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 이런 식으로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300페이지 넘지 않으면, 그냥 하루에 다 읽어버리곤 했는데.
지금 이 ‘백치’는 그냥 편히 읽고 있다. 덮어놓고 생각하다가.... 지치면, 그냥 잠 자다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 지금 난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삶을 겪고 있다.
무너져가는 몸. 이젠 키보드 두들기기도 힘들다. 마치 중풍환자처럼 한 자 한 자 ‘그리고 있는’ 식이다.
난 안다. 한 사람을 알고있다.
몸을 전혀 가눌 수 없는 선천성 뇌성마비 '소녀'가,
이제는 환갑을 훨씬 넘은 그 '소녀'가
지금은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그 시들을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그려나갔던 것을.
그 모습 그리면서 지금 내 이 키보드 두들기기에 더 집착하고 있다.
마치 틈만 나면 체온계 옆에 끼고 눈금을 들여다 보듯, 무너져가는 내 몸 상태 체크라도 하듯.....
작가란 어떤 사람들일까. 무엇인가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 작가는 철저히 前者쪽이다. 깊이. 삶의 깊이, 사고의 깊이가 글자 한 자 한 자에서 느껴진다.
바로 요전에 읽은 이 작가의 책에 나온 말,
“이 세상에 내 사랑하는 누구도 없고, 날 사랑하는 누구도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한 번 바꿔본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내 신경 쓰지 않고, 또 누구도 날 신경 쓰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에 든다. 딱 맞는 말이다.
인생이 ‘삶’에서 ‘비즈니스’로, 내 마음대로 하기 힘든 ‘삶’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로 바뀌는 순간이다.
나의 진심과 어울리는 말이다.
예전, 어렸을 적, 아주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사전 찾기. 그때 선생님이 말하셨다. 아무리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도 영영사전을 찾아보라고.
영단어를 우리말과 일대일로 대비시키는 것은 단지 기억작업뿐이라고.
하지만, 영단어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느낌으로 체득하는 것은 삶을 살찌우는 것이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확장의미를 깨닫는다.
소설 ‘백치’의 줄거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 거기에 삶의 진실이 담겨있다.
천사 같은 모습의 백치,
‘동정’의 대상 그.
그렇지만 중요한 것 또 하나가 있다.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그를 멸시하지 못한다.
그의 ‘순수함’엔 누구도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급할 게 뭐가 있나.
맞아. 야생화 찍을 때. 몇 시간이고 카메라 들이대고 '고생'하면서도 바로 그 고생이 또한 '기쁨'이기도 했었잖나.
어차피, 종착역 후엔, 다 마찬가지.
천천히, 이번엔 ‘천천히’다.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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