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이라는 곳의 지원으로 독일어로 번역된 세 편의 단편 중편소설.
- 새, 떨어지다.
- 세계의 바닷가
- 내 영혼의 우물
-'Ein Vogel, Der fällt'
거대한 몸집의 청년과 가릴 곳만 가린 야한 옷차림 여성의 귀향.
이모 남원댁에 얹혀살게 되는 이들, 절도인가 살인인가 뭐 그런 짓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또 바걸이었다던가 뭐 그런 식의 풍문 아랑곳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남자,
형사기동대의 급습, 결투 끝 투항, 투옥.
여자는 바느질 가게 열고, 마을 아이들 데리고 새 이야기 들려주고, 또(.....),
이제 남자가 출소하면 호주로 이민 가 행복하게 살겠노라 조잘대고.
드디어 만기출소, 이제 여권도 비행기 표도 다 나오고, 떠나기 전 친구들과의 송별회, 하지만...... '새, 떨어지다.'
거의 ‘미군부대 옆 하우스보이 잉글리시’ 그 수준의 번역. 전혀 ‘독일 말’이 아닌 ‘독어 단어들의 나열’, 꼭 교포자녀들에 일을 맡겨야 했었나?
또 다른 한편, 누가 나에게 이 책 번역을 맡겼다면 하는 상상을 하다 동정심도 일어난다. ‘청진동 해장국’의 꼬박꼬박 발음 스펠링 표기는 그렇다 쳐도 ‘노란 개가 지나간다.’는 너무했다. 아마 ‘어슬렁거리는 누렁이’ 장면이 있었던 모양이지. 또 한참 머리를 굴린 다음에야 아 ‘개 패듯 두르려 팬’다는 이야기구나 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고. ‘원작에 충실한’ 번역이라는 것이 이렇게 고지식한 일대일의 단어맞춤은 아닐 텐데.
이 책이 불어로도 번역되었다고 하는데,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개를 두드려 잡는 장면 묘사,'우리문학 소개'와 '반감 증폭' 그 손익계산은?
- ‘Am Strand der Welt’, '세계의 바닷가'
앞에 것과는 다른 사람의 번역인가? 그러고 보니 번역자가 둘이다. 여기서는 글 표현 그 흐름이 비교적 매끈하고 부드럽다.
시끌벅적 도시의 결혼식 모습이 아까의 그 토속적 시골풍경보다 더 ‘국제적’이라 번역작업이 좀 쉬워서 그런 것일까?
용수와 채영의 결혼식장.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난 친구 철규와 경만,
비행기 출발할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 한 잔 하자는 친구들,
제주행을 취소해가면서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지?
이젠 인사불성 신랑을 그대로 버려두고 갈 수는 없다며 동래까지 동행하는 친구들, 숙소는 호텔도 아닌 여인숙.
이번엔 신랑 용수의 주창으로 오기사까지 차 놔두고 합류케해 택시 타고 어시장으로, 생선회에 소주 파티,
단식투쟁하느냐 놀림 받는 불쌍한 신부.
(또 Hundefleischsuppe는 ‘개고기수프’ 그냥 보신탕 Gesundheitssuppe이라 번역했어도 내용 상 달라지는 것이 없을 텐데....)
어느 새 소주는 사이다 잔으로 돌고 돌고, 오기사의 ‘위대한 수령’에 대한 질문에 갑자기 경직되는 분위기,
이어 아예 신혼 방 점령하고 벌이 고스톱, 이제 곧 끝나겠지의 바람도 허무하게 내일 또 모레의 계획을 세우는 이들,
도대체 이 인간들 어디까지 갈 참이지?
‘무슨 신혼여행이 이 따위’냐는 채영의 항의조차 무시해버리는 남자들.
참다못해 짐 싸들고 나서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사정하는 신랑 용수,
다음날 통도사 거기서.... 드디어 단 둘만의 시간. 칠흑 같은 밤. 갑자기 차를 세우는 용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광주.. 전단지 작성, 살포... 취조실, 공범실 실토 강요, 벌거벗겨지고, 거꾸로 매달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고문, 또 고문, 죽음의 문턱에서 결국 철규와 경만의 이름을....
며칠 후, 온몸 피투성이에 완전히 벌거벗겨져 쓰러져있는 철규,
다른 방, 역시 처참한 모습의 경만.
배신자 자책, 죽고만 싶었던 그 심정,
풀려난 용수는 군입대 후 복학하지만, 두 친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소식조차 알 길 없고,
그러다 이제 용수의 결혼식 자리에 이들이 나타났던 것. 광안리 백사장, 세계의 바닷가
(결국 덜컥거리는 번역 문장들. 역시 한국인의 토종정서가 어린 이런 장면을 다른 언어로 옮긴다는 것은.... 그 장면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단지 내가 원문을 상상할 수 있는 한국인이기 때문일 뿐.)
그렇다면 지금 지금까지의 이 상황은 일종의 복수극?
진실은....
(마지막 10페이지 정도의 ‘해설’식 전개는 과감하게 줄여 정리했어야 했다.
자신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을까 걱정하는 작가의 노파심이었겠지만...)
- ‘Der Brunnen meiner Seele’,
‘내 영혼의 우물’ 이 책은 우리말로도 읽은 적이 있는 소설이다.
역시 번역 때문에 계속 분통이 터진다. 교도소 감방에서의 신고식 “절도. 3년, 별은 넷, 2519번 박 규식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별이 넷’ 또 ‘범틀’ ‘개털’ 이런 단어들의 직역을, 더구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Für die Zukunft bitte ich um Ihr Wohlwollen.” 이런 외계인 표현을 알아들을 수 있는 독일인이 있기는 있을까? 이건 독일어가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뻔뻔함이요 작업포기 선언에 다름 아니다. 나도 자신 없기는 하지만, ‘앞으로 같이 잘 지낼 수 있기를’의 공손한 표현 “Ich hoffe, dass wir gut miteinander zurechtkommen würden.”이 그래도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이건 그저 단순한 한 예에 불과하다. ‘전체’가 ‘어색 덩어리’ 그 자체다.
번역 이전 더 중요한 관점에서 생각해본다. 물론 우리말로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훌륭한’ 문학작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렇게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번역대상으로 삼았어야 했을까. 더구나 이 책이 불어로도 번역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첫 장면은 감방 문을 들어서는 규식,
그가 한눈에 파악하는 배식반장, 감방장, 범틀, 개털. 눈에 익은 듯 장기수, 말을 걸어오는 ‘권집사’.
살인범, 사기범, 절도범, 탈영병, 강도강간범, 그들 각자가 어쩌다 여기 들어오게 되었는지,
또 감옥 내 담배장사, 동성애 행위, 재소자 사이의 갈등, 보복 등 다른 소설에서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계속되다,
그중 한명이 자살을 하게 되고, 그 죽음이 일으키는 분위기 변환에 입을 여는 장기수 영배.
그가 읊어대는 개의 전설, 사람의 심리상태는 높은 주파수로 발산되는데, 인간은 듣지 못하지만 개는 듣는다고.
사람들이 귀 기울이게 되는 그의 이야기.
엄마가 버리고 간 심영배,
어떤 나이 든 사람 손에 이끌려 간 곳 ‘행복한 개 학교’ 여기는 폭력 없이 개를 훈련시키는 곳.
이곳의 대사,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먹을 수가 없어’ 원문을 찾아보니 이렇다.
‘저급 번역’이 이런 나레이션의 분위기를 전달할 수는 없는 일.
“우물이 있었어. 작은, 그렇지만 늘 맑은 물이 나오는 우물.
우물이라기보다는 샘이었다고 할까.
밤이면 그 아이들은 거기에서 그림을 그렸어.
잠깐 만에 사라지고 말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림이었어.
개들의 눈에서 불꽃이 나온다는 걸 알아? 낮엔 안 보여. 밤이면 보이지.
그 눈이 파랗게 붉게 노랗게 반짝거려. 그건 그 아이들의 영혼의 빛깔이야.
그 아이들을 우물 주위에 넓게 둘러서게 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제일 먼저 그 우물을 훌쩍 뛰어넘어.
그러면 그 아이들도 차례차례 훌쩍 몸을 솟구쳐 우물을 뛰어넘는 거야. 아주 짤막한 사이를 두고 연이어서, 서로 다른 방향에서.
그러면 우물 위에 개들의 눈에서 나온 불빛이 길게 꼬리를 끌며 어우러져 한 폭의 황홀한 그림이 되는 거야. 불꽃놀이 같은 그림이.
어둠을 화폭으로 해서 저희들의 영혼이 그려 놓은 그림을 보면서 그 아이들은 정말 신나고 행복하게 뛰어 놀았어. 나도 그렇게 살았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었어. 우리 콩쥐도 팥쥐도 서동이도 선화도 양길이랑 견훤이랑 꺽정이랑 길동이도 다 그렇게 살 수 있었어.”
이어지는 사건의 전말. 규식의 친구 백상일, 그는 정력보신탕집과 정력개소주집 운영.
상일과 규식, 그 개 학교에 들어가 도둑질. 하지만 훈련받은 진돗개가 냄새로 추적,
‘하지만 일곱 마리 개들은 이미 고기가 되어 개소주가 되어 정력가들의 위장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소화가 되어버린 뒤였습니다.’
(이 부분이다. 아무리 아름답게 번역이 될 수 있다 치더라고, 이 내용이 그 사람들에게도 심미적으로 느껴질까?)
그 집을 다 때려 부수는 영배, 투옥,
"징역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봤더니......쓰레기만 쌓여 있었어.
그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어. 절대로 그곳을 떠날 아이들이 아니야.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아 밖으로 나가더라도 틀림없이 돌아올 아이들이야.
그런데 당신 친구가 다 끌어갔지. 다 잔인하게 살해했어. 몽둥이질을 하고 불에 그슬리고 껍질을 벗기고 칼로 갈갈이 난도질하고.
그곳을 폐허로 만들었어. 그....황홀하던 곳을... 그...그렇게 무참하게..."
감방내 자살사건 수사, 방 조사.
'크르르르 심영배가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는 모든 이빨을 드러내고 잇몸까지 드러내고 시뻘겋게 충혈 된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컹컹.
복도에 그가 짖어대는 소리가 메아리쳤습니다..... 사람의 말은 단 한마디도, 비명이나 신음소리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무슨 질문을 해도 그는 다만 개처럼 짖어댈 뿐이었습니다.....
정신병원 한 의사는 단순히 짖어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짖어댐으로써 무슨 의사를 표현하려고 하는 것 같다,
짖어대는 것으로 인간의 언어를 대신하고자 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규식은 영배가 미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만 사람이 아니라 개가 되고 싶은 것뿐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개가 되어 저 행복한 개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뿐입니다.
다시 저 우물 위에 영혼의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은 것뿐입니다.'
'역설적' 바람. '형편 없는' 이 책이 그쪽 사람들에게 읽혀지지 않기를.... 그런 면에서 이 '번역 실패'는 아주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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