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Laura Hillenbrand의 ‘Unbroken'

뚝틀이 2011. 11. 1. 12:35

2차 대전에 관한 책? 빛바랜 사진들. 전쟁에 관한 이야기. 이런 것 읽을 생각은 없지. 그냥 옆에 덮어두었었다. 어느 날, 어제, 다른 책들을 읽다가 그냥 이 책 몇 페이지 들쳐본다. 그래도 나 생각해서 사온 책인데. 그러다 그냥 빠졌다. Louis Zamperini. 구제불능 망나니. 도벽에,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못된 짓 다하고 다니는 악동,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 어느 날, 형의 권유로 달리기, 망신, 이어지는 훈련, 소질 발견, 달리기 신동, 올림픽 출전, 히틀러와의 대면, 다음 올림픽 기약, 그리고 진주만 공습, 전쟁 개입. 도대체 숨 쉴 사이가 없다. 짧은 문장의 폭격. 익숙하지 않은 표현들. 마음이 급할 땐 사전도 찾지 않는다.

 

공군 입대. 태평양 전쟁 한 복판, 폭격대, B24. 중계방송이다. 전황보고가 아니라, 병사 조종사의 동작 하나하나 심리상태 운명을 생각게 하는. 연신 다시 지도로 돌아온다. Wake 섬, 어디 있는 거야.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다 벌집이 되어 돌아온 그들. 구조대로 출발하지만, 바다 한 가운데 추락. 40일 넘게 계속되는 탈수증, 허기, 상어 떼와의 사투, 그 생생한 묘사. 드디어 구조대. 구조대? 적기, Zero기. 쏟아지는 총탄. 이런 것이 구사일생인가. 계속 표류. 상륙한 곳은 다름 아닌 일본군 점령지.

 

일본군. 전쟁 또 포로에 대한 그들의 인식, 그 바탕에 깔려있는 심리상태, 그 통계. 인간본연 자존심의 마지막까지 무너뜨리는 포로수용소에서의 잔학행위, 그 속에서 운명의 결정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주인공. 한편, 실종통보 그리고 사망처리 통보를 받는 가족들, 한 가닥 희망이라도 버리고 싶지 않은 그들. 대학살 바로 전, 원폭투하, 일본의 항복. 전쟁영웅의 귀환, 벗어날 수 없는 악몽 속에서 무너져가는 삶. 마지막 클라이맥스. 잔학행위의 원흉. 도오조와 같은 A급 전범. 사형을 면할 수밖에 없는 그가 위장자살로 체포를 피하고, 사면되고, '성공적' 삶'을 누리다가 편안히 죽는다는 이 현실. 삶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그냥 한 번 들쳐보는 것으로 시작된 몰입이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진다. 작가의 후기. 7년간 이 작품을 썼단다. 주인공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의 신문, 편지, 전보, 라디오 원고, 또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로 크로스 체크해 가면서. 책 말미에 있는 자료집 목록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짧은 문장들. 과장되지 않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쓰려는 논픽션 작가의 절제. 이 책을 읽는 미국인들의 마음은 어떨까. 아니, 일본에 번역본이 나올 때, 그때 그 일본인들은 무엇을 느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