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nrich Böll(1917-1985), Die verlorene Ehre der Katharina Blum, The Lost Honour of Katharina Blum, 1974
카타리나 블룸Katharina Blum, 26살 그녀가 루드비히 괴텐Ludwig Götten을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집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녀가 신문기자에게 권총을 발사합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당시 독일사회를 한 번 봅니다.
그때는 경제가 급속성장하며 중산층이 두터워졌고, 이들은 풍요로운 물질주의에 젖어 있었습니다.
보수분위기가 팽배한 이 때, 바더 마인호프Baader Meinhof와 극좌 테러조직 적군파가 등장,
이들의 납치, 살인, 테러로 좌파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감이 사회에 짙게 깔려있었습니다.
수요일 아침, 카타리나가 스키휴가를 떠나는 블로르나Blorna부부를 배웅합니다.
그날 낮, 카타리나가 친구 헤르타Hertha를 카페에서 만납니다.
그 카페에서 괴텐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고, 그 순간 그녀가 사랑에 빠집니다.
말하자면 ‘기다려왔던 바로 그 운명의 남자’를 만난 셈입니다.
그날 저녁, 그녀는 이 남자와 엘제 볼터스하임Else Woltersheim집에서 열리는 파티로 향합니다.
그곳에 경찰의 감시망이 펼쳐집니다.
괴텐, 그는 은행 강도와 살인 등의 혐의로 수배된 인물입니다.
적군파 테러조직 분쇄에 혈안이 된 수사당국은 그와 접촉하였던 모든 사람들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괴텐과 함께 파티 장을 떠납니다.
그녀의 집에서 밤을 지낸 괴텐이 자기는 탈주병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녀가 그에게 도피처의 열쇠를 건네주며 비밀출구로 도주케 합니다.
작가가 말합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나중에 그가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범죄자를 사랑하는 여인들이 있다. 범죄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목요일 아침,
밤새 그곳을 포위하고 도청하던 수사관들이 통화의 기척이 없자 무장경찰대와 함께 그 집을 덮칩니다.
괴텐은 사라졌고, 카타리나가 그들을 맞자, 그녀가 연행됩니다.
그녀가 연행되는 이 상황이 '차이퉁Zeitung의 기자 베르너 퇴트게스Werner Tötges에게 포착됩니다.
(작가는 차이퉁 즉 그냥 ‘신문’이라는 뜻의 보통명사로 저널리즘을 고발합니다.)
이제 ‘황색’저널리즘의 발호가 시작됩니다.
카타리나의 족보를 캐고, 이력을 더듬고, 주변을 탐색하는 등, 취재의 내용이 ‘가공’되어 기사가 되는 작업입니다.
심문과정에서의 그녀의 진술, 또 경찰이 알아본 내용은 이렇습니다.
광부였던 아버지는, 그녀가 6살 때, 전쟁 때의 부상후유증으로 숨졌다.
상심한 어머니가 일시적으로 알코올 중독에 빠졌었고, 그녀와 두 살 터울의 오빠를 키웠다.
허드렛일을 해가며 남매를 부양하던 어머니는, 사건 당시, 암수술로 중환자실에 있었고, 오빠는 절도죄로 복역 중이었다.
대모 볼터스하임은 카타리나보다 13살 많은데, 카타리나는 이 대모의 도움으로 직업학교를 나와 가정 관리사 자격증을 땄다.
21살 때 빌헬름 브레틀로Wilhelm Brettloh와 결혼했지만, 극도의 혐오감으로 반년 만에 이혼하였다.
한동안 회계사 페넌Fehnern집에 입주 가정부로 일하다, 그가 세금 탈루혐의로 체포되자,
낮에는 변호사 블로르나부부 댁 집안일을 맡아 돌보고, 그 후 시간은 정년퇴직한 교수 히페르츠Hiepertz 댁의 일을 하였다.
방 두 개짜리 집을 대출로 얻고, 중고차를 타고 다닌다.
볼터스하임 부인이 증언합니다.
그 파티 전에는 괴텐을 본 적이 없다. 그녀의 결혼은 어머니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이 신중치 못했던 결혼생활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모범적으로 자기 계발을 하였다.
그녀가 괴텐의 도주방조혐의로 연행된 뒤 그녀의 은행거래명세표를 검토한 회계사가 수사관에게 말합니다.
“맙소사. 그녀가 직장을 구하면 내게 연락주세요. 늘 이런 사람을 찾았지만 본 적이 없거든요.”
블로리나 부부가 경찰조사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그녀가 집안일을 맡아준 이후, 우리는 지난 5년간의 뒤죽박죽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의 계획성과 완벽성으로 우리 집 지출이 현저하게 줄었다.
사람들의 진술로부터 종합적으로 유추하여 보건데 그녀는 매우 순수한 성품으로 성실하고 반듯한 여성입니다.
자기관리에 철저해, 특히 남자관계에 있어서는 친구들은 그녀를 ‘수녀’라고 불렀답니다.
하지만, 수사관들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수녀라는 별명을 가진 당신이 처음 만난 사나이와 함께 어울렸다는 것을 수 없어요.”
카타리나도, 그 누구라도 자기를 괴텐의 공범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라는데 수긍합니다.
더구나 그녀가 범죄자의 도주에 협력하고 은신할 곳의 열쇠까지 건네주었으니까요.
퇴트게스가 수술 후 회복실에서 절대안정을 요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페인트 공으로 위장하여 접근합니다.
의식은 있으나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환자의 귀에다 카타리나의 혐의점을 속삭이고 환자의 신음소리를 ‘해석’합니다.
‘중병을 앓고 있는 그녀의 어머니, 딸이 오래전 발길을 끊었다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금요일 조간 차이퉁, 사실에 옷 입히고 화장 시키고 날개 붙이는 선정적 제목을 붙입니다.
‘강도의 정부 카타리나 블룸∙∙∙∙, 1년 반 전부터 수배 중이던 강도이자 살인자인 루트비히 괴텐∙∙∙∙,
경찰은 오래전부터 그녀가 이 음모에 연루되어 있었다고 추측한다.’
스키휴가를 즐기던 블로르나 박사도 자기의 발언이 심하게 왜곡되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누구라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지요’라고 한 말이 ‘카타리나는 전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으로 둔갑되었고,
‘카타리나는 매우 영리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표현이 ‘카타리나는 얼음처럼 차갑고 계산적인 여자’라고 둔갑되었습니다.
그들 부부가 휴가를 중단하고 돌아옵니다.
괴텐이 은신처에서 체포됩니다. 그곳은 유명인사 알오이스 슈트로이블레더Alois Sträubleder의 소유입니다.
주민들의 진술에 의하면 한 남자가 카타리나의 아파트를 자주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차이퉁의 기사는 ‘여러 남자’들이 ‘그녀 소유’의 침실을 찾았다는 식입니다.
‘블룸은 2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신사들의 방문을 받아왔다.
어떻게 겨우 26살의 가정부가 11만 마르크나 나가는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을까.
은행에서 강탈한 돈의 분배에 그녀가 관여했을까?
배후관계의 전반적 소식은 내일 주말 판에서!’
기사가 이어집니다.
‘괴텐에게 열쇠를 준 것 역시 창녀와 같은 그녀가 명망 높은 학자의 신뢰를 악용한 것이다.
그녀가 신사의 방문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요구해 열쇠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블로르나에게 슈트로이블레더가 찾아와 털어놓습니다.
자기가 집 하나를 따로 마련해 그 열쇠를 카타리나에게 주었는데 카타리나가 거기에 괴텐을 숨겼다고요.
카타리나에게 확인해보니, 이 사람이 사랑하자고 치근대며 반지에 열쇠까지 쥐어줬지만, 절대 그와의 관계는 없었답니다.
또 괴텐이 자기가 탈주병이라는 이야기는 했지만 그가 은행 강도에 살인범인줄은 몰랐었답니다.
차이퉁은 이제 카타리나의 변호를 맡은 블로르나에게도 화살을 향합니다.
변호사 부부가 풀장에서 찍은 사진을 개제하고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입니다.
‘한 때 ‘빨갱이 트루데Trude’로 알려졌던 이 여자와 이따금 좌파로 통했던 그녀의 남편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호화빌라의 수영장에서 부인 투르데와 함께 포즈를 취한 고소득의 산업체 변호사 블로르나 박사’
부인 투르테는 학생 때 빨간 머리 때문에 ‘빨간 투르테’라는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습니다.
퇴트게스 기자의 인터뷰 행진은 계속됩니다.
카타리나의 또 다른 고용주인 히페르츠박사가 자기는 사람을 잘못 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그녀가 ‘과격하리만치 협조적이고 계획적이며 지적이었다.’라는 표현을 쓰자, 이렇게 둔갑시킵니다.
“모든 관계에서 과격한 한 사람이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군요.”
그녀의 전남편 방직공 브레트로의 투덜거림도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며 극적으로 과장합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녀가 왜 내게서 몰래 떠났는지. 그녀는 소박한 행복에 만족하지 못했던 거죠.
어떻게 소박한 노동자가 포르쉐를 탈 수 있겠습니까?”
이런 차이퉁의 기사가 대중의 감정과 기분에 딱 맞아 떨어집니다. 대중은 환호합니다.
그녀는 공산주의 두더지가 됩니다. 크레믈린의 창녀가 됩니다. 사방에서 욕설이 쏟아집니다.
전화통에 불이 나고, 욕설로 가득한 편지들이 배달됩니다.
회복기에 있었던 카타리나의 어머니가 죽습니다.
의사표시도 할 수 없었던 노파에게 딸에 관해 속삭이는 악마의 소리가 엄청난 쇼크였을 것입니다.
카타리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수습하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않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통곡을 할 뿐입니다.
차이퉁의 기사는 이렇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행실의 충격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는데 그 딸은 강도이자 살인자인 한 남자와 다정하게 춤추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기이한 일 아닌가?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 여자는 정말 얼음처럼 차갑고 타산적일까?
우리의 심문방법이 너무 부드러운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비인간적인 인간을 인간적으로 대해야 하는가?’
권력도 카타리나를 언론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론과 권력이 묘하게 결탁하여 황색여론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연행된 초반에 카타리나가 항의하였을 때입니다.
‘차이퉁지의 기사들, 국가가 이런 오욕으로부터 보호해 줘야 하지 않는가?
세세한 구석까지 파고드는 심문은 이해하겠지만 어떻게 그 세세한 사항들이 차이퉁으로 넘어갈 수 있는가.
게다가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왜곡된 형태로 바뀌는지∙∙∙∙∙∙∙∙”
그 항변에 대한 당국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괴텐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지대한 터라 당연히 언론보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당신의 도움으로 가능했던 괴텐의 도주, 그로 인한 두려움과 격분은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모욕적이고 어쩌면 중상일수 있는 언론보도의 세부사항들에 대하여는 개인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고,
수사당국 내부에 허술한 부분이 있다고 밝혀지는 경우에는 그에 대해서도 소송을 걸면 될 것이다.
우리는 저널리즘을 형사사건으로 다룰 수도 없고 언론자유는 침해될 수도 없는 것이다.’
일요일 정오경, 그녀가 인터뷰를 미끼로 퇴트게스를 집으로 오게 해, 그에게 권총을 발사합니다.
그가 사과라도 했다면 모르겠는데, 끝까지 저속한 언사로 그녀를 모욕하였다고 합니다.
그녀가 저녁 7시까지 시내를 배회하며 후회나 죄책감을 느껴 보려 했답니다.
하지만 조금도 그런 쪽을 찾을 수 없었고, 형사를 찾아가 자수하고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변호를 맡은 블로르나의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결코 살해할 의도는 없었고 단지 위협만 하려 했다고 진술하게 해야 하는데,
그녀가 목요일 첫 번째 기사를 읽고 그때 이미 그를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전혀 후회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카타리나가 법정에서도 그럴 것이 눈에 선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사랑하는 루트비히와 같은 조건에서 살게 되었다고요.
사실 루드비히 괴텐도 당초 혐의처럼 거창한 테러리스트는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과장된 사회적 공포가 만들어 놓은 과대포장 범죄자입니다.
살인혐의는 주장될 수도 없고, 또 제기되지도 않습니다.
은행 강도도 아니고 군 금고를 약탈한 것뿐입니다.
장부위조 무기절취 탈영이 죄목입니다.
퇴트게스의 장례가 장엄하게 치러집니다.
민주주의 수호에는 언론자유가 필수라는 헌사가 이어집니다.
기사가 1면에 대서특필로 실리고 호외까지 발행되고 부고도 통례를 벗어난 크기입니다.
마치 저널리스트 살인사건이 은행장이나 은행원 혹은 은행 강도 살인사건보다 더 중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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