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a cell, 1951년에 Henrietta Lacks라는 한 흑인여성의 몸에서 채취되어 지금도 의료기관과 연구소에서 무한증식을 계속하고 있는 세포조직, 그것과 관련된 뒷이야기를 다룬 논픽션, 그 정도로만 알고 손에 잡은 책. 하지만, 대하소설의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겨우 벗어난 듯 강렬한 느낌으로 책을 덮는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다른 종류’의 사람들, 그럴 수도 있겠거니 가벼운 상상의 세계에만 머물러있었던 ‘전혀 다른’ 세계. 이런 삶 이런 세상도 있었던가.
이야기는 물론 Hela cell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Henrietta의 성장과정, 젊은 엄마 그녀의 자궁경부암, 병세의 급속 악화, 조직의 채취, 의사들을 경악케 하는 왕성한 세포증식, Multibillion-dollar industry로 커지는 cell-line 시장, 경제적 보상은커녕 병원에 가기 힘들 정도의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후손들. 책의 반도 되지 않아 나올 이야기는 다 나온다. 사실 논픽션에서 이 정도면 이야기는 이미 끝난 건 아닌가. 하지만 역시 소설은 소설, 빠져나오기엔 이미 늦었다.
‘추적 60분’에서도 그렇듯 ‘진실’ 그 자체보다 더 매력 있는 것은 진실의 ‘추적과정’ 또 ‘진실 그 주변에 깔려있는 실상의 부스러기’. 이미 거쳐 간 리포터들에 질릴 대로 질리고 게다가 사기꾼에게까지 당했던 유족 그들의 작가에 대한 거부감, 불가능할 것 같았던 그 상황에서도 유효한 진정성, 긁어모으는 역사의 편린, 진실의 조각들 찾아 맞추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라도 하듯 집념의 화신 작가의 은근과 끈기.
유사 법적분규에서의 윤리적 논쟁, 의료계 로비, 사회 분위기, 법조계 판단 등, 마치 어느 누구 어느 사건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 객관적인 사실전달 그것만이 있을 뿐이다. 감정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냉혈적이다. 노예의 후손 그들 문명과는 거리가 한참 먼 그들 세계에서의 ‘짐승 같은’ 가족사, ‘열등인간 Nigger’들에 대한 노골적 차별, 삶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그들 삶의 모습 이야기. 여기에서도 섬세한 눈 그 눈이 그려내는 생생한 묘사는 차갑기만 하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강한 흡인력.
의학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어도 이야기 따라가는데 지장이 없다. 쉬운 말 풀이 작가의 이 놀라운 능력은 10년 동안의 추적 작업에서 얻게 된 내공 그 덕분이리라. 정말 오랜만에 만난 책다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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