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Mark Rowlands의 ‘철학자와 늑대’

뚝틀이 2012. 11. 14. 23:54

원제는 The Philosopher and the Wolf: Lessons from the wild on love, death and happiness.

만약 누가 ‘늑대를 키우면서 생각하게 된 사랑죽음행복에 관한 이야기’ 이런 책을 썼다거나 어떤 철학자가 ‘사랑, 죽음, 행복의 철학적 고찰’ 이런 식의 글을 썼다면, 그 책도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먹혀들어갈 수 있을까?

‘철학자와 늑대’ 참 절묘한 조합이다. 실제 철학자가 문자 그대로 늑대와 함께 지낸(심지어는 강의실에서 하울링 하는 것까지 감수하며 데리고 다니는 등) 11년간의 이야기.

 

책 내용을 떠나 이 저자 참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옥스퍼드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27살이란 ‘어린’ 나이에 대학교수가 되고 럭비선수 권투선수 시절도 거쳤고, 거기에 무엇보다도 늑대 Brenin과 11년이란 세월을 ‘완전히 같이 생활’했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계속 나온다. 3일 만에 이 늑대가 줄에 묶이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인 옆에서 나란히 걷는 것을 배우고, 거기에 또 먹이를 무시하고 오라면 오도록 하고, 귀찮게 구는 애완견의 머리를 입에 담고 겁만 주고, 들어온 ‘도둑’을 해치지 않고 주인을 불러내어 잡게 하고.....

비교적 야성이 강하다는 진돗개 세 마리를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늑대와의 생활 그 스토리도 열심히 끌고 가지만, 작가는 오히려 이 늑대 Brenin이라는 거울에 비춰본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 그쪽에도 열을 올린다.

개와 늑대의 학습과정을 설명하면서 데카르트의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체화된 인지론 (embodied and embedded cognition)도 들고 나오고, 동물과 사람을 비교하면서 사르트르의 즉자적 존재(being-in-itself)와 대자적 존재(being-for-itself)의 대비도 들먹인다. 플라톤 칸트 하이데커 후썰도 기회를 놓칠세라 들고 나오곤 하고, 요즘 사회정의를 논할 때마다 나오는 존 롤스의 이야기를 인용하는가 하면, 또 토머스 홉스의 계약설 비판엔 몇 페이지를 할애하기까지 한다.

 

좀 안 된 이야기지만, 책이 팔리게 하기위한 얄팍한 상술이라고나 할까. 기회가 닿을 때마다 거대담론 형태로 읊어대는 철학적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삶의 의미본질. 비록 술에 전 사람의 횡설수설 느낌이 가끔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볼 때 그다지 밉지는 않다.

동물의 계층에 따라 사기와 기만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달라지는지, 인간이란 존재에게 왜 행복의 느낌이 쉽게 깃들 수 없는지 시간의 개념과 얽어서 설명하는 부분에선 고개가 끄덕여지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