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漢書와 史記와의 ‘상관관계’부터. 史記는 漢武帝 말년(대략 기원전 90년), 漢書는 대략 기원후 90년에 완성되었으니, 또 대략이라는 단어를 쓰자면 우리의 고구려 신라 백제가 서던 그 즈음의 기록물이다. 이 漢書는 원래 司馬遷(B.C.145 - B.C.86)이 정리한 중국인의 시조 黃帝로부터 漢나라의 武帝에 이르는 근 3천년을 기록한 通史에 이어지는 개념으로 班彪가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그의 아들 班固(A.D.32~A.D.92)가 이어받아 정리했는데, 그도 옥중에서 죽는 바람에 나머지 八表와 天文志 부분을 반고의 여동생 班昭와 馬續이 마저 완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다루어진 기간은 제목에 나타나있듯이 漢나라의 역사, 高祖 원년(B.C.206)부터 王莽까지 229년간의 이야기다. 비록 이 漢書가 다루는 기간이 史記에 비해 짧지만 분량은 史記보다 훨씬 더 방대한데, 여기 이 번역본은 盧敦基 李利忠이 다시 정리한 漢書에서 추린 50인의 인물 이야기인데도 800페이지가 넘는 두께.
내 이미 여러 차례 접했던 史記에 너무 반해있어서일까? ‘자유분방한’ 묘사와 ‘자유로운’ 인물평의 그 책에 비해, 여기서는 좋게 말해 엄격하고 근엄한 스타일 아니면 평범한 표현으로 뭔가 좀 ‘위축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자료를 찾아보니, 史記는 완전히 개인적인 저술이었던 것에 반해, 이 漢書의 경우는 그 원고를 황제가 열람했다고 하는데, 혹 그 때문이 아닐는지.
史記에서는 文史哲 중 文과 哲이 짙게 느껴졌던 기억인데 반해, 여기에서는 ‘농축된’ 기간을 다루어서 그런지 사건들 사이의 앞뒤관계가 명확한 歷史書의 분위기가 ‘제법’ 강하게 풍겨져, 책 읽는 동안 집중도가 더 높아질 수 있었고, 그 덕에 이번에는 ‘人物 그 자체’보다는 ‘역사의 흐름 속 인물이란 存在’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소득이라고 할까?
이번엔 책 읽는 내내 생각이 엉뚱한 곳을 헤맨다. 삶이란 무엇일까. 역사 특히 중국의 고대사는 전쟁의 기록이다. 통일 즉 勝者獨食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人間들이 죽어나간다. 秦始皇이 설 때도 그랬고, 楚漢誌를 가득 채우는 유방과 항우의 전쟁도 그랬고, 또 한참 후 三國志의 내용이라고 다를 것 없다. ‘大量虐殺’의 기록 그것이 역사다.(이들 책에 나오는 ‘사망자 집계’ 그런 것 어디 없을까?) 史家의 입장에서는 그런 ‘보통 인간’이란 소모품의 ‘사라짐’ 거기까지 관심을 쏟을 수는 없는 일. 나중 杜甫의 詩에서나 이들의 애절한 삶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질 뿐.
역사서에 기록되는 내용은 이런 식이다. ‘파리’들이 죽어나가는 background noise 가운데, 몇 개의 선율이 나오기 시작한다. F가 K를 죽이려는데 C가 나타나... 뭐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群雄割據의 헤비메탈이 귀를 때리다 A,B,C,...라는 ‘스타’들이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쯤 되면 모든 이의 관심은 오직 하나, 누가 더 ‘점잖게’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지... 결국 어느 땐가 Winner takes all의 game over 자막이 나오는데, 그렇다고 이것이 the end와 동의어는 아니다. 오히려 비극은 이제부터고, 여기가 본격적인 ‘人才 죽이기’의 서막이다.
용도폐기 된 인물들의 兎死狗烹은 當然之事고 어찌 보면 거기엔 혼란의 사전차단이라는 當爲性조차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winner가 게임에는 能했을지 몰라도 통치라는 management에는 無能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더구나 그 후계자는 완전 부적격자, 그로 인해 大義니 名分이니 하는 미명 하에 스러져가는 수많은 선각자들과 충신들. 역사는 또한 人才 죽이기의 기록이다. 더욱이 슬픈 것은 소위 人才 그들끼리의 ‘서로 죽이기’ 과정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모함의 추태. 惡貨가 良貨를 몰아내는 그 과정 이 또한 역사의 모습이다. 결국 역사에는 ‘옳고 그름’이나 ‘當爲性’ 그런 것은 없다는 이야기.
오늘의 우리 인간세상에서는 다를까? 그 근본 원리는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나무나 풀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존재. 베이고 쓰러지고 사라지는 無知蒙昧 대중들, 또 A, B, C... 스타, 人才... 그러면서도 또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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