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엔 중국에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에, 방통대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해 출석수업 듣던 때, 중국 상해대학 어느 교수의 張愛玲 특강. 마치 다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하지만, 거기가 끝. 이어지는 질문시간 그때 학생들의 그 놀라운 회화실력. 학생이라고 다 같은 학생이 아니었다. 프로 학생이 있었고 아마 학생이 있었다. 바둑시절. 여섯 점이나 놓고 두던 그 판에서 내 대마가 말라죽던 순간 그 굴욕감. 아마추어라고 다 같은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프로 아마가 있었고 아마 아마가 있었다. 내 만약 프로기사는 아니라도 중국어가 필수적인 생업을 염두에 두었었는데 이런 경험을 하였었더라면 그 느낌이 어땠을까. 아마도 일찌감치 노력을 접었을 충격이었다.
프로와 아마? 그건 간단히 재능의 차이다. 그때 그 바둑상대는 지금 프로기사로 활약 중이고, 그의 내기상대 주선에 분주했던 사람은 이제 히트작 연속으로 쏟아내는 소설가로 이름을 날린다. 유창한 중국어로 뭇사람을 질리게 만들었던 중국어회화 동아리 회원 그들도 분명 지금쯤 어디서 다 자기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삶이란 게 그렇다. 노력이니 시간투자니 하는 것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훈계일 뿐, 성과가 그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재능이 우선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긴 그럴 지도 모른다. 사실 그 ‘나이 든’ 동아리 회원들도 내 바둑 상대 ‘오랜 세월’ 아마고수 그도 노력과 시간투자로 빛을 보게 된 존재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세월’ 동안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역시 자신의 재능 부족을 탓하며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역시 재능이 우선이란 말이다. 아니, 이제는 남들이 부러워할 위치의 그들에게 지금 물어본다면? 십중팔구 이런 체념조의 한탄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누구누구의 그늘에서 피곤하기 그지없노라고. 마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살리에리처럼.
그렇다. 어느 분야 어느 레벨 무리에게든 모차르트가 존재하고 살리에리가 존재한다. 자연스런 프로와 억지 프로페셔널. 그렇다 天才는 天災다. 수많은 사람들을 나락으로 몰아넣는. 세상일을 말하는데 꼭 천재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지금 내 빠져있는 야생화 취미.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 가장 좋은 곳은 당연히 동호회다. 그런데 이들 사이트에 들어가면 재미있는 현상을 만나게 된다. 귀한 꽃 멋진 사진 그런 본질적 가치의 평가를 댓글의 빈도에서 찾는다면 이건 주소를 잘못 짚은 것이다. 여기는 완전 사교장소다. 미모의 누가 사진이나 글을 올렸다하면 아부 성 댓글로 그냥 난리다. 세상일의 상징적 현상이다.
그렇다. 삶이란 끔찍이 불공평하다. 미모에 본질이 맥없이 눌리는 선천적 불평등의 원리 이 부조리 현상은 인간이 동물적 본능을 벗어날 수 없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결국 이렇다는 이야기다. 천부적 미모, 천부적 재능, 그것도 아니라면 태생적 부, 그 어느 것이라도 타고난 사람들이 그들이 노력 비슷한 것이라도 하기만 한다면 그 주위엔 부조리의 재앙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이 속에서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이제 생각해본다. 불행은 어디에서 싹트는가. 노력이 제대로의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이 ‘불공평의 본질’이 지배하는 인간세계의 그 속성이 옳지 않다는 생각 바로 그것이 출발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중국어. 내 그 테이프 틀어놓고 출퇴근 차 안에서 중얼중얼 따라하던 그때, 그때 방통대 이 장면을 생각이라도 하며 서글퍼했었나? 내 중국 구석구석을 홀로 누빌 때 내 중국 역사와 문학에 심취해있을 때 그때도 이 장면을 예상이라도 하며 불안해했었나? 내 한 걸음 한 걸음 바둑 배워나갈 때 그 수많은 상대들과 진지하게 수담을 나눌 때 그 굴욕적인 장면을 머리에 그려보는 그런 생각실험이라도 하며 허무를 준비했었나?
사실 바둑 중국어 그런 것에 눈 떴을 때 그때 얼마나 즐거웠던가. 온 열정 그 책에 쏟거나 그 판에 퍼붓던 그 순간 그 시간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이지 않았나? 내 머릿속에 알게 모르게 그려지던 꿈 그 속에서 내 포근하지 않았나? 그렇다. 이 세상 이 삶은 그 자체로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 그게 본질이다. 따라서 목표에 도달한 후의 행복 그런 것도 없다. 꿈이 모든 것일 수밖에 없는 출발 그 단계가 행복할 때고, 어려움을 헤치며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려 열정을 쏟을 때 그때가 정말 보람과 행복을 느낄 때다. 꿈과 열정은 행복의 동의어다. 그것이 사라진 삶은 거기에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