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잠시 멈춤

뚝틀이 2012. 3. 14. 22:03

영화를 보고 있다. 유튜브에 들어가서 흘러간 명화들을 보고 있다. 영어. 내 생활언어가 아니니 다 알아듣지는 못한다. 줄거리와 흐름 그 정도만 파악되면 그만이다. 내 삶의 전형적 단편 모습이랄까. 세세한 일이나 단어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형편없는 내 기억능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퇴화한 것도 어쩌면 이런 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그럴까? 영화에 따라서는 궁금증을 못 이겨 미리 그 내용을 훑어본 다음 보기도 한다. 그때는 알아듣는 정도의 수준이 전혀 다르다. 결국, 줄거리니 흐름이니 하면서 기억력 운운하며 연결지려는 것은 다 핑계이고 자기합리화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미리 줄거리를 보는 이런 방법을 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니 거기에 무슨 긴장감이 있겠고, 재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답답하게도, 자기최면을 벗어날 결심을 하고 다시 그냥보기로 돌아가더라도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단어와 문장에 대한 집중도는 다시 원래의 수준으로 돌아가고 줄거리와 흐름에 만족할 뿐이다. 아무리 신경을 집중해도 그렇다. 그게 내 능력이다. 능력의 한계다. 하나하나 다 알아들으려 신경을 쓰다보면 흐름을 생각하며 예상을 할 여유가 없어지니 어느 새 신경이 늦춰지며 줄거리 파악 그 수준으로 만족하게 되고 만다. 물론 우리영화를 볼 때는 그런 고민 필요 없다. 하지만, 그 풀도 풍부하지 않고 재미있는 대상 찾기도 쉽지 않은데 어쩌랴. 삶을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일 하나하나, 영화로 치자면 그들 각각은 그 자체로 의미가 명확한 단어들이요 복선이 깔린 문장들이다. 이들 하나하나를 파악하면서 전체를 보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까? 우리영화 보듯 편한 삶 살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 것이며, 구글에 들어가 영화내용 미리 검색해보듯 자기 인생 줄거리와 앞날을 미리 알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삶이건 영화건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져 녹초가 되면 그냥 다 덮어두고 다시 현관에 나와 앉는다. 소나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벌써 몇 해째 나를 당기고 끌어안는 저들의 모습. 어려움과 괴로움, 그 의미는 무엇일까. 폭풍도 없고 혹한도 없는 그런 편안한 곳에서 저들이 자랐다면? 그래도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말로도 그림으로도 또 음악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란 결국 어려움과 괴로움 그것들을 이겨냈다는 징표 그것 아니겠는가? 영화에서 소설에서 이야기를 꼬고 비틀며 역경을 집어넣는 것 역시 더 아름다운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작가들의 몸부림 아니던가. 소나무의 시각적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그 아름다움은 어떻게 표출되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아름다움이란 그 무엇을 위해 일부러 괴로움을 선택하고 어려움을 찾아다니는 그런 사람들도 있을까? 작가들? 예술가들? 그들은 찾아다닌다고? 정말 그럴까? 본능적으로는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것 그것이 생명체의 본능일진데 그럴 리가 있을까? 그런데도 왜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렇다고 생각되는 것일까. 답은 결국 하나 아닐까? 작가 예술가 지망생,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들 아무리 많아도, 괴로움과 어려움, 그것을 겪어 본 사람들의 생각지평이 편안함만을 찾는 이들의 상상에서 그치는 사람들의 생각깊이와는 그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어서는 아닐까? 결국 어려움과 괴로움은 불행이 아니라 인격체에 아름다움이 깃들게 하는 축복 아닐까? 말로야 그렇게도 이해될 수 있겠지만, 어려움과 괴로움의 근본적 괴로움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거기에서 비롯되고 그에 대한 공포가 견디기 힘들 정도라는 것은 진실이다. 다시 유튜브 영화보기로 돌아와 생각한다. 제삼의 방법. 영화관에서와는 달리 여기에서는 멈춤이라는 기능이 있다. 잠시 꺼놓고 현관에 나가 앉아 햇볕을 즐기노라면, 머릿속을 오가는 그때까지의 내용에 궁금증이 더해진다. 도대체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디쯤에서 어떤 반전을 계획하고 있을까. 말하자면 일종의 퀴즈풀기 놀이인 셈이다. 다시 돌아와 화면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아까보다 훨씬 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그 대화 내용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내 예상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지 제삼자적 관점이 더해진 탓일까, 마음에는 한층 더 여유가 생긴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잠시 멈춤’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까? 일부러 그런 것 찾을 필요는 없다. 그 누구도 역경 없이 순탄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일. 이런 저런 일이 얽히고 꼬이는 좌절과 절망의 시기, 비록 타인에게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는 듯 보여도 당자에게는 괴롭기 그지없는 그런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삶 자체가 너무 힘들어지거나, 또는 견딜 수 없이 몸이 아프기도 해, 어쩔 수 없이 ‘생활의 진행’이 멈출 때, 그때가 바로 지난 삶을 돌이켜보며 앞날을 준비하는 그런 축복의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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