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안수길의 '황진이'

뚝틀이 2012. 11. 17. 02:23

오늘같이 우중충하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엔 옛날 이야기가 제격이다. 읽던 수사책 내려놓고 책꽂이를 훑어본다. 안수길 전집 제14권, 황진이/을지문덕. 우선 황진이부터 읽어나간다. 靑山裏碧溪水야 一到滄海하면... 뭐 그런 詩를 지은 중종 때 妓女로 서경덕을 유혹하려고 했으나... 뭐 그 정도만 알고 있던 黃眞伊.

 

그녀의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연산군 장원 합격하지만 중종 때 쫓겨나 한량으로 지내던 황진사의 눈에 든 彈琴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 그의 나이 16세 때 그가 첫 마음을 주었던 윤도령의 청혼도 없었던 것으로 되고 또 박초시의 13세 소년과의 혼담 역시 깨어진 후 느꼈던 남자에 대한 환멸이 곧 이어 들려오는 자신을 흠모하던 병약한 총각의 소식에 흔들려 庶女라는 신분의 원죄에 대한 한과 삶의 회의에 대한 답을 얻으려 지족 선사를 찾아가 마음을 비우는 수련을 하던 중 그마저 자신을 범해 파계에 이르는 것을 기화로 아예 妓女가 된다. 남자들을 흔들어 복수하겠다는 그 일념으로. 그 후 만나게 되는 개성 유수 허인도 그의 동행 박제학, 이어 벽계수, 소양곡. ‘마음 빼앗기’ 대부분은 일종의 성공담이지만 서경덕 그의 인품은....  10년간의 기녀생활에 환멸을 느낀 그녀는 妓籍을 벗고 명승고적 유람하며....

 

역시 안수길선생의 필치다. 조용하다. 기복 없는 잔잔한 감정의 흐름.

시가 많이 나올 것을 기대했었는데, 몇 수 실려있지 않다. 아쉬운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사회기풍을 해치는 惡女라는 평판 때문에 그녀의 시 대부분이 멸실되었다는 이야기다.

 

朴淵瀑布

一派長天噴壑壟         한 줄기 긴 내 이 산골에 풍겨

龍湫百仞水叢叢         떨어져 깊은 못에 물이 넘치네.

飛泉倒瀉疑銀漢         날리는 샘 은하같이 거꾸로 솟고

怒瀑橫垂宛白虹         성난 폭포 무지갠 듯 비끼었구나.

雹亂霆馳彌洞府         우박 헐고 우레 달려 산길에 차고

珠聳玉碎徹晴空         옥 깨는 구슬방아 하늘 닿았네.

遊人莫道廬山勝         사람아 여산 좋다 이르지 마소

須識天磨冠海東 천마산 뛰어난 줄 알들 어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