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부희령의 소설집 ‘꽃’

뚝틀이 2012. 8. 22. 23:10

작가 부희령이 여러 곳에 발표했던 일곱 편의 단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칙칙하고 어두운 세상. 작가가 보는 이 땅위의 삶 모습이다.

‘화양’이란 호남지방 어디엔가 옛날 언젠가 가본 적이 있는 마을, 남자가 이야기하는 그곳에 언제 한 번 같이 갈 희망의 나. 하지만, 나 이혼녀는 그 내연남의 항암치료에 동행하며 아내가 그의 마음속에 더 중요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그, 그의 쪼들림에 도움이 되는 나. 그와 다투게 되고야마는 환멸의 순간, 눈에 들어오는 간판 ‘머니 익스체인지’. 누가 누구를 왜 필요로 하는지, 감정과 돈의 등가 교환?

넷째 딸로 태어나 유년시절 자신의 성을 부정하고 증오했던 여자가 자신이 겪어온 지난날의 여성성의 성장기록. 성관계라는 것이 성에 대한 각기 다른 이해관계의 교환일 뿐임을 역설하는 ‘꽃’.

이혼녀라는 꼬리표와 빚보증을 잘못 서 생계를 위해 보험 일을 하고 있는 여자, 기댈 곳 없는 이 세상. 누군가에게 밟히거나 누군가를 밟지 않으면 안 되는 생존의 지옥. 그 이혼녀의 어떤 하루, ‘팔월의 월요일’.

혼자 살던 무허가 셋집이 재개발로 헐리게 된 40대 중반 남자. 청춘 시절 옛 친구들에 손을 벌려보지만 무위. 1년 결혼생활에 그친 전 아내의 아파트에 들어가 물건에 손을 댔다 경비원들에 들키고, 때마침 나타난 전 아내로부터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돈 봉투를 받아들게 되는 ‘어떤 갠 날’.

정신현상연구회라는 동호회의 오프라인 모임. 위선적 겉모양과 맨얼굴 속마음을 냉소적으로 그린 ‘사다리 게임’.

출판사로부터 번역료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이혼녀, 그녀가 향하는 ‘정선, 청령포’로의 길에서 회상하는 젊은 날의 이상과 현실, 그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 운명적 비극.

 

장편소설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단편소설은 무엇에 해당할까. 아니 소설 읽기를 등산에 비유한다면 장편과 단편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어째서 단편소설을 읽은 다음의 느낌이 개운치 못한 것일까. 물론 한편의 ‘주옥같은 그림’이라는 느낌을 받은 단편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 이 책처럼 책 덮는 순간까지 무엇인가 기대해보지만 결국 시간 낭비였다는 아쉬움만 남는 그런 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