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Arthur W. Marchmont의 ‘The Man Without a Memory’

뚝틀이 2013. 7. 15. 12:29

난 참 할 짓도 없는 사람이다. 제목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 잡았지만, 처음 몇 페이지 읽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 그냥 덮을 일이지, 이런 소설을 계속 읽어나가다니. 다른 관점에서 흥미가 생긴다. 어떻게 쓰면 ‘실패한’ 소설이 되는 것일까. 만약 이런 소재로 내가 소설을 쓴다면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그런 생각을 해가며 읽어나간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부 자료로 읽는다고나 할까?

  http://www.gutenberg.org/files/35516/35516-h/35516-h.htm  

 

 

-1-How I lost my memory

이야기는 이차대전에 참전한 노련한 미군조종사가 독일전투기들과 벌이는 공중전 모습으로 시작된다. 어설픈 조종으로 상대방이 풋내기로 여기고 쫓아오게 만든 다음 갑자기 방향을 틀어 그들을 떨어뜨리는 방법을 구사하지만, 중과부적, 결국은 부상을 입은 상태로 겨우 귀환에 성공.

휴가를 얻은 그 조종사 나 잭Jack은 지미Jimmy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캘디컷 여사Mrs. Caldicott의 말에 의하면 자기 딸 네사Nessa로 부터의 연락 두절 상태가 이미 3개월이라고.

여기서 잠깐 옛날이야기. 난 어렸을 적 독일에서 자랐는데, 거기서 부모를 여의었고, 그래서 같은 영국인이었던 캘디컷 여사가 마치 친어머니처럼 날 키워주셨다. 그 집 딸 네사가 나와 동갑이었고, 우리는 둘 다 같은 대학 괴팅엔Göttingen을 다녔다. 그녀의 어머니는 우리 둘이 결혼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 둘은 약혼까지 했었지만, 부모님이 남겨주신 재산이 넉넉한 나는 ‘일’이라는 것을 싫어했고, 네사는 ‘평생 빈둥거리며 살 것이 분명한’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다 결국 우리는 파혼에 이르게 되었다.

캘디컷여사가 지미에게 쓴 편지 내용에 따르면, 네사는 전쟁이 나자 괴팅엔 집에서 쫓겨나 하노버Hanover로 갔었는데, 거기서 다시 베를린Berlin으로 옮겨야 되겠다는 편지를 보낸 후 소식이 두절되었다는 것. 그럼 내가 베를린으로 가서 그녀를 데려오겠다고 하자, 지미는 극구만류, 군인이 적지에서 잡히면 간첩혐의로 총살될 것은 명약관화. 자기가 가겠다고. 하지만, 그의 부모가 위독해졌다는 소식에 그는 출발을 미룰 수밖에 없어졌고, 난 내 원래 생각대로 증기선 부르겐Burgen을 타고 네덜란드의 로테르담Rotterdam으로.

내 일의 성격상, 누구와의 대화도 피하는 것이 상책.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단박에 내가 미국인임을 알아보고 접근해 수다를 떨기 시작.(난 속으로 제발 go away!) 처음엔 자기도 미국인이라 하더니, 서로 정체를 털어 놓자고 하고, 본명은 요한 라센Johann Lassen이며 괴팅엔대학 출신이라고.... 나 역시.... 우리는 그 대학학생들끼리만 통할 수 있는 슬랭과 몸짓으로 서로 친하게... 혹, 베를린에 오게 되면 들리라고 주는 명함.

 

어딘지 모를 방, 생긴 모양으로 봐서는 내가 병원에 누워있는 모양. 잠시 후 나타난 간호사가 나더러 "Herr Lassen"이라 날 부fms다. 이어 뻔질나게 드나들며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로 미루어볼 때 배에서 뭔가가 폭발하며 내가 바다로 떨어졌는데, 내게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단지 주머니에 들은 명함 하나뿐이라고. 그런데, 다행인 것은 내 허리춤에 묶어둔 돈은 그대로 있다는 것. 내 신분을 밝힐 수 있는 입장이 아닌 나, 시치미를 떼고 그들의 심문을 피하는 방법으로 기억을 잃은 척 할 수밖에. 의사들 의견은 갈라지고, 대체적인 의견은 내가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여기 로테르담에 그대로 머물러있어야 한다는 것.

 

우선, 기억상실증 흉내, 이것이 이 챕터의 테마이니, 그 상황 그 이야기부터 먼저 나왔어야 했다. 나를 잭이 아니라 라센이라고 부르는 간호사. 이상하게도 여러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며 내게 퍼부어대는 질문들. 지금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상황을 판단하느라 일단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나. 그러다 떠오르는 기억, 배에서 만났던 그 사람, 라센. 지금 이 상황이 그와 어떻게 관련된 것이지? 뭐 이런 식으로.

독자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려면, 일단 소설의 진행은 ‘미지의 상황’에 대한 호기심을 품은 독자가 ‘함께 고민’하며 그 ‘필연적 진행’에 고개를 끄덕이도록 해야 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독자가 작가의 일방적 서술 이 길고 긴 첫 챕터를 그냥 무조건 따라오도록 강요되는 형태다.

사실, 왜 내가 이 배에 오르게 되었는지, 베를린으로 향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네사가 나와 어떤 관계인지 그런 이야기는 나중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

 

 

-2-The first crisis

베를린에서 온 호프눙Hoffnung이라는 독일인이 날 그리로 호송하러 왔다. “서류도 없이요?”란 질문에 그런 것은 상관없단다.

우리는 지금 올가 폰 레블링Olga von Rebling(독일인 이름 중간에 이렇게 von이라는 단어가 붙은 사람은 그가 귀족이라는 뜻)부인이라는 사람에게로 향하는 길. 자기 딸 로자Rosa의 약혼자가 구조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사람을 보내온 것. 폰 레블링 부인이 당신에게 쓴 것이라며 편지를 보여주는 그. 사위가 될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치고는 너무나 격식에 맞췄고...

이건 낭패. 이제 이 부인을 만나면 내가 요한 라센Johann Lassen이 아니라는 것이 곧 들통 날 텐데....

 

마주 앉아있는 자리에서 간간히 떨어지는 조심스러운 그의 심문. 영국엔 왜 갔었지? 혹 지금 그 기억상실증은 연기 아닌가?

이어지는 그의 설명. 폭발사고로 당신을 제외한 그 증기선의 승객은 전원 사망, 남자 승객은 세 명이었는데, 한 사람은 조지프 라이먼Joseph Lyman, 또 한 사람은 미국인 램Lamb인데, 우리가 파악하기로 그는 영국 스파이.

라센씨, 만약 당신이 그 영국인이라면 지금 매우 불편한 곳으로 가고 있는 셈이죠.

 

피곤할 테니, 눈이라도 잠깐 붙여두라는 그. 그렇지만 지금 내 어찌 한가하게 그럴 수 있는 상황인가?

설마 그 부인이 나를 자기 딸의 약혼자를 혼동할 리는 없을 테니, 이제 난 영국 스파이로 처형당하러 가는 셈.

 

내가 눈을 떼자, 그의 코멘트. 잘 잔 모양이네. 그런데 당신 자는 모습을 보니 꼭 군대에서 트레이닝 받은 사람의 느낌이.....

호프눙(Hoffnung: 이름이 재미있다. 영어로는 Hope에 해당하는 단어인데, 일말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그런 분위기?)의 말.

역에서 쇼가 벌어지는 것을 피하려, 혼잡이 다 자진 후에야 당신을 그 사람들에게 데려갈 것이라고. 당신과 내가 그 쪽으로 가는 동안 내 부하들이 뒤를 따라올 텐데, 당신 설마 거기서 도망가려하지는 않겠지?

차분한 반응을 보이는 나를 향해 그가 내뱉는 말, "You have all an Englishman's coolness."

 

이번 챕터는 ‘독 안에 든 쥐’를 가지고 노는 수사관의 태도인데, 여기 이야기 역시 일방적인 진행이다.

차라리 앞 챕터의 내용을 여기 중간 중간에 섞어놓는 것이 어땠을지. 예를 들어 약혼자 로자Rosa 이야기가 나올 때, 자기 약혼자였던 네사Nessa랑 그녀의 비난이 회상되었다든지... 내 이런 독일군의 비행기를 떨어뜨릴 때 그 조종사의 얼굴이 지금 이 사람의 이 근엄한 표정과 오버랩이 된다든지 그런 식으로...

이 장면에서 독자로서의 가능성 추측. 그 하나는, 어둑어둑한 곳에서 흥분상태에서 일단 von Rebling이 약혼자로 인정하는 것이고, 좀 더 고급이라면 사실은 어떻게든 알게 된 Nessa가 ‘나’를 구하러 일종의 구출작전을 벌이는 중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예 그 부인이 사고를 당해 현장에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고.... 어쨌든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어나갈지 궁금해진다.

 

-3-Rosa

일이라는 것이 이렇게 풀릴 수도. 약혼자인 로자는 ‘다른 일’로 나오지 못했는데, 부인은, 어두운 밤 강한 서치라이트에 비친 그의 모습을 눈물이 어린 상태에서 봐서 그랬을까? 어쨌든 나를 진짜 라센으로 인정.

축하해주는 호송관, 내 아까, 당신 기억이 없어졌다고 해서 영국인 스파이 이야기를 꺼냈었지만, 이 얼마나 다행인가요.

집으로 가는 내내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백작부인. 방에 들어서자 그녀의 첫 마디. 10년이면 긴 시간이지만, 그래도 참 많이 변했네. 아버지와 닮은 곳이라곤 이제 이마와 눈썹 그 정도뿐이네. 얼굴 아래쪽은 아예 딴 사람처럼 변했고...

 

더 이상 자리가 어색하게 되는 것을 피하려, 피곤해 눈 좀 붙여야겠다고 하자 따라 들어오는 약혼녀의 동생. 요한 한스Johann Hans. 그의 나이 17살, 누나 로자Rosa와 6살 차이. 사춘기 나이 그의 비위를 살살 맞춰줘 가며 끌어내는 이야기. 라센과 그녀는 사촌 사이. 그들의 약혼은 가족회의 결정 사항. 두 사람 다 괴팅겐Göttingen 대학 출신. 라센은 정보원으로 외국으로만 떠돌아다녀 지난 10년간 그 둘은 만나본 적이 없음. 부모의 유산은 두 사람의 결혼을 전제로 그들에게 돌아가게 되어있는데, 지금 로자는 오스카 펠트만Oscar Feldmann이라는 청년과 열애 중.

그런데 내 오늘 당신을 보니, 누나에게서 들었던 그런 부정적 이미지는 하나도 없고...

 

이제 문제는 로자와의 대면순간. 그녀가 날 아니라고 하면 난 꼼짝없이 붙잡혀가 처형될 운명.

아까 ‘얼굴 상부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장모’의 코멘트 따라 하부를 가려야. 아이디어! 치통을 핑계로 붕대로 칭칭 감고,....

방에 들어서는 로자, 어쩌면 엄살 부리고 게으른 것 하나도 안 변했냐고... ‘이를 새로 해 넣어’ 딴 얼굴이 되었다며 재미있어하는 그녀.

 

이제 둘 만 남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그녀. 식구들이 물러난 다음, 기억상실증에 관한 이야기. 로자, 미안하지만 내 당신조차 기억에 없다고..... 그럼 내 편지도? 당연히..... 그럼 당신이 쓴 내용도? 사실 잭이 실제로 모르는 것이기도 하니, 여기에선 연극조차 필요없이 모든 것이 물 흐르듯...

"Well, do you still want to make me marry you?"

"I don't know. You're very pretty, Rosa."

허튼수작 집어치우라 소리치는 로자. 내 얼굴 내가 알지. 그 어느 누가 나보고 예쁘다고 하면, 그건 십중팔구 내 돈을 탐내 결혼하겠다는 이야기일 뿐. 십중팔구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네. 그 얘기는 나중에. 한 가지 지금 확실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은 내 25살이 되면 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결혼할 수 있고, 또 내 지금 당장 결혼을 하더라도 내 몫의 반은 건질 수 있는 것이니...

 

이야기가 한참 심각하게 돌아가려는 그때, 방문을 빠끔히 열고 들여다보는 어린 소녀 로첸Lottchen.

캘디컷 선생님이 오늘도 같이 나갈 거냐고 물으라고 해서 왔어요.

캘디컷Miss Caldicott? 그럼 네사Nessa? 이 넓은 베를린 하늘 아래, 지금 내가 그녀와 한 지붕 밑에?

(소설의 진행은 필연이어야. 이런 우연은.. 다른 가능성은 없었을까? 예를 들어, 다음에 나오는 폭동 장면에서 우연히 만났다든지..)

 

-4- Nessa

로자와 네사는 괴팅엔 시절부터의 단짝 친구, 영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네사를 로자가 지금 로트Lott(어미사 chen은 어린애들에게 붙이는 애칭)의 가정교사로 데려와 보호하고 있는 중. 그런데 문제는 에르슈타인 백작Count von Erstein이라는 자가 네사에 눈독을 들이고, 그녀가 말을 듣지 않자 영국스파이로 지목하고 괴롭히고 있는 중이라는 것.

로첸을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 나가는 네사와 에르슈타인, 나도 로자를 따라 그곳으로. 로자가 에르슈타인에게로 가자, 로첸은 어제 봤다고 나에게 달려오고, 네사는 그 로첸을 데리러 나에게. 나를 보고 놀라는 그녀.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도록 로첸에게 우릴 소개시켜줘야지 하자, 로첸은 그녀에게 나를 my new Cousin Johann 이라 소개해주고.....

소개 받는 에르슈타인, 네사가 간첩인데, 그 정체를 밝힐 증거를 잡으려 하는 자기에게 협조해달라고 부탁하는 그.

다시 네사와 함께. 험악해진 표정을 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눈 마주칠 기회조차 주지 않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그녀.

(惡漢에게도 인정이 풍기는 약한 모습이라든지 또는 무슨 반전이라도 있어야 소설이 재미있는데, 여기서는 이 사람, 끝까지....)

 

 

 

-5- About spies

이 집에 스파이가 있다고 믿는 폰 레블링 부인, 그녀가 의심하는 사람은 에르슈타인이 지목하듯 네사. 자기 딸이 그녀를 데려올 때부터 반대했었다고. 그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자기의 상자에 편지를 가지런히 넣으면서 나중에 같이 열어보자고, 그러면 이 편지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볼 것이라고. 누군가가 자기 상자의 열쇠를 또 하나 갖고 있으면서, 자기 편지를 검색하고 있다고.

 

다른 한 편, 괴로워하는 로자. “네사를 도망가게 해주려면 네 도움이 필수적인데, 너를 이렇게 철저히 무시하고 피하고 있으니...”

직접 설득해보겠다고 내가 말하자,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겠다는 로자.

 

네사를 기다리다, 우연히 목격하게 되는 부인의 상자를 열어보는 현장, 스파이는 네사가 아니라, 이 집의 하녀인 그레첸Gretchen.

 

-6- Rosa is told

단 둘의 자리. 분노가 폭발하는 네사. 하녀들이 듣지 못하도록 조용한 구석방으로 옮겨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하지만, 이야기할 틈조차 주지 않는 그녀. 이제 이 모든 오해를 풀 길은 오직 하나 3자 회동.

우선 내 정체를 밝히고, “My name is Jack Lancaster.” 감동하는 그들. 이제 탈출에 필요한 여권을 누가 만들고 그것을 ‘훔쳐’ 달아나야하는데... 그럴 사람이....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정리하는 것은 무의미. (일는 동안에 메모해둔 나머지 자료는 hwp 파일로 첨부)

                                                                h Arthur W Marchmont의 The Man Without a Memory.hwp

- 소설이라는 것은 ‘계속되는 이야기의 흐름’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

-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깊이’가 없으면, 아무리 읽어나가도 그냥 지루하기만 할 뿐.

- 다시 한 번, ‘명작’이라는 것의 가치를 느끼게 된 계기.

h Arthur W Marchmont의 The Man Without a Memory.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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