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디 이 녀석, 나랑 같이 있다가, 파리가 나타나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한다.
a. 개가 파리를 무서워한다?
b. 우연의 일치가 계속되곤 하는 것일 뿐?
그렇지는 않다.
이 녀석, 벌이 나타나면, 잽싸게 입으로 삼키곤 한다. 동물의 반응속도란 정말 놀라울 정도.
파리는 벌보다 더러워서? 오늘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벌에도 파리 못지 않게 병균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벌이 쏘면 의외로 크게 부어오를 수가 있다고.
뚝디의 이유는 이렇다.
파리가 오면 내가 파리채를 들고,
내가 파리채를 들면 뚝디는 자기를 때릴까봐 자리를 피하곤 하는 것이다.
내가 파리채로 뚝디를 때린 적이 있던가? 그런 적은 없다.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왜 피하지? 파리채를 휘두르는데 옆에 있다가 맞을까 겁이 나서? 본능인가? 그렇지도 않다.
뚝틀이의 경우에는 내가 아무리 세게 휘둘러도, 자기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지라, 앚은 자세에서 꼼짝도 않는다.
내가 자기가 아니라 파리를 잡으려한다는 상황을 판단한 것.
뚝뚝이의 경우는?
이 녀석은 덩치는 제일 큰데, 겁이 많다. 내가 파리채를 들면 뚝디보다 더 멀리 피한다.
하지만, 그 전에는 상황판단이고 뭐고 없다. 자기가 잽싸게 파리를 잡아먹곤 한다.
그렇다면 이 3뚝이의 주인인 내가 ‘삶’을 사는 방법은 어느 쪽?
시골생활이라는 것은 죽이는 생활이다. 파리가 눈에 보이면 파리를 죽이는 것. 당연한 것 아닌가?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두 번 휘두르면 한 마리 잡는 정도의 수준이니, 이제는 거의 프로급이다.
파리만 잡는가? 벌도 마찬가지. 밖에서 날아다니는 녀석은 괜찮은데, 부엌에 들어오면 어쩔 수 없는 일.
조명을 끄고 문을 열어놓아, 혼자 길을 찾아나가게 만들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벌과 파리뿐인가?
잡초. 시골생활은 잡초와의 전쟁, 틈만 나면 잡초정리, 이것이 일이다.
이것 역시 따지고 보면 죽이는 일이다. ‘사람’이라는 존재에 밉보이기 때문에 죽어가는 생명체들.
꼭 생명체뿐이 아니다. 잡생각 죽이기, 이것 역시 일이다.
조이스의 '예술가의 초상'에 나오는 이노센티우스의 3중의 침.
첫 번째 침은 지난날 누렸던 쾌락의 기억,
두 번째 침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때늦은 슬픔,
세 번째 침은 고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후회.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기억이건 슬픔이건 후회건 과거에 대한 생각은 다 쓸데없는 잡생각일 뿐이다.
생각 자체를 죽이는 것, 이것이 시골생활의 요체다.
파리, 프랑스의 서울이 파리?
그렇지는 않다. 영어로 말하자면 패리스요, 프랑스어로 말하자면 빠리다.
실제 빠리의 어원이 그런지는 몰라도, 헬레나를 데리고 간 트로이의 왕자가 파리스Paris.
어쨌든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한, 트로이를 멸망케 한, 아니 그 전쟁 통에 수많은 그리스 군사들의 목숨을 잃게 만든한 장본인이 파리스다.
그렇다면 빠리 사람들은 파리를 무엇이라 부르지? 무쉬Mouche.
사르트르의 작품 중에 파리떼Les Mouches가 있다.
아이스킬로스Aeschylus의 오레스테스Orestes 3부작 중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Choephoroi’를 각색한 작품인데,
당시 독일군에 점령당해 있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나치의 검열을 교묘하게 피해 ‘메시지’를 전달하려 쓴 '실존주의 劇'이다.
정부와 눈이 맞아,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온 자기 남편 아가멤논 왕을 죽인 어머니에게 복수하러
고향 아르고스로 돌아온 오레스테스 왕자의 이야기.
인간으로 변신한 주피터가 왕자에게 말한다.
“넌 善을 거부함으로써, 우주를 거부했고, 자연에 대항해 홀로 서게 되었어.”
그 ‘어머니’를 죽이려는 ‘아들’에게 내리는 신의 ‘징벌’의 징조. 이것이 파리다.
이 세상 어떤 생명체도 존재 이유가 있는 법. 그렇다면 파리는?
전에 관악 캠퍼스에 토끼와 꿩을 풀어놓았을 때, 얼마 후 눈에 띄는 덤불 속 토끼의 시체,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가까이 가 들여다보니, 완전히 구더기 덩어리.
자연에 있는 생명체의 시체를 분해하는 것이 파리의 역할이다.
마치 썩은 식물체를 버섯이 분해하듯이.
파리와 버섯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아무리 그 자체로서의 유용성이 있다 하더라도, 파리는 죽여야 하는 존재,
‘샬롯의 거미줄’에서도 거미의 먹이 잡는 방법을 혐오하던 윌버가 파리를 잡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던가?
우리 조상들은 파리를 어떻게 쫓았지?
바로 파리풀, 이 식물의 뿌리를 찧어 그 즙을 종이에 먹이면 파리를 죽는다고 했고,
또 뿌리 또는 포기 전체를 짓찧어서 종기, 옴, 벌레 물린 데 등에 붙이면 해독하는 효능이 있다고 했다.
먼 옛날 옛적 이야기?
아니다. 얼마 전에 여기 할머니가 손자에게 이것을 발라주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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