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

뚝틀이 2012. 8. 25. 10:10

뭐 이런 소설이 있어. 계속되는 동화 같은 이야기 그 횡설수설에 지쳐 그냥 덮어두었던 책.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에 딱히 할 일도 없어 다시 손을 댄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경계 지방(이 두 나라가 만나는 곳이 있던가? 어차피 우화적 성격인데 뭘.) 한 영지의 남작 가문. 봉건적이고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시대착오적 아버지, 가정교사인 한물간 신부, 과거가 그림자인 변호사 삼촌, 위선의 화신인 수녀 화자의 누나. 어느 날 화자의 형(12살) 코지모는 아버지와 누나에 또 집안 분위기에 대한 쌓여온 분노를 터뜨리고 나무 위로 올라가게 되고, 그 후 죽을 때까지 내내 나무 위를 옮겨 다니며 (우화에 걸맞게, 유럽 여러 곳에까지 행동반경을 넓히며) 살게 된다. 아무리 가족들이, 스페인에서 만난 고귀한 가문의 딸이, 어린 시절부터 머리와 가슴을 떠나지 않았던 공작부인이 내려오라 애원해도,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만은 절대 거부하는 그. 갇힌 울타리 속의 삶이었다면 만나기 힘들었을 빈민가 가난한 집 아이들이나 도적들 그 계층과의 어울림, 금서의 탐독 또 루소나 디드로 같은 당대 지식인들과의 서신교환을 통해 어린 형의 생각세계는 넓혀지고, 집단방위 체제를 도입하고 공동체 시설을 개발하며 존경받는 남작으로 성장해가고, 나폴레옹의 혁명과 왕정복고 예수회 메이슨 등 당대의 시대적인 사건에 휘말리며 기회와 도피의 수난을 겪다, 65세를 넘어 늙어 병들어서도 절대 땅은 밟지 않다가, 때마침 지나가던 거대한 비행기구에 달린 밧줄에 매달렸다 결국 바다에 떨어져 사라지게 되는 주인공 그. ‘땅 위’의 사회 부조리에 대해 반항하며 ‘나무 위’의 삶이란 거리를 둔 그 남작은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의 레지스탕스 시절 공산당에 가입했다가 탈당한 경험이 있는 작가 이탈로 칼비노 자신의 모습이요 세상에 대한 생각의 반영 아닐까. 절대적인 고집과 끈질긴 반항을 통한 전혀 다른 세계의 구현을 꿈꾸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롱받는 존재임을 직시할 수밖에 없는 그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