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마당'에 있는 소나무.
현관에서 볼 때, 아래쪽으로 높이의 한 1/3정도가 가려져있는 이 거대한 나무의 수령은 적어도 120년이다.
몇 년 전 폭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여기 옆 작은 동생 소나무가 쓰러졌을 때 호기심에 나이테를 세어본 적이 있기에 그건 확실하다.
볼라벤이라나 뭐라나 하는 태풍, 오늘 바람 참 거세다. 이곳에 이사 온 후 가장 공포에 떤 날이다.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부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우찌근우찌근 소리까지 내는 것이 심상치 않다.
더구나 그동안 내린 비에 물까지 흠뻑 먹은 상태니.....
그 오랜 세월 오늘보다 험한 날 수없이 겪었을 텐데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나, 생각하려 애쓰지만 참 불안하다. 무섭다.
동영상이란 걸 처음 찍어본다.
물론 카메라에도 그 기능이 있지만, 아직 써본 적은 없고, 또 무슨 잔치 났다고 그렇게 거창하게 정성들이고 싶지도 않고.
공포상황을 실감나게 담았다 생각했는데, 다운로드 한 후에 사진을 찾아보니 동영상이란 게 없다.
이건 무슨 일? 아하. 시작 버튼이란 것 누르고 또 끝나는 버튼 누르고... 내가 화면 지켜보고 있다고 그냥 찍히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당연하지. 물론 당연하지만, 그때 찍을 땐 그 실감나는 상황에선 그렇게 당연한 것까지에도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변명은 집어치우고, 다시.
정성들여 한참 찍다가, 전율의 순간 비슷한 장면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이즈가 너무 커 블로그에 올라가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
그래서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연습정도는 해볼 필요가 있는 법.
하지만, 그뿐 실감나는 장면 잡을 기회는 그냥 지나가버린 모양. 할 수 없이, 그래도, 여기 짧은 동영상 하나.
사람 사는 것 역시 마찬가지. 살아가노라면 이런 시련 어디 한 두번이겠는가.
위기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 유연성. 그 유연성은 어디에서 나오나.
(저런, 저런! 와~! 저 나무 지금이라도 그냥 당장 부서져내릴 것 같다. 정말이지 오늘.....)
뿌리, 줄기, 가지, 잎. 그 조화의 어느 한 구석이라도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생각을 더 계속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그 우찌근 소리날 때 나무가 크게 상한 것 같다. 느낌으로 보자면 나무가 많이 기울었다.
옛날에 찍어놓은 사진을 찾을 수가 없네. 같은 위치에서 찍은 것 찾을 수만 있다면, 뿌리가 상하면서 각도가 기울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