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세상은 돌아간다.

뚝틀이 2012. 6. 22. 18:11

3시 40분. 알람 소리. 사실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느라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편한 마음으로 깨어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람에 놀라 튀어 일어나다니, 그 사이 잠깐이라도 잠이 들긴 들었었나 보다. 준비는 이미 다 해두었으니, 남은 것은 딸 가족 세 식구 짐 싣고 떠나는 일뿐. 새 직장 시작하기 전 두 주 동안의 시간, 마음껏 축하해주고 싶었지만, 한없이 늘어지는 집짓기 일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고, 또 시간을 낸다 해도 응호라는 세상중심 인물의 비위 맞추는 일 또한 보통 벅찬 것이 아니었으니. 더구나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사위에게 따뜻한 말 제대로 해주지도 못하고. 하긴 며칠 전 며느리 왔을 때도 이야기 한 번 제대로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곳이나 이곳이나 따지지 말고, 너희가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부모의 바람이다 뭐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나. 그들이 이 땅에 있건 거기에 있건 내 생활 그다지 다를 것 없을 테고. 아직 컴컴하다. 내비게이션 예상시간을 보니 두 시간 반. 뭐 어려운 일 아니지. 시간 여유도 충분하니 속도를 높일 생각도 없다. 긴장한 탓인지, 그 쓴 에스프레소도 한 모금에 넘어간다. 공항 도착. 예전엔 내 집 같이 느껴졌던 곳. 하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 편안히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오늘 하기로 한 벽체작업 실험.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다. 아쉬운 대로 작별인사 건성으로 나누고 집으로 향한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땅 띠르링 띵. 갈림길을 놓쳤다는 신호음이 나온다. 가다보면 또 기회가 있겠지. 정신 바짝 차리고 가는데, 역시 또 땅 띠르링 띵. 또 놓쳤다. 이번엔 정말 정신 차려야지. 하지만, 어느 새 안양 시내. 이때라도 차를 돌려 돌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적당한 곳 눈에 띄면 해장국 한 번 즐기지 뭐 아니 어차피 약국에도 한 번 들려야하는데 하는 마음에 그냥 달린다. 달려? 바쁜 마음엔 신호등까지 합세해 인내심 평정심을 강요한다. 가도 가도 고속도로 표시는 없다. 러시아워 1번국도. 아니, 이곳은 러시아워가 따로 없는 길이다. 이제 급한 것 그런 것 없다. 단지 아무 일 없이 여기를 벗어나야한다는 그런 마음뿐. 삶 역시 그런 것 아닌가. 잘 못 드는 것 알면서도, 지금이라도 다시 조금 되돌아가 제 길로 들어서면 된다는 것 알면서도, 이런 저런 합리화 생각 만들어가면서 그냥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배우기? 꼭 경험으로 배울 필요가 있을까. 조금만 여유 있게 생각하면, 그런 경험 다 생략하면서도 현명해질 수 있는데. 최근의 집짓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가볍게 포기하고 원래 계획으로 돌아갔으면 이렇게까지 늦춰지지 않아도 되었는데. 생각하는 동물이 잘못을 합리화하는 동물이 되었을 때.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 첫 번째 잘못 들었을 때, 그때 다시 돌아갔더라면 10분 20분 정도의 지체였겠지만, 이제 벌써 한 시간 이상 엉뚱한 곳에서 고생하고 있다. 다시 고속도로에 들어섰지만, 그렇다고 금방 휴게소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졸음기운까지 느껴지니 정말 힘들다. 조심조심. 첫 휴게소에 들어서 청량음료 한 모금. 전화가 울린다. 어디쯤이냐고. 도착할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어 온 확인전화. 한 참 늦어지다 보니 이젠 마음에 여유까지 생긴다. 맛있는 것 사가지고 집에서 먹을 요량으로 느긋하게 별미 재료랑 신선한 과일 쇼핑까지 즐긴다. 또 걸려오는 전화. 딴 곳으로 가는 중이니, 점심은 그 집에서 들라고. 이런, 제길. 난 언제나 프라이오리티 넥스트다. 부랴부랴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결정이 났다. 신뢰도를 고려한 당위성에 의한 결정. 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아니, 어쩌면, 내가 없어야 세상은 잘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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