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을지문덕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수도를 평양성에서 장안성으로 옮긴(586년) 고구려. 천도잔치 먼발치 병약한 평원왕에 겹쳐지는 그림, 이제 隋문제가 이제 마지막 장애 陳을 쓰러뜨리고 대륙을 통일하게 되면 그 다음은 고구려 차례. 작가는 이 장면에서 이치현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라이벌 의식이 강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
태자의 밀명을 받은 을지문덕은 말갈족의 무기기술을 전수받아 양산을 준비한다. 올 것은 오고야 마는 법. 隋에서 온 칙서에는 고구려가 稱臣하라는 주종관계의 굴욕적 요구가 들어있고, 사신의 안하무인. 중신회의에서는 사신을 죽이자, 아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자, 강온 양파의 격론이 벌어지지만, 태자의 중재안으로 일단 사신들을 구금하고 隋의 반응을 지켜보기로. 평원왕 승하, 태자 등극. 이 사람이 바로 영양왕. 그 와중에 그 隋의 사신은 탈출.
영양왕과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서 을지문덕은 外柔內剛으로 힘을 쌓고 먼저 공격함으로써 나라를 지키는 拒守之策을 건의하며, 그 시간 버는 사명으로 자신을 隋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주기를 간청. 참수위기, 하지만 당당하면서도 유연한 隋문제 앞에서 ‘해명’. 수문제 왈, “고구려에 저런 인물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소.” 을지문덕의 의도는 현지 분위기 탐색. 대운하공사와 왕의 사치에 이반하는 민심 확인.
외교적 성과가 아니라 隋의 첩자가 되어 돌아온 것이라는 이치현의 모함에 걸려 을지문덕은 섬으로 유배. 신라와 백제는 隋에 稱臣하며 고구려 협공준비. 신라 응징에 나섰던 온달장군은 아단산성에서 전사. 영양왕은 말갈족을 이끌고 오히려 요서지방 정벌이라는 강공을 펴지만 참패. 분노한 隋문제는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정벌에 나서지만, 역병과 태풍으로 큰 손실.
유배지에서 다시 풀려난 을지문덕의 위계로, 그래도 물러나지 않고 있던 隋군대는 철수. 그 후 隋의 태자가 문제를 시해하고 등극, 이 사람이 바로 隋양제. 수륙양로로 2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정벌에 나서는 그. 중책을 맡는 을지문덕. 심지어는 자신을 끊임없이 모함하는 이치현까지도 포용해가며 요소요소에 인재를 배치, 백제와의 밀약, 계속되는 단신 모험과 계략, 드디어 살수대첩(612년).
승전 후, 온갖 영화를 마다하고 영양왕에게 귀향을 자청하는 을지문덕. 귀향하며 그가 자기의 후계자로 천거한 사람은 바로 이치현 그 인물. 그 후로도 계속되는 침공, 하지만 을지문덕 없이도 실패의 늪에서 허덕이는 수양제.
부끄러움. 지금 여기 이 이야기는 ‘저쪽’ 어느 때에 해당하는 거지? 南北朝-隋-唐으로 이어지는 역사 그 부분 또 그동안 본 적이 있는 이런저런 사극을 애써 더듬어보는 나. 언제 이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事大主義에 경도되었지? 하지만 어쩌랴. 실제로 역사에 기록된 을지문덕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단 몇 줄에 불과하다는데. 이런 상황에서 전체 11장 300페이지에 가까운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가 안수길선생 참 존경스럽다.
581년부터 618까지 존속했었던 隋나라. 창창하던 그 나라의 국력은 수차례의 무리한 고구려 정벌로 쇠잔해진다. 수양제가 이연 이어서 자기 가족까지 죽여 가며 황제에 오르는 이세민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저쪽 사극의 단골 소재고.
위인전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이 여기서도 라이벌관계가 당위성을 압도한다. 신라와 백제, 隋나라에 신하국가라 자처하며 첩자와 안내역까지 보내면서 같은 뿌리 같은 민족 고구려에 대한 공동전선을 펴 협공하는 모습. 이치현 또 그 일파. 왕의 눈을 어둡게 하는 아첨꾼. 국가안위차원의 생각보다는 라이벌을 꺾으려 儒家 佛家까지 동원해가며 여론을 조작하는 그들, ‘역사’라는 ‘현실’ 속에 항상 끼어들곤 하는 존재.
그 당시 隋나라 고구려 또 돌궐과 말갈이 어디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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