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홍콩 소녀 Kimberly, 엄마와 함께 미국 땅에. 먼저 와 정착한 이모에 실려와 던져진 곳, 유리창 다 떨어져나가고 쥐와 바퀴벌레 우글대는 브루클린 빈민가 아파트. 난방장치는커녕 두꺼운 옷조차 없이 쓰레기봉투 붙여 유리를 대신해가며 맞게 되는 겨울. 흩날리는 옷가루 귀 때리는 환풍기 소리 그 속에서 밤늦게까지 혹사당하는 엄마, 고향에선 바이올린 선생님이었던 그 엄마를 도와줘야 끼니라도 근근이 때울 수 있게 되는 절망적 상황, 한도 끝도 없는 냉혈 공장주 이모의 착취. 학생들의 멸시와 잔인한 괴롭힘, 선생님의 철저한 냉대. 드디어 한줄기 빛, 교장의 적극적 주선으로 명문 사립학교로의 진학, 전액장학금. 더욱 거세지는 이모의 시기와 쥐어짜기. 끝 모를 탐욕의 손아귀 속에서도 이번엔 예일대학 전액장학금.
어린 나이에부터 아르바이트 전전하면서 공립영재학교 또 하버드를 우등으로 나온 작가 Jean Kwok 자신의 삶을 소설로 각색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다. 엠퍼시의 극한에까지 빨려들 정도로 그 전해지는 느낌이 생생하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책이 아직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곤 할 정도로. 하지만, 그건 책 중반까지 그랬을 뿐, 후반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지금 이 책을 왜 읽고 있지?
틈만 나면 나오곤 하는 바퀴벌레 또 쥐 이야기는 신물이 날 정도다. 그건 그렇다 쳐도, 중후한 중심부랄까 그런 힘의 균형점 없이 진행되는 구성에 읽는 이의 마음은 그저 허공을 맴돌 뿐이다. 주인공 소녀가 곤경을 벗어나는 것은 그의 머리가 워낙 좋기 때문이다, 같은 공장 Matt를 보면 알 것이요, 그저 부유한 부모 만났을 뿐인 Annette와 Curt를 봐도 그렇다. 등장인물 들 대개는 주인공과 대비시키기 위한 그런 용도다. 더구나 엄마와 이모 사이에까지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인과응보 성격 과거 관계까지 집어넣다니. 그런 구성은 구성 문제라 쳐도 삼류 청소년 물이 연상되는 이성에 눈뜨는 장면들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Curt와의 관계 그리고 Matt와의 관계. 극한상황을 견디며 자라난 주인공에게서 느껴질 법한 생각의 깊이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그저 호기심이고 너무나도 피상적이다.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마지막 단원, 이건 값싼 멜로드라마의 극치다.
혹 초고에서의 작가의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출판사의 지나친 상업적 요구에 급조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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