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에서 PC를 조립하고 회사를 세우고 자기가 스카우트해온 사람에 의해 회사에서 쫓겨나고 NeXT랑 Pixar를 세우고 애플로 다시 컴백해 iMac iPod 등으로 회사를 일이키고 뭐 그런 줄거리, 또 태어나자마자 남의 손에 넘겨진 쓰라림을 겪고서도 막상 자신의 딸로부터는 고개를 돌리고 마약에 절고 禪에 심취되고 뭐 그런 이야기, 그 정도로 생각하고 이 책을 볼 생각도 안 했었다. 선물로 받은 책 중의 하나라 그냥 펼쳐보다가, 이틀간 푹 빠져버렸다.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일종의 ‘사회 탈락자’였을 스티브 잡스, 더구나 그 괴팍하고 모난 성격의 그가 어떻게 생존경쟁의 장을 헤치며 자신의 꿈을 실현해나가는지, 정글 실리콘밸리 그 현장의 모습은 어떤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동영상’이었다. 컴퓨터 또 IT 제품들이 어떤 변천과정을 거쳐 왔고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실리콘 밸리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또 어떻게 사람이 회사가 먹고 먹히는지, 생생한 그림이 살아 숨 쉬는 책이다.
인간성이니 아량이니 그런 것은 그의 사전에 들어있지도 않다. ‘예술과 기술이 일체화되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철학이 옳다는 확신, 그를 바탕으로 한 집념과 설득력 이것이 바로 잡스의 ‘괴력’이다. 마치 특공대 작전처럼 적재적소에의 인재배치, deep collaboration, concurrent engineering, 잡스 경영의 핵심이다. ‘지속성장이 가능한 회사’ 그것이 잡스의 경영철학이고. 냉혹주의, 완벽주의, 엄청난 집중력, 이것이 그의 특징이다.
같은 55년생 빌 게이츠와의 애증관계. ‘귀공자’ 타입과 ‘야생마’ 타입이라는 성격상의 대비뿐이 아니다. 오픈 시스템 세계를 지향하는 마이크로 소프트와 ‘시스템의 모든 조각조각’을 자기 컨트롤 아래 두어야한다는 seamless 제품군을 추구하는 애플, 근본적으로 대척점에 놓인 두 회사. 그냥 한 번 상상해본다. 시애틀의 그 거대한 캠퍼스 거기에 앉아있는 스티브 잡스, 엘카미노리얼과 쿠퍼티노의 자유분방한 회사들 한 가운데의 빌 게이츠. 이런 모양으로도 역사가 흐를 수 있었을까? 환경과 역사가 인물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인물이 역사를 그려가는 것일까.
‘경제적 동물’ 스티브 잡스에 작용하는 ‘운’의 모습도 흥미롭다. 막대한 투자를 한 Pixar, 바닥난 자금에 원금이라도 건지려 매물로 내놓았던 그 회사에 다가온 디즈니의 손길, 이어지는 대성공. 역시‘껍데기 상태’의 NeXT가 애플에 인수되며 쫓겨난 지 12년 만에 애플에 돌아오게 되는 행운. 복귀 후 2년 간 스탁옵션도 없이 연봉 $1로 일하는 ‘쇼맨십’. iMac 성공으로 전용 제트기에 9억불 가까이의 스탁옵션을 받아내지만, 인터넷 버블이 꺼지는 바람에 권리행사도 못하고 그냥 휴지조각이 되는 ‘불운’.
성격적 불행 그것도 한 편의 이야기다. 췌장암이 발견된 후 즉시 수술했더라면 간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연요법에 의지하며 버티다가 9달 후에야 비로소 수술, 그 후에도 계속된 다이어트에 회복에 필요한 영양가를 확보하지 못한 그의 몸 면역력이 약해져, 결국은 죽음의 길로.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이제 다 나았다’고 이야기하던 그때는 이미 사실 암이 사방에 다 퍼진 상태에서였고. (유럽의 암 대체의학 시장이 그렇게 큰지 놀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기업 이런 인물 또 이런 이야기 이 이야기가 가능할 수 있을까. 사회 구석구석까지 뻗어있는 재벌 또 기득권자의 손길이 없다면? 아니 그 이전의 문제가 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 ‘밸리’로 흘러드는 엄청난 국방산업 자금, 실패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멘탈리티, 필요한 인력을 어디서나 즉시 구할 수 있는 도전정신 가득한 인력 풀, 이런 환경이 우리나라에도 가능해지는 날은? 전용제트기 타고 마제라티 몰고 다닌다니는 '성공자'들이 '우굴거린다'면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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