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살인행위'에 대해

뚝틀이 2014. 6. 10. 23:28

세 시에 약속이 있어 이런저런 일 다 제쳐놓고 약속장소로 향한다 치자. 만일, 상대방이 늦게 온다면?

내 그 동안 꼼짝없이 그 자리에 묶여있게 되니 그만큼 ‘삶의 시간’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한 사람의 삶에서 ‘시간’이란 것은 두 가지 위치에 놓일 수 있다.

그 하나는 ‘끝 부분의 시간’ 즉 ‘남은 삶의 시작 시간’이요, 또 하나는 ‘중간 시간’ 즉 ‘바로 지금 이 시간’이다.

우리는, 보통, ‘살인’이라하면 ‘살인사건’과 연관된 개념, 즉 피살자의 ‘끝 부분 시간을 제거하는 행위’로 생각한다.

그런데, 물론, ‘시간’이란 ‘사건이나 행위’와 결부되어 정의되어야 의미가 생기는 추상적 개념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한편, 한 사람의 삶에서, 엄연히 DNA라는 생체시계에 담겨져 있는 물리적인 양이기도 하니,

그것이 뒤쪽으로 몰린 ‘뭉치 시간’이건,아니면 지금 이 순간의 ‘조각 시간’이건 상관없이, 시간은 시간, 다 똑 같은 시간 아니던가?

따라서 ‘지금의 시간’을 ‘생의 끝부분’으로 옮겨놓고 생각한다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명백히 살인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회의장에 30분 늦게 되어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기다려야했다면 이것은 집단살인이고,

그로 인해 회의가 길어져, 그 참석자 중 누군가가 다른 약속에 늦어지게 된다면 이것은 연쇄살인에 다름 아니다.

자기에게 소중한 약속에는 늦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이,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들과의 약속은 가볍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중인격자의 차별적 살인이고, 이번 ‘땅콩 회항 사건’의 안하무인격 ‘승객 시간 강탈 사건’은 ‘무차별 살인사건’에 해당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살인행위가 그런 ‘몰상식한 사람’만이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에 삶의 지혜를 구해 유튜브에서 ‘동양고전’ 강의를 찾아가며 들은 적이 있었다.

플라톤 아카데미란 단체에서 주최해, ‘사계의 명사’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놀라운 사실 하나, 주제에 충실한 연사는 정말 극소수였고, 대부분의 경우, 강연 제목과는 상관없이 횡설수설로 일관했다는 것.

이건 분명 그곳을 찾은 수많은 청중을 능멸하는 ‘모욕 살인’ 현장에 다름 아니었다.

이 사람들이 소위 ‘전문가’로 행세하며 사방을 돌아다녔을 테니,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질렀겠는가.

그런데, 이보다 내 더 놀랐던 것은 이 ‘지식인’들이 ‘우리 국어’ 맞춤법에도 어긋나는 표현을 계속 쏟아내고 있었다는 것.

사실 이런 사람들은 그 감투를 쓰고 있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 역시, ‘자격 있는’ 남의 자리 남의 삶을 빼앗고 있는 것이니 일종의 살인행위다.  

이런 식의 '무개념 살인'은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일어난다.

‘사랑’하는 친구가 또 배우자가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 하에 이루어지는 착각 속의 살인,

난 저 사람보다 우위에 있으니 내 행동엔 문제가 없다는 식의 안하무인격으로 저지르는 폭군적 살인 등등.


그런데,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살행위’다.

남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시간을 함부로 베어내는 것.

이런 ‘살인자’들 틈에서 벗어나 내 ‘삶의 시간’을 건져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회한’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시킬 수나 있다는 듯, 모든 ‘삶’의 활동을 중단하고 헛된 생각에만 빠져 있는 것.

계속 이대로 간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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