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tch of Portobello'. 대충의 줄거리는 이렇다. 레바논 부모에게 입양되는 딸. 집시 혈통 그의 이름은 아테나. 내전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하는 그의 부모. 사랑에의 눈뜸, 학업중단, 결혼, 아이, 이혼. 성체성사 참여를 거부당하는 아테나, 교회를 저주하며 떠나는 그. 세든 집 주인으로부터 전수받는 춤과 의식, 직장 동료들에의 전파, 아랍 파견 근무 중 그곳 현자로부터 서예와 도에 대한 수업. 사업적 성공. 집시 생모를 찾아 나선 루마니아 길, 엄마 또 이교도와의 만남. 깨달음, 타인의 몸 상태와 마음을 꿰뚫어보는 능력의 발견, 사랑 또 ‘어머니 신’의 전파, 수난. 그리고 ‘반전’.
작가의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본다. 어떤 사람의 일대기를 쓰려한다 치자. 빈소에 모여 앉은 사람들. 키워준 부모, 낳아준 엄마, 그를 사랑했던 사람, 그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 그를 이끌었던 또 그에게 이끌렸던 사람 등 등 그를 아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이야기를 모아 스토리라인을 잡았다 치자. 어느 마녀의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생각을 하면 얼마나 난감할까. 설령 거기에 무슨 큰 철학이나 설득력 있는 주장을 담아 공감을 불러일으킬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들이 ‘소설’의 본질일 수야 없지 않은가.
작가 코엘료의 독창성은 여기에 나타난다. 이야기 시작에 작가는 말한다. 아테나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풀어내보려 했지만, 자신의 주관이 자꾸 섞여 들어가게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서 ‘인터뷰 내용을 그냥 가감 없이 그대로 싣기로’ 했다고.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도 이런 재미있는 시도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참 신선한 발상이다. 영화로 치면, 인터뷰 모음으로 주인공을 묘사하는 식이다. 덕분에 주인공의 생각과 인간적 면모를 여러 각도로부터 조명하고, 그에 대한 비판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또 인터뷰에 자연스럽게 끼어들게 마련인 횡설수설 성격을 빌어 집시의 삶이니 루마니아 또 구소련 이야기도 섞어 넣을 수 있었고.
마녀란 모든 여성 안에 깃든 신의 성정이고, 신 또한 자연 속에 깃든 여성성이다. 운명적 힘에 이끌려 마녀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아테나의 이야기, 그 내용 하나하나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 상관없이 참 ‘재미’라는 흡인력에 덕에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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