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힘들 정도로 깨알 같은 글자에 분량은 400페이지가 넘는 책. 봄에 받았지만 아직 그냥 책장에 꽂혀있는 신세였던 이 책. 새로 주문한 책을 기다리다, 망설이고 망설였던 이 책에 손이 간다.
30년 만에 모국에 다시 발을 딛는 Urania, 이제 미국인이 다 된 그녀의 눈에 비치는 도미니카의 거리 풍경 또 그 사람들의 시선. 문장의 흐름은 거침없지만 어찌 보면 꼭 술 취한 사람의 횡설수설 같은 느낌이다. 계속 읽어야하나? 다시 덮으려니 좀 아쉽다. 그래도 명색이 노벨상 수상자의 대표작인데.
책 반을 접어 약간 뒷부분 챕터를 펼쳐 읽어본다. 한때 요직에 있었지만 왜 갑자기 버림받게 되었는지 모르는 Agustus Cabral(바로 Urania의 아버지)에게 독재자에 아부하는 측근이 술수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권력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간악함 인간의 나약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마치 우리 사극의 가장 역겨운 부분을 보는 느낌이다. 네로 황제보다 더한 독재자, ‘추악한’ 발걸음을 옮기다 갑자기 그의 죽음을 맞게 되는 그. 어허, 이 책 보통이 아닐세.
Google에 들어가 이 책이 도대체 어떤 책인지 찾아본다. Urania란 인물만 설정일 뿐 나머지는 1930년부터 31년간 도미니카의 독재자로 군림했던 Trujillo(트루히요 이 사람이 바로 Goat, 발음은 키와 히의 중간 정도)의 실제 이야기란다. 줄거리를 대충 읽어보고 다시 책을 손에 잡는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무슨 내용인지,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그런 정보는 얼마든지 검색으로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읽기는 생각읽기요 읽는 동안 자기와의 대화다. 등장인물 마음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생각 그 심리묘사 거기에 반영되는 작가의 생각깊이 이것이 바로 독자를 살찌우는 영양분이다.
하긴, 페루의 대통령후보로 나서기까지 했던 작가니 그에겐 한때 남미 여러 나라에 전염병처럼 번졌던 독재정권 그 전횡과 속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어쩌면 아주 신나는 일일 수도 있겠다. 권력의 잔인함, 권력주변에서 아니 그 그늘 밑에서 벌어지는 아부 음모 암투. 아까 초반에선 느껴졌던 것과는 전혀 달리 마구 퍼부어대는 그의 이야기 그 흐름이 오히려 감탄의 대상으로 변한다. 선입관의 위력이란 이런 것일까.
이야기는 세 개의 트랙을 밟는다. 그 하나는 Urania 아버지를 중심으로 권력의 간악함과 무상함을 풀어나가는 트랙, 또 다른 하나는 또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모욕을 참아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전개되며 독재자 암살의 필연성이라는 복선을 깔아나가는 트랙, 그리고 또 거기에 독재자 입장 그의 시각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이란 이런 것 그런 트랙.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고모로부터 듣는 이제 식물인간이 된 그녀 아버지의 몰락 이야기는 개략적 추측의 형태로 진행된다. 실제로는 말이야 하는 자세한 묘사는 마치 배경음악이 흐르다 선명한 나레이션으로 바뀌듯 작가의 몫으로 넘어가곤 한다. 스토리텔링에 몰입되는 독자의 긴장을 늦추기 위해 작가는 앵무새 달밤 공원 파도소리 이런 쪽으로 ‘카메라’를 돌리기도 하고 아예 옆길로 빠지는 것 역시 작가의 몫이고. 하지만 대화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을 보충해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이는 그런 기능 그것이 바로 이 옆길이다.
심복들의 충성도를 테스트하기 위한 수단의 인간적 모욕, 심지어는 그 일환으로 부인이나 딸까지 요구하는 독재자 그의 모든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게 하는 측근들의 끝 모르는 충성과 아부, 나약하기 그지없는 꼭두각시 대통령 그에게서까지 들려오는 악마의 속삭임. Urania의 아니 독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체적 그림, 그 진실. 고모에게 털어놓는 Urania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 역시 14살의 나이로 겪은 그 인간적 비극 때문이었었고.
암살로 이야기가 막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할 군사령관이 어처구니없게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실권은 오히려 그 독재자의 아들에게 넘어가고, 이어지는 잔인한 보복 순서. 여기에 로봇에 지나지 않는 줄로만 알았던 대통령의 변신, 노회한 그의 일 처리.
어떤 부분에선 꼭 박정희와 차지철 또 김종필 우리의 역사를 이름만 바꿔놓은 그런 느낌도 들도 ‘서울의 봄’ 그 시절이 연상되기도 한다.
나 개인에의 보너스라면 도미니카와 그 옆 나라 아이티와 사이에 어떤 역사적 관계가 있었는지 또 중남미라는 곳에서 가톨릭이란 존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거기에 대한 느낌도 얻었다는 것이고.
달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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