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자존심의 몰락

뚝틀이 2012. 4. 3. 01:14

언젠가는 한 번 고마운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었다. 그냥 초대. 우리 초가집에 묵으면서 분위기 있는 그릴파티 그런 초대. 그러다 마음이 천천히 변해갔다. 아예, 이왕이면, 그럴듯한 초대는 어떨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리조트. 고급스런 분위기에서의 아늑한 시간. 그런 환대 그런 것이 바로 멋 아니던가. 내친 김에, 준비가 너무 번거롭고 자칫 실수와 결례가 곁들어질 가능성이 있는 그릴파티보다는 아예 품위 있는 식당에서 저녁까지. 대충 예산을 잡아본다.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배 정도의 예산을 큰마음 먹고 잡아본다. 마음이 정해진 후 공고. 제대로의 진행이다 생각된다 싶더니 어느덧 참석자 수가 예상을 넘어선다. 예상비용도 물론 함께 늘어나고. 그렇지만, 언젠가는 한 번 하고 싶었던 일. 이 정도에 타격받을 정도는 아니지. 하지만, 상황은 계속 진행된다. 마음 한 구석으로부터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규모가 커져가는 것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일까? 어느덧 내 예산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마감임을 알린다. 다시 세부사항을 체크해가며 어느 정도 틀을 잡고, 이제 그대로 진행하기로 결심. 하지만, 변수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법. 안면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찌 수용 않을 수 있겠는가. 비등점을 넘어서며 불안감이 엄습한다. 슈퍼 새추레이션. 그래도 큰마음 먹고, 그런 정도의 오버슛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받아들이려는데 드디어 작은 방울 하나가 추가된다. 미지의 사람으로부터 부탁. 누구누구 소개라고. 마감이 되었음을 알기는 하지만, 정 안 되겠으면 근처의 다른 숙소라도 소개해달라는데, 어찌 매정하게 그럴 수 있나. 받아들일 수밖에. 갑자기 머리가 띵해진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방으로 돌아온다. 이건 좀 지나치다. 이제 소요비용이 상식선을 훨씬 넘어섰다. 깨끗한 비이커에서 물이 터지듯 끓기 시작하는 순간, 그런 형국이다. 어쩔 수 없지. 상황 파괴. 차라리 우리마을 팬션을 빌려 거기에서 그릴파티를 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위험한 생각이지만, 그래도 전화. 다행히 아직 방 예약 가능성은 남아있단다. 특별히 부탁해 짜내 필요한 만큼의 방을 확보하고 리조트는 예약취소. 벌점이 있단다. 그 정도야. 그릴파티냐 식당이냐 저울질하다, 전체적으로 너무 초라하게 변질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에, 또 품위유지의 차원에서, 예약된 저녁식사 그 생각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분통이 터지는 것은, 확인차 전화해보니 그 방아쇠팀이 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 이건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하긴,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제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 상태. 이제 어쩐다. 다시 원상복귀? 하지만 여기에는 본질적 문제가 걸려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내 여기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신의라는 관점에서 또 신뢰성이란 관점에서 남게 될 후유증은? 또 다른 한편으로 내 초대하는 그 사람들의 나에 대한 시각은? 시작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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