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지나다니는 사람

뚝틀이 2012. 10. 25. 14:10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20년 쿠데타 론’을 이야기하던 그 당시이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독기어린’ 얼굴로 내 연구실에 들어섰다. 인사 따위는 사치. 곧장 독백으로 들어간다. 선생님 세상을 알기나 하세요? 난 학비마련하려 동생들과 함께 포장마차 한다고요. 그의 기세에 눌려 조용히 들을 수밖에. 새벽 4시면 수산시장에 가야하고, 싱싱한 재료를 깨끗이 손질하고 나면 8시, 쉬지도 못한 채 학교로 오게 되죠. 학교 끝나면 서둘러 포장마차로, 7시부터 손님 맞기 시작해 한두 시까지 손님 받고, 다음날 영업위해 깨끗이 정리하다보면, 어느 새 또 수산시장 가야할 시간이고.... 결국 수업시간이 졸며 자며 유일한 휴식시간이랍니다. 상대방의 진심을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가슴을 쿡쿡 찌르는 것이다. 그렇게 일해도 우리 동생들 앞날은 캄캄합니다. 요점이 뭔데... , 그래서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그의 목소리가 드디어 한 옥타브 높아진다. 우리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동안 선생님은 편하게 유학이나 하시고, 이제 와서 학생들의 투쟁에 ‘훼방’이나 놀면서, 한가하게 20년 쿠데타 운운하시다니.

 

훼방? 방해?....... 아하! 그것 때문이로구나! 그 전 학기에 내 과목에서 40%를 F준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한이 맺혔던 것이다. 다섯 번이나 시험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다들 ‘타도 전두환’ 외치느라 날 상대 해주지도 않았으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인데.

 

그 때 짜장면 가게 얘기를 꺼냈다. 나라를 위한다고, 내가 짜장면 가게 문 닫으면, 우리식구 굶게 되고, 그리되면 저 육사 더 날뛰어도 방법이 없다. 짜장면 잘 만들고, 공부 열심히 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으니, 머리에 수건 질끈 동여매고 그깟 전경과 맞서는 것은 일단 짜장면이나 팔고나서 하자했다. 그런데도 짜장면 만들기 포기한 이들에게 F 아닌 B돈 C돈 주라고? 천만에! 그렇게 동생들 위하는 마음이 지극하다면 삼성에 취직하라. 밤낮으로 연구하고, 누구도 흉내 못 낼 특허 만들고, 수십억 불 수백억 불 수출해보라. 이병철 회장이 개인적으로 저녁초대하면서, 원하는 것 무엇이든 다 들어 주겠다 할 것이다. 그 때 요구하라. 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고. 후배들이 아르바이트 걱정 없이 마음 놓고 공부하게 장학재단 하나 부탁한다고. 또 한 가지. 집안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배움을 포기하고 이 삼성에서 일하고 있는 공원들 위해 야간대학 하나 삼성 옆에 세워달라고.

 

이 학생 나중에 과학원 입학하고, 지나가던 길에 인사 왔었는데, 그 후론 어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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