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Douglas Kennedy의 'The Big Picture'

뚝틀이 2012. 4. 25. 17:46

기분이 더럽다. 좀 지나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울리지도 않는 표현이지만 딱히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다. 스토리 라인. 어쩌면 이런 플롯이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 짜릿한 느낌으로 쾌재를 불렀을 수도 있을 법하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고 싶은 남성. 사진 예술가가 꿈이었지만 부모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택한 변호사라는 안정된 직업. 사진이란 사치스런 취미를 허용하는 경제력이 보장된 직업.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갈등. 끊임없이 불끈거리며 솟구쳐 오르는 욕망. 작가가 되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대각선상 인물 그의 아내. 경멸스러운 이웃의 직업사진사. 아내와 그와의 불륜. 우발적 살인. 치밀한 사후처리로 꾸려내는 완전범죄의 형태. 작은 도시로 스며들어 그곳에서 시작하는 제2의 삶.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예술적 재능. 대규모 산불사건, 우연한 현장취재. 전국적 스포트라이트. 신분 노출. 이번엔 또 다른 우발적 사건으로 제거되는 사건 추적자. 또다시 강요되는 새로운 삶. 줄거리로만 보자면 참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었던 그런 이야기다. 사진의 세계, 사진가의 세계, 부유층의 삶, 자포자기 외로운 사람들의 삶, 작가의 깊이 있는 자료수집과 재치 있는 풀이가 돋보인다. 스토리의 완급조절도 원만하다. 하지만, 책을 잡고 있는 내내 주인공과의 일체감은커녕 혐오감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딱 한 부분 때문이다. 완전범죄로 꾸미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잔학성. 어쩌면 작가는 이 완전범죄의 구성 그 부분을 그 자체로 하나의 테마로 잡았을지도 모를 일하다. 그러나 독자에게, 적어도 나에게는, 그곳이 바로 주인공이 전혀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발점이었다. 여기만 어떻게 좀 달리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이번에는 내 스스로 작가의 입장에 서본다. 다른 가능성은 없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시도해보던 중, 의외로 손쉬운 해결책이 떠오른다. 잔학한 부분. 그 부분을 빼어내고 피상적으로 처리했어도 소설 전체에서 차지하는 그 비중이 줄어들지 않으면서도 필연성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을 텐데.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Paulo Coelho의 '순례자'  (0) 2012.08.22
이민아의 '땅 끝의 아이들'  (0) 2012.06.30
Irène Némirovsky의 'Suite Française'  (0) 2011.12.16
Walter Isaacson의 'Steve Jobs'  (0) 2011.12.14
Chaim Potok의 'The Chosen'   (0) 201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