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켰다면 완강히 거부했을 것이다. 누가 부추겼다 해도 절대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안개비 죽죽 내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드램프가 비쳐주는 바닥을 짚어가며 가파른 비탈길 오르기.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인데. 운명? 그렇다. 내가 택한 삶, 운명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내가 택한 삶, 그것이 운명의 동의어이다. 가끔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제도 그랬다. 그래서 잠을 포기하고 그냥 차에 올랐고, 지금 이 무박으로 시작한 산행 길에 올랐다. 고개 들어 앞을 올려다보는 횟수만큼 고통이 커진다. 어휴, 끝이 없잖아. 착한 방법은 그저 발아래 길을 보며 묵묵히 걷는 것이다. 숨이 차다. 너무 힘들다. 잠깐 앉아 쉰다는 것이 이내 잠으로 연결된다. 꿈까지 곁들여. 수런수런 말소리에 깨어난다. 내 쪽으로 올라오는 희미한 불빛. 일찍 오신 모양이죠? 사뿐사뿐 저 부부 발걸음도 가볍다. 비는 그렇다 쳐도 웬 바람이 이리 센지. 나무들이 쓰러질 듯, 귀를 막아야할 정도로 소리 또한 요란하다. 그냥 이쯤해서 포기해? 자꾸 마음이 약해지려 한다. 아무리 비바람 몰아쳐도 날은 밝는다. 그것은 진리다. 머리 각도 고정을 강요하던 램프가 없어지니 한결 몸이 가볍다. 드디어 삼거리를 벗어나 이제 능선. 하지만, 그렇다고 길까지 편해지진 않는다. 제멋대로 널려있는 흠뻑 물에 젖어있는 바위틈 사이로 움직이는 이 길은 차라리 곡예 코스다. 기어오르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내리기에는 전혀 봐주는 것도 없다. 위험하고 잔인함 그 자체다. 동영상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화면의 중앙에 짐승이 자리하고, 그에게 바위가 또 푹 꺼진 곳이 다가오며 지나가는 그런 동영상. 움직여야한다. 움직임만이 살 길이다. (참 실감나게 하려면 2D가 아니라 3D 그래픽에 렌더링이 들어있어야 하겠네.) 오색으로 오르는 대신 이 길을 택한 것은 경치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일기예보엔 오늘 설악산은 맑음이었다. 잠깐 안개가 걷힌다. 카메라는 배낭 속에 그대로, 아쉬운 대로 스마트 폰으로 한 컷.
이제 곧 활짝 걷히겠지하는 바람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 날은 다시 구질구질해지고 험한 길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왜 또 올라왔니. 이제 더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게 해주지. 안개, 비, 물에 젖은 바위의 합동작전은 계속된다. 역시 또 하나의 진리. 꽃은 있고, 그 꽃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망설여진다. 이 비에 카메라를 꺼냈다가 지난 번 식으로 아예 한 동안 작동을 멈춘다면? 아쉬운 마음으로 그저 스마트 폰으로 찰칵 또 찰칵.
서두를 것 뭐있나.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느긋하게 아침을 들며 기다리는데, 자리 옆에 단풍취가 눈에 띈다. 사실 낮은 곳에서는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아니지 않은가. 또 다른 녀석들은 아직 잠잠한데 이 녀석만 성급하게 나온 것이고. 이것 사실 횡재 아닌가.
이런 식으로 더 이상 계속할 수는 없는 일.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꺼낸다.
이 무슨 마음. 갑자기 꽃 사진 찍기가 귀찮아진다. 렌즈 바꾸기도 번거롭고, 자세를 취하기도 힘들다. 그냥 알리바이 성으로 찰칵 찰칵. 삶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삶에는 분명 목적이 있는데, 바로 그 중요한 목적의 순간에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지는 것. 만일 내가 집 근처 낮은 산에서 이 단풍취를 보았다면? 그랬다면 아무리 빛이 없어도 온 정성을 다해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찍었을 테지. 그런데 지금은? 마치 누구에게 심술이라도 부리며 데몬스트레이션 하듯 이 무슨 대충 대충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냥 다시 카메라를 집어넣는다.
결국 중간에 좋은 경치 다 놓치고 끝청에까지 왔지만, 날은 여전하다. 이제 간간히 반대편 쪽에서 사람들이 나타난다. 중청으로 내려가는 동안 날이 트이기 시작한다.
운만 따른다면 대청봉을 덮고 있는 저 안개도 걷힐 것이다.
하지만 웬 걸. 가까운 중청 대피소까지 이렇게 가리는 이 심술.
그래도 희망은 남아있다. 사실 산 아래로 말하자면 저 밑 동해안까지도 눈에 들어올 정도로 맑은 날 아닌가.
이제 야생화의 보고. 광각렌즈로 배경까지 담으려 기다리고 또 기다려본다. 내려가는 시간이 늦어지면 플래시를 켜고 가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역시 운이 따르질 않는다. 겨우 흉내만 낼 정도 그 정도의 사진만 건질 뿐.
그래도 오늘 큰 소득이 있다. 가는다리장구채. 이 귀한 꽃을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더 이상 기다리다간 너무 늦어질 것 같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카메라는 다시 배낭 속으로. 오색으로 내려가는 길. 지난번에는 낮에 내려오느라 여유가 있었고, 그전에는 캄캄한 밤 비오는 밤이라 그냥 무의식 속에서 걸었었지만, 오늘은 어두워지기 전에 다 내려가려는 욕심에 자꾸 서두르게 된다. 눈에 띄는 흰송이풀 또 참바위취. 역시 그냥 폰으로.
늦어지면 어때 하던 조금 전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잔인한 길. 잠깐의 쉼도 허락하지 않는 돌과 계단의 이 길,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편할지는 몰라도 내려가는 사람에겐 위험천만 길. 조금만 무리하면 허리에 무릎에 무리오기 삽상이고 까딱 잘못하면 발목 삐기 딱 좋다. 하지만, 얘야, 얘야. 이 귀한 꽃들을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네 이렇게 성의없게 찍을 것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나? 부끄럽다. 한없는 부끄러움에 잠긴다. 이렇게 ‘좋은 날’을 보내고도 왜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한가. 날이 좋지 않아서? 잠 못 자고 산행하는 게 너무 힘들어 사진에 성의를 다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서? 만 가지 핑계 다 의미 없다. 야생화를 좋아하며 식물을 좋아하며 왜 거기서 배우지 못하는가. 환경은 택하는 것이 아닌 주어지는 것. 나에게 남은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뿐. 불평? 나무랑 풀이 누구를 부러워하는 것 보았는가? 바위길 그곳에 자리한 나무, 사람들이 잡고 오르고 잡고 내리느라 닳고 닳은 그 나무들을 보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