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읽는 재미는 속는데 있다. 작가의 재미는 독자를 한 번 멋지게 속이는데 있고.
이 소설 한 가운데 나오는 말, “선입견은 敵이야. 보이는 것도 감추어버리게 하니까.” 그렇다. 작가는 엉뚱한 쪽에서 선입견의 불씨를 지피며 독자의 눈이 그쪽을 향하게 한다. 물론 그러는 한편 독자의 발밑에도 살살 구슬들을 뿌려나간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뿌려놓는 말 한마디 묘사 하나, 이야기가 끝날 때쯤 줄로 엮인 그 구슬들을 들어 올리며 어때 한참 잘 속았지 요건 몰랐지 하며 독자의 박수를 받아내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추리소설이고, 그래서 추리소설 읽기는 게임이다. 현란한 이야기 흔듦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눈 부릅뜨기.
이 소설의 이야기는 사건현장의 ‘상세한 소개’로 시작된다. 딸과 함께 숨어살고 있는 여자를 찾아온 전 남편. 그의 광폭한 행동에 우발적으로 저질러지는 살인사건. 그녀를 흠모하던 옆집 아니 옆방의 천재 수학선생. 도움을 자청하는 그. 공터에서 발견되는 참혹하게 ‘처리된’ 시신, 하지만 신원파악에 ‘성공’하지만 그것은 이 천재가 심어놓은 함정. 점차 좁혀져오는 수사망. 또 하나의 천재를 등장시키는 작가. 이 수학선생의 동문인 물리학자. 처음부터 독자에게 밝혀놓은 사건의 묘사, 두 천재의 두뇌싸움 그 성격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추리소설이건 스릴러 영화건 서스펜스 그것이 생명이다. 따라서 이야기는 점점 이제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조여갈 수밖에 없고, 예상치 못한 반전 그것은 필수다. 바짝바짝 조이다 한 방에 터뜨리기. 하지만, 그 한 방이 ‘신의 손’에 의한 것이면, 논리적 연관성이 끊어진 새로운 트랙이 갑자기 노출되면 독자는 허탈해진다. 이 책이 바로 그런 경우다. 빈민촌의 모습 그 장면이 몇 번 언급되었다는 것을 복선으로 인정하기엔 너무나 허술하다.
마지막 제풀에 지쳐 사건개요를 ‘설명’하는 작가에 대한 측은함마저 느껴진다. 더구나 진부한 멜로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아깝다. 사실 이 부분을 바로 이 부분을 두 천재의 추리능력 대결 형태로 승화시켜나갔더라면 아주 멋있는 소설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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