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고통
장로 조시마는 일어서고 싶지만 그럴 기운이 없고, 이제는 겨우 침대에서 의자로 자리를 옮기는 정도입니다.
오늘을 넘기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가 제자들과 친구들을 불러 모아, 믿음과 사랑과 신성에 대해 마지막 대화를 나눕니다.
“이 수도원에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지 마라. 저 밖의 사람들보다 죄가 커 여기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알료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렇게 훌륭한 분이 그냥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무슨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하긴, 그렇게 큰 기적은 아니지만, 혹흘라코프 부인에게 시베리아 아들로부터 편지가 왔지. 몇 주 후 도착한다고."
페라뽄트Ферапонт는 조시마의 라이벌입니다.
믿음은 철저한 금욕적 고행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조시마가 알료샤를 다시 불러 말합니다. 이제 정말 돌아가라고. 밖에서 가족과 이 세상을 위해 할 일이 많다고.
알료샤가 아침 일찍 아버지에게 갑니다. 마르파가 문을 열어주며 말합니다.
이반은 나갔고, 스메르쟈코프는 장 보러 갔고, 아버지 혼자 계신다고.
아버지는 이미 브랜디 몇 잔을 걸쳤습니다. 이마엔 큰 멍 자국이 있고, 코도 부어올랐습니다.
“사실 오늘 너에게 무슨 이야기해주려 불렀는데 생각이 변했다.
내 나이 지금 55살이란다. 앞으로 20년을 더 살 생각이야. 그러려면 의지할 곳은 돈밖에 없지.
사실 어제 일로 미쨔를 감옥소에 처넣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러면 그루솅까가 그에게 달려갈 것 같아 그 생각은 접었다.
늙은이를 때린 그 녀석 대신 그루솅까가 나를 동정하게 말이지.
이반은 오늘도 까쪠리나에게 갔다. 걔가 여기 머무르는 이유는 그 여자 때문이지.
미쨔가 그루솅까와 결혼해야, 까쪠리나가 자기 차지가 되는데, 내가 그루솅까와 결혼하면 일이 다 틀어지잖아?
그래서 그가 날 죽이려고 하지. 참, 네가 이반을 좋아하지만 걔는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아.
먼지구름 같은 존재야. 바람 한 번 불면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 존재.
이런 생각만 하는 나, 참 악한 인간이지?”
“아뇨, 악한 것이 아니고, 그저 약간 틀어졌을 뿐이에요.
차라리 미쨔에게 3천 루블을 줘서 조용해지게 만드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니, 그럴 생각 전혀 없다!”
알료샤가 혹흘라코프의 집으로 향하는데, 열 살 전후의 아이들 한 무리가 한 아이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럿이 한 아이를 괴롭히면 되겠어?” 하고 말리는데, 그의 어깨로 돌이 날아듭니다.
“쟤가 일부러 던진 거예요. 아저씨가 까라마조프 사람이기 때문에요.”
그 말에 그 아이에게로 몸을 돌리자, 아이들이 외칩니다.
“가지 마세요. 칼에 찔려요. 꼴랴Коля도 찔렸어요.”
분노에 찬 눈으로 알료샤를 노려보던 아이가 말합니다.
“날 괴롭히지 말아요. 제발 사라져주세요.”
알료샤가 돌아서는데, 또 돌이 그를 향해 날아듭니다.
“요 녀석, 비겁하게 등에 대고.” 하며 다가가자 아이가 그의 손가락을 깨물고 놓지 않습니다. 아픕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지?”
아이가 울음 섞인 소리를 날리며 사라집니다.
혹흘라코프의 집. 부인이 반기며 나와 알료샤를 맞습니다.
“까쪠리나도 지금 여기 와 있어. 어제 그루솅까와의 그 자리 이야기 다 들었어.
네 형도 와 있단다. 그 짐승 같은 드미트리 말고 이반 말이야.
사람들이 왜 이렇게들 불행 속으로 뛰어드는지 모르겠다. 보는 것도 괴로워.
저 리제는 왜 또 저러지? 어제 밤새 한 잠도 못 잤는데, 방금 전부터 또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구나.”
알료샤가 상처가 너무 아프니 약 좀 없느냐 묻습니다. 피가 밴 손수건을 풀고 상처를 보여주자 부인이 놀랍니다.
리제가 자기 방에서 튀어나오며 소리칩니다.
“의사 헤르첸슈투베Herzenstube를 불러요!”
어머니가 약을 찾으러 간 사이, 리제가 어제 편지는 장난이었다며 돌려달랍니다.
“네가 성년이 되면 결혼할게.”
리제가 펄쩍 뜁니다.
“장애인과 결혼하는 바보가 어디 있니!”
“내가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 되지 뭐.”
혹흘라코프부인이 약을 가지고 옵니다.
“너무 소리 좀 지르지 마라. 오늘 네 변덕에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
까쪠리나는 단호한 표정이고, 이반의 얼굴은 창백합니다.
그동안 알료샤를 괴롭히던 생각, 어떻게 형제가 같은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지?
그녀가 미쨔를 사랑하는 것은 그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니, 그 사랑이 이루어지면 미쨔는 행복하게 되겠지만,
이반은 워낙 자존심이 강한 타입이니 그런 사랑으로 행복해질 리는 없고....
그런데, 만일 까쪠리나가 사실 둘 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알료샤가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털어냅니다. 내가 사랑에 대해 뭘 알겠어!
까쪠리나가 반깁니다.
“잘 왔어요.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알료샤 당신뿐이죠.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알료샤가 생각도 정리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엉겁결에 대답합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미쨔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이반인데, 지금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반이 말합니다.
“네가 잘못 봤다. 이 여자가 나를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까쪠리나의 울부짖습니다.
“난 미쨔를 사랑해. 그가 ‘그 괴물’과 결혼한다면 난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절대 포기할 수 없어. 내가 평생토록 옆에서 평생 지켜볼 거야.
그가 불행해져 돌아온다면, 그 때는 내가 누이처럼 대할 거야.”
이제 모스크바로 떠나겠다는 이반의 말에, 그녀는, 참 잘 된 일이다 기쁘다 했다가, 친구가 떠나니 섭섭하다고 말을 바꿉니다.
그녀가 알료샤에게 200루블을 내밉니다.
“며칠 전에 미쨔가 아버지의 심부름꾼을 길에서 모욕을 줬어.
현장에 있던 그의 아들이 도와 달라 외쳐댔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아버지를 조롱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어.
그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그녀의 약혼녀로서의 동정을 표하고 싶으니, 이 돈을 대신 좀 전해줘.”
이반이 앞으로 다시라곤 볼 일이 없을 것이라며 악수조차 거절하고 나갑니다.
하녀가 혹흘라코프부인에게 달려와, 지금 까쪠리나가 저 방에서 히스테리를 부리며 난리를 피우고 있다고 하자,
부인은 그건 좋은 현상이라고 합니다.
알료샤가 자기가 눈치 없게 내 뱉은 말 때문에 이 꼴이 되었다고 자책하자,
부인이 위로해줍니다. 아니, 오히려 천사 같은 행동이었다고.
리제가 고개 내밀고 묻습니다. 무슨 일인데 천사 같으냐고.
알료샤가 까쪠리나가 말한 대위의 집으로 향합니다.
누추하기 그지없는 그의 집, 모두가 적대감어린 눈초리를 보냅니다.
수도원에서 구걸 온 사람이 왜 하필 이런 곳을 찾아왔지? 딸이 소리칩니다.
무슨 일로 왔는지 아버지가 묻습니다. 45세가량. 자기가 스니기료프Снегирёв대위라고 합니다.
그때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빠, 그 사람 내가 자기 손가락을 물었다고 온 거예요!”
돌아다보니 그 소년입니다.
“저 녀석 혼내줄까요? 아니, 그보다도 제 손가락 네 개를 자르는 게 낫겠죠?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어요?”
“아뇨. 아드님은 용감했어요.”
알료샤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형 대신 사과하자, 그가 말합니다.
“길거리에서 내 수염을 잡아 흔든 것을 사과할 수 있다고요?”
부인이 남편 장교시절을 회상하자, 소년이 이제 광대놀음 그만하라고 외칩니다.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 이야기하자며 알료샤의 손을 끌고 나옵니다.
스니기료프가 ‘그 사건’에 대해 입을 엽니다.
드미트리가 술집에서 자기 수염을 잡고 끌어내 광장으로 가, 모욕을 줬다.
하필 그때가 바로 학교가 끝나 학생들이 몰려나오는 시간이었고,
9살 아들 일류샤Илюша가 그의 손을 붙잡고 애원을 했지만, 드미트리가 내 수염을 잡아 뽑으며 선언하더라.
당신도 한때 장교, 나도 한때 장교, 결투를 신청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난 고소하려했는데, 집사람이 우리 수입원은 그의 아버지 심부름 값뿐이라며 워낙 강경하게 말려, 그럴 수가 없었다.
아들은 그날부터 학교에서 놀림을 받기 시작했다.
“애들이란 잔인한 족속이죠. 하나하나 놓고 보면 다 천사 같은데, 이들이 합치면 무자비해지거든요.”
참, 당신 손가락 많이 아프냐? 아까는 아들 앞이라 물어볼 수가 없었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들이 가슴에 돌을 맞았다.
아들과 나는 매일, 지금 이 코스로 산책을 나오곤 한다.
하루는 아들이 말하더라. 자기가 크면 드미트리를 죽이겠다고.
살인은 죄악이라 이야기하니, 그러면 칼로 그의 목을 누르고, 죽일 수는 있지만, 살려주노라 선언하겠다고.
그 다음날 또 묻더라. 아빠가 10루블을 받고 없던 것으로 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자, 이어서 묻더라. 부자들은 이 땅 위 어느 존재보다도 강하냐고.
그렇다고 하니까, 자기는 장군이 되겠단다. 황제에게 칭찬받고 부자가 되어 누구도 깔보지 못하게 하겠다고.
그 다음 날은 아무 말 없이 그냥 걷기만 하더라.
아이들을 알지 않는가. 자존심에 관련된 일일 때, 끝까지 참으려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으면, 설움에 북받쳐 한없이 울어대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하더라.
이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인데, 내 어떻게 당신 손가락 일로 그를 때려줄 수 있겠나.
알료샤가 그 말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건 형이나 형제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당신처럼 드미트리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주는 돈이라고.
무지개 색 찬란한 그 지폐를 한참 들여다보던 그가 알료샤에게 묻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봐라. 내가 이렇게 큰돈을 받으면 당신 속으로는 나를 경멸하겠지? 하지만 마침 잘되었다.
어머니, 아내, 곱사등 딸, 그들에게 약을 사줄 수 있거든. 또 삐체르부르크로 가 공부하고 싶어 하는 우리 딸 학비로도 쓸 수 있고.
알료샤가 기뻐하는 그를 껴안아주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는데,
당신 내 트릭을 한 번 보지 않을래? 그가 지폐를 높이 쳐들더니, 꾸겨서, 땅에 던지고, 발로 짓밟습니다.
생각해봐라. 내가 이 돈을 받으면 우리 식구들이 무엇이라 생각하겠는가. 또 내 아들 일류샤는?
그 어떤 것으로도 내 자존심은 바꿀 수 없어!
제5부 찬성과 반대
까쪠리나, 히스테리가 심해지더니 혼절해버립니다.
혹흘라코프 부인은 이제 열병이 뇌막염으로 번지면 어떻게 될까 걱정입니다.
부인이 알료샤를 불러내어 그에게 귓속말을 합니다.
“세상에 참 이상한 일도 있지. 아까 네가 나가자마자, 리제가 널 비웃곤 했다며 후회를 하던데.
어렸을 적부터 ‘가장 위대한 친구’라기도 하고, 또 모스크바 우리 집 마당에 있던 소나무 이야기도 꺼내고.”
알료샤가 이 집 딸의 방에 들어섭니다.
“그 불쌍한 대위에게 돈 갖다 줬어?”
“안 받던데.”
“그러면 쫓아가면서라도 주었어야지!”
“아냐! 오히려 다행이야! 오늘 받았더라면, 자존심 때문에 내일 일찍 찾아와 그 돈을 짓밟았을 텐데,
이제는 자존심은 세운 상태이니, 내일이면 받을 거야. 이제 중요한 것은, 그가 우리와 동격이라는 것을 느끼게끔 설득하는 일,
아니 어쩌면 그가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돈을 받을 수 있게 할까 하는 거야."
리제는 이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여태까지는 우리가 동격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네가 나를 내려다보는 위치의 사람인 것을 인정하야겠네.”
그러면서 걱정도 합니다.
“혹시 지금 우리가 마음속으로는 그를 경멸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
리제가 알료샤의 손을 달라고 합니다.
“고백할 것이 있어. 그 편지 아까 장난이라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니고 진심이었어.”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문을 열고 엄마가 엿듣고 있는지 보라고한 후 리제가 말합니다.
“무슨 이런 남자가 있지? 이런 순간에도....”
알료샤가 그녀에게 입을 맞춥니다. 리제가 놀랍니다.
“나보고 감정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사실은 아까 내가 테스트를 했던 거야. 편지를 다시 달라고 했을 때,
그냥 주머니에서 꺼내주면, 그랬었구나, 난 운이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포기하려했는데,
집에 놔두고 왔다고 해서 안심했었어."
“그래? 사실은 내 주머니에 있었는데?”
“저런 수도사들도 거짓말을 하나?”
“거짓말이 아니라....”
“그런데, 요즘 무슨 큰 걱정이 있는 것처럼 보여.”
“그래. 형들이 서로 싸우고 아버지까지 끼어들어 모두가 파멸의 길로 가고 있어.
우리 까라마조프家에 어떤 운명의 힘이 닥쳐오고 있는 걸 느껴.”
알료샤가 조시마 장로가 위독해 가봐야 한다며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부인이 그의 앞을 막아섭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내 딸이 장애인이라고 불쌍한 마음에서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 것인가?
이제 앞으론 우리 딸을 만나지 마라. 그리고 그 편지 내놓고!”
“그렇게는 할 수 없어요. 또 아까 한 말들은 전부 진심이었고요!”
알료샤가 그 집을 뛰어나옵니다.
알료샤의 마음은 수도원에 가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쨔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그게 걱정입니다.
혹 그가 지난 번 만났던 여름 별장에 있지 않을까 가봤지만, 이번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스메르쟈코프가 이곳 별장지기의 딸 마랴Марья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난 사람들을 증오한다. 특히 내 출생을 들먹이는 여기 사람들을. 아니, 러시아 전체를 증오한다.
난 표도르보다 낫다. 그에게서 돈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지만, 난 음식을 잘 만들지 않는가.
난 돈만 마련할 수 있으면 당장 모스크바로 가 식당을 열고 싶다.”
알료샤가 재채기가 나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그들에게 얼굴을 내밉니다.
어쩌면 미쨔는 지금 이반과 같이 식사를 하고 있을지 모른답니다.
달려가 보니 이반이 식당 위층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손짓합니다. 별실이니 들어오라고.
별실이라 할 정도는 아니고, 그저 칸막이로 가려져있는 구석입니다.
“차보다는 먹을 것 시켜야하지 않을까? 네가 어렸을 적 좋아하던 잼도 여기 있는데.”
“그걸 기억해?”
“물론이지. 네가 열한 살, 내가 열다섯 살 그때까지는 다 기억해. 단지 당시 우리 나이엔 대화가 서로 통하지 않았을 뿐이지.”
“내가 여기서 너랑 석 달이나 같이 살았으면서도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잖아? 그런데, 이제 내일 내 다시 모스크바로 떠나가니...
그동안 네 눈에서 읽을 수 있었어. 마치 무엇인가 기대하는 듯 나를 바라보곤 하는 그 눈길을 느꼈었어.
사실 난 그 동안 너로부터도 거리를 두고 싶었지.
그런데, 오늘 까쪠리나랑 있을 때 네 행동을 보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어.
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존경해. 오늘 네가 그렇게 보였어. 그런데, 궁금하구나.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겠지만, 형도 별 수 없구나. 별 수 없는 ‘청춘靑春’이구나, 그렇게."
“그래?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데, 오히려 듣기 좋은데.”
“이제 형이 떠나면 미쨔랑 아버지는 어떡하지?”
“내가 그들의 보호자도 아니고,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잖아. 이제 여기에서 내 일은 끝났어.”
그의 말이 이어지다. 이런 말들도 나옵니다.
“사람이 바보일수록 더 진실에 가까이 가는 법이지.
바보일수록 생각이 더 맑아. 바보스러움이란 단순하고 가식이 없잖아.
똑똑한 사람은 우물쭈물하고 숨기고 원칙이 없지만 바보들은 정직하고 직선적이잖아.”
“이상한 건 말이야.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야만적이고 악한 인간들이 어떻게 신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까 하는 거지.”
“짐승은 결코 사람들처럼 잔인해질 수 없어. 사람은 예술적이고 아름다울 정도로 잔인하지.”
“난 악마는 없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자신들의 형상을 따서 그런 존재를 생각할 뿐이지.”
"세상은 부조리 위에 서있어. 그렇지 않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집으로 돌아오는 이반의 가슴을 짓누르는 뭔지 모를 느낌이 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메르쟈코프가 하소연을 늘어놓습니다.
요즘 꼭 금방이라도 발작이 일어날 것 같다. 이번엔 심한 발작이 일어나 며칠 동안 못 일어날 수도 있어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님이다.
미쨔가 겁이 나, 문을 항상 꼭꼭 잠가두는데, 그루솅까가 올 수도 있는 일이라, ‘위험’ 신호와 ‘그녀’ 신호를 약속해 뒀다.
그런데, 미쨔가 협박하면 그 노크방법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리이는 요즘 부쩍 몸이 안 좋아져 일단 잠이 들면 깨어나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 만일 주인님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이반은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건 뭐 일부러 무슨 발작연극을 꾸미겠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어쨌든 난 내일 아침 일찍 모스크바로 떠난다.”
이반의 이 말에 대한 그가 권유합니다,
“그렇게 먼 모스크바까지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근처 체르마쉬냐Чермашня에 머무르는 건 어떻죠?”
아버지는 잠자리에 들지 않고 이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반은 지금 전혀 말을 나눌 기분이 아니라며 그냥 들어가 자겠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이반이 자기에게 적개심을 품은 것은 알지만 이건 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그냥 참습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 벌써 두 시지만, 이반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분노가 밀려옵니다. 이 음흉한 녀석, 아버지를 위험에 빠뜨리려 일부러 미쨔에게 비밀노크신호를 알려주고서....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가 스메르쟈코프를 두들겨 패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이유 없이 알료샤에 대한 분노도 솟구칩니다. 또 자신에 대한 분노도. 분노, 분노, 분노!
아침, 모스크바로 떠날 준비를 하는 그를 말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섭섭한 생각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가는 길에 사업부탁 하나 하자고 합니다.
“체르마쉬냐에 있는 땅을 팔려하는데, 가는 길에 거기 들려 흥정 좀 해 달라.”
“제가 어떻게 흥정이란 것을 할 수 있겠어요.”
“걱정할 것 없다. 그 사람이 말할 때 수염이 떨리면 진심이고, 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이야기하면 거짓이다.”
그냥 떠나겠다는 이반. 한 번 도와달라는 아버지. 이반이 마지못해, 그러겠다 하지만, 중간에 마음이 변해 모스크바로 직행합니다.
표도르에게 일들이 다 뒤틀립니다.
이반의 부탁거절은 그렇다 쳐도, 스메르쟈코프가 간질로 쓰러지고,
엎친 데 덮친 격, 그리고리이는 요통으로 꼼짝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틀림없이 그루솅까가 나타날 텐데, 어쩌지? 문을 열어놓고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닫아놓을 수도 없고....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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