어떤 시대사조도 그렇듯이 선구자들의 외로운 시기가 있고, 권력자들의 명예욕으로 경쟁적 지원이 따르고, 그 속에서 학자들 사이의 갈등도 생기고. 저자는 이런 큰 그림을 보여주며 무슨 학파가 누구로부터 시작되고 어느 쪽과 경쟁하며 어떤 모양으로 발전해나갔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차분히 들려준다.

 

읽는 분야에 상관없이, 무슨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는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 전문가가 들으면 쯧쯧 하겠지만, 그래도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하루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읽을 만한 가치는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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