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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H. Reichholff의 '美의 기원'

뚝틀이 2012. 8. 24. 13:42

수컷 공작의 화려한 꽁지깃. 사슴의 요란한 뿔. 포식자의 눈에 잘 띄는 이런 사치낭비로의 진화는 분명 생존의 관점에 역행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윈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이론은 ‘자연 선택 영역에서는 각 개체들이 자연의 변덕에 적응하고 성 선택 영역에서는 같은 종의 수컷들이 암컷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툰다’는 性 선택 이론이다. 그렇다면 자연이 개체의 ‘허영’을 허락할 만큼 만만하다는 말인가. 아모츠 자하비는 성 선택 이론이 옳다는 전제 아래 핸디캡 원칙을 덧붙였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요란한 깃이라는 핸디캡을 안고서도 무사히 살아남은 수컷이라면 그 수컷은 능력과 건강에서 이미 검증된 것이고 그 유전자도 훨씬 뛰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에 수컷의 핸디캡이 클수록 암컷의 선호도는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저자 요제프 H. 라이히홀프는 ‘고급 차를 가진 남자가 1명 있다면 여자는 그를 선택하겠지만, 세상 모든 남자가 고급 차를 갖고 있다면 여자는 누구를 선택하나’라 물으며 이런 이론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관찰을 통해 발견한 사실. ‘수컷 공작 장식깃의 단백질 함량은 암컷이 알에 투입하는 양과 비슷하다. 또 수컷 공작이 털갈이를 하는 주기는 암컷이 알을 낳는 주기와 비슷하다.’ 그의 주장. 암컷은 알을 만들어내고 새끼를 키우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반면, 부화와 양육 부담이 없는 수컷은 몸속에 에너지가 남아돈다. 몸을 화려하게 꾸미거나, 수컷끼리 치열하게 싸우거나, 쉼 없이 지저귀거나 하는 것은 살이 쪄 둔해지지 않기 위한 일종의 생존을 위한 다이어트. 수컷이 양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종에서는 수컷도 양육에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꾸밀 여력이 없기 때문에 수컷과 암컷의 모양과 몸집이 비슷하다는 사실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1부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 후에, 이론과 관찰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그의 논리전개에 그냥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의문 ‘아름다움’에 대한 선호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에 대해 다루는 2부에서 들어서면서부터 그의 주장과 논리전개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는 느낌이다. 생물은 환경이 찍어내는 복제품이 아니다.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적응은 가능성이지 필연성은 아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두더지와 물밭쥐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 그는 진화 과정의 원칙은 필연이라기보다 가능성이며, 강압이라기보다 자유다. 생물체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 부단히 애쓸 뿐 아니라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역시 끊임없이 노력한다. 진화론을 적응이라는 수동적 관점에서 자유라는 능동적 시각으로 진화시키는 견해라고나 할까.

 

인간만이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품위에 대한 공격에도 망설임이 없다. 동물 세계와 달리 왜 인간은 여성이 남성보다 꾸미길 좋아하고 아름다운가. 그는 그것이 다른 동물에 비할 수 없이 오래 걸리는 인간의 양육 기간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걷고 1~2년 뒤면 생식 능력을 갖추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14~18년간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 가족, 공동체의 도움이 있어야 아이를 원활히 키울 수 있다. 여성이 스스로를 가꾸는 이유는 배우자인 남성이 아이를 돌보지 않은 채 떠나는 걸 막기 위해서다. 매력을 유지해야 남자를 붙잡을 수 있다. 동물 세계도 비슷하다. 새끼를 보살피고 번식 조건을 유지하기 어려운 종일수록 암수의 유대관계가 좋다. 발정기가 따로 없는 인간의 性도 비슷하게 해석한다. 아이를 오랜 시간 함께 보살펴야 하는 남녀 파트너는 수시로 결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가장 강력한 수단이 성이다. 성은 자손 생산의 수단을 넘어 인간 결속의 원동력이다.

 

3부에 들어서면 어지러워진다.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으로 가득하다.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고, 젊게 행동하고, 또 남자들에게 성적 매력을 풍기는 여자들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 “여성적 공격성의 대부분은 경쟁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거기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것이 미의 표현이다.” “사회적 질투는 대부분 아름다운 여성에게 쏠려 있다.” 여기에서의 그의 결론도 역시 ‘자유’다. 생물은 환경에 길들여지지만, 또 거기서 벗어나려 한다. 어떤 종이 환경에 의해 허락된 이상형에 가까워진다면, 오히려 그 종은 멸망할 가능성이 크다. 유전적 다양성이 미미하면 갑자기 들이닥친 외부 병원체에게 취약하다. 단일 혈통으로 내려온 지체 높은 귀족은 면역력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줄곧 이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표준에서 벗어난 이들을 떠안는 사회가 강한 사회고, 미의 이상에서 벗어난 개성이 강인한 종족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