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박범신의 ‘소금’

뚝틀이 2013. 6. 24. 00:22

A, 詩人. 이혼재판을 마치고, ‘새 남자’의 차를 타고 떠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고향 강경으로 내려와,

     이제는 폐교가 된 그곳에 꽃 활짝 핀 배롱나무 곁을 지나며 옛 추억을 더듬던 중, 안에서 들려오는 한 여인의 흐느낌 소리.

         그녀는 가출한지 이미 10년도 더 된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 중. 누가 이곳 근처에서 아버지를 보았다기에......

             어쩌다 보니 고향친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녀를 도우려 나서게 된 나,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하게 된 어느 ‘행복한’ 소금장수의 집. 남편은 염전, 부인은 염상.

                     염전을 하는 그 주인장은 노래 솜씨도 제법. 사람들은 시간만 나면 그 집에 모여....

                 그런데, 그가 회상하는 젊은 시절 그때의 시대상황을 역산해볼 때 그의 주민증 나이와 너무 큰 차이가...

            ‘이상한’ 가족 구성. 그 남자 K, 절름발이 여자 그의 부인 M, 전신마비 외삼촌 X, 꼽추소녀 N, 시각장애女兒 P.

      그 집에 대한 나의 뒷조사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그림의 윤곽,

 

눈 쌓인 길을, 개발예정지 산꼭대기에 미리 들어선 고급빌라를 향해, 힘겹게 오르고 있는 중년의 신사 K.

    부인Z로부터 숙맥이니 융통성이 없다느니 하는 핀잔만 듣는 그. 아이들로부터도 아예 ‘쑥 아빠’란 놀림을 받고....

         의무만 있고 ‘존재’는 없는 그. 대기업 상무지만 사실 그는 승진 경쟁에서도 한참 쳐진 상태.

            오늘은 막내딸B의 생일. 부인은 지금 일식집 ‘더러운 그릇’이 싫다며 그곳 부주방장을 집으로 불러 ‘최고급 식기’에...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막내의 모습을 보고서야 디지털카메라 선물을 잊고 온 것을... 다시 발길을 돌려...

                       늦어지는 아빠에 대한 불만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에게 아빠가 올라오다 다시... 이야기하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가족. 그래서 ‘쑥’ 아빠.

             하지만 가족이 모르는 사실, K는 췌장암 정밀진단을 요구받은 상태, 6개월 생존확률이 5%도 안 되는 시한부인생.

         며칠 전 들었던 母女의 대화. 이제 곧 강변에 별장 마련, 첫째 딸, 내 생일선물로는 외제차를....

    벌어오는 것이 10으로 늘어나면, 가족들 원하는 것이 100으로 늘어나는, 온몸에 빨대가 꽂힌 자신의 삶이...

 

눈 쌓인 비탈길에서 멈춘 화물차 옆을 지나게 되었던 것은 바로 그 ‘돌린 발걸음’ 때문.

     운전사가 도움을 청하러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차, 그 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금자루, 차에 깔리는 X.

         X를 싣고 병원 응급실로 달리는 K. 엉겁결에 ‘보호자’가 되고 사흘 밤낮을... 하지만 X는 이제 목 이하 전신마비.

             M은 군사정권 실세의 딸,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난폭해진 아버지(1)에 맞아 굴러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것.

                 무작정 집을 나온 그녀, 그녀의 눈에 띈, 길에 버려진 여아 N. 그 MN 母女가 만나게 되는 소금장수 X.

                      X의 아버지(2)는 월남전에 참전했다 팔다리를 잃고 귀국 후 자살. 그에게 車는 영업점이자 주거지.

                             X의 계속되는 주먹질에도, MN이 ‘더 무서운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로 지내던 곳이 X의 車.

                      마음속 어디에선가 도피와 잠적을 꿈꾸던 K, 이제 식물인간 X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흔적을 없애고.....

                ‘까맣게 잊었다’ 되살아난 K의 추억. 과로로 땡볕 염전에서 숨을 거둔 아버지H의 최후의 모습.

            이제 X를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아버지의 현신으로 여기고, 대소변 받아내고 목욕시키며 온 정성을 다해.....

        가족의 사치를 위한 잉여재산이나, 자식에게 남겨줄 유산, 그런 걱정 없이 살아가는 KXMN은 전국의 축제장터를 떠돌다,

    또 하나의 버려진 여아 P. 동생 삼고 싶다고 조르는 N. 데려다 키우기로. 

생활이 바뀌어서일까? 아니면 오진이었을까. 췌장암의 증세는 완전히 사라지고 다시 활력을 찾은 그.

   

 

물론, 소설은, 내 여기에 정리해 놓았듯 이렇게 '단선적'으로 '도식적'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소설의 향기는 잎이란 단어와 그 잎의 찰랑거림이라는 '언어의 유희'에서 느껴진다.

역시 박범신의 소설이다. 삶의 지혜가 배어나오는, 그렇지만 딱딱치 않게 리듬이 흘러넘치는 문장.

주제는 하나, '아버지'란 존재.

    

할아버지도 염전 아버지도 염전이었던 핏줄의 영향일까, 이제 ‘생산성’ 걱정 없이 ‘살아있는 소금’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K.

    詩人 나에게, 자기가 X가 아님을 또 B의 아버지임을 是認하는 K. 하지만 한때 K였었음을 잊어달라는 그.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원래 K의 집은 3남2녀. 어머니는 일찍 저세상으로.

             ‘막 되먹은’ 큰형, ‘병약한’ 작은 형을 대신해 아버지H가 ‘택한’ 자식은 이 막내 K, 도시의 친척집으로 보내 거기서 학교를 다니게.

                  고생하는 아버지를 도우려, 차비를 아껴 작은 형 비타민과 여동생들 사탕을 사려, 40-50km나 되는 길을 걸어서 돌아오는 막내.

                        다시라곤 소금밭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그의 팔이 부러질 정도로 ‘두들겨 패’ 내쫓는 아버지.

                           돌아오는 길에 탈진하여 쓰러진 자기를 ‘업고 뛰어’ 집에 데려다 정성스레 보살펴준 중3 ‘누나L’에 정을 느끼는 중1 소년.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시키는 애틋한 감정. 하지만 ‘더 큰 도시’로 아들을 전학시키는 아버지, ‘누나’와 헤어지게 되는 소년.

                   대학생 K와 재봉사 L의 애틋한 사랑. K를 흠모하던 부잣집 외동딸Z의 적극적 대시, 술김에 빗나간 하룻밤, 임신, L의 떠남.

             졸업식 전날. Z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을 피하려, ‘이번 졸업식에는 참석 마시고 대신....’ 아버지를 설득시키려 고향에 갔던 K,

       막상 저 멀리 아버지가 보이자 그 용기를 잃고 뒷걸음치는 K, 쓰러지는 아버지, 그것이 아버지의 ‘최후의 순간’이 될 줄이야...

그렇게 시작된 KZ의 살림. ‘목돈’을 만지려 사우디아라비아 공사장으로. 그 사이 훌쩍 커버려 아빠를 피하는 두 딸.

      오직 막내딸 B만이 그래도 아빠를 따르는 편.

             아버지K의 ‘행방불명’ 후, 풍비박산이 되는 집안.

                    어머니Z는 사고死. 큰언니는 가출, 작은언니는 아버지 옛 동료와의 ‘잘못된’ 길.

                오직 막내딸만이 자기 생일날 아빠가 되돌아가던 모습을 기억하고,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그 ‘수색’을 도와주는 나A를 찾아와 읍소하는 M, K가 떠나면 MNP는 죽은 목숨. 제발 K가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B에게도 미안한 마음은 없다는 K. 어떤 면에서는 새 길를 열어준 것 아닌가.

차마 B에게 K의 존재를 털어놓을 수 없는 나. 하지만 이미 그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 해왔던 B.

     그러던 나 A와 이 B사이에도 ‘’이 생기고....

 

끝 부분에 가서 횡설수설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읽은 소설다운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