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식 책 요약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날’

뚝틀이 2015. 11. 29. 01:50

Hermann Hesse (1877 – 1962),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 1919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가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열 살 때 쯤, 그때 난 조그마한 도시에서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그 시절의 향기가 되살아난다.

어두운 골목길, 밝은 집, 탑, 시계소리, 아늑하고 좁은 방, 토끼, 가정부, 말린 과일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

그때 우리 집에는 엇갈리는 두 개의 세계가 있었다.

그 하나는 내게 아주 친숙한 아버지 어머니와 살던 집이었는데,

거기엔 부드럽고 다정한 말씨, 깨끗한 손, 말쑥한 옷차림, 찬송가와 참회,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가 있었다.

또 하나는 어둠침침하고 전혀 다른 냄새를 풍기는 하녀와 직공들의 집이었는데, 그곳에는

다른 말씨, 무섭게 생기고 수수께끼 같은 물건들, 강도의 침입이나 자살 같은 훨씬 더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가정부 리나Lina는 빳빳하게 다림질한 앞치마에 깨끗이 씻은 손을 단정히 모으고 우리와 함께 맑은 목소리로 찬송가를 불렀지만,

부엌에서 내게 유령이야기를 해주거나 푸줏간에서 이웃과 말다툼을 할 때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곳에서의 싸움과 다툼이 싫어지면 난 다시 신앙심 깊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때 내 삶의 목표는 이 다음에 커서 부모님처럼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계속 공부하고 시험을 쳐야만 했다.

그때 수없이 듣고 읽었던 이야기, 방탕아가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그것이 곧 구원이며 옳은 길이라는 이야기,

하지만 난 사실 구원보다는 '악한'이나 '방탕아'에 관한 대목 그 자체에 더 흥미를 느끼곤 했다.

 

우리 중 ‘골목대장’은 나보다 세 살 많은 양복점 아들프란츠 크로머Franz Kromer였다.

우리들 모두 둘러앉아 ‘무용담’을 나누는 시간, 나도 할 수 없이 ‘고백’을 했다.

모퉁이 물방앗간 집 과수원에서 아주 탐스러운 사과를 훔쳤다고.

사실은, 나도 그들과 같다는 의미로, 그냥 해본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기회만 노리던 프란츠에겐 이건 호재 중 호재,

과수원 주인이 도둑을 잡겠다고 현상금을 내걸었다며, 내게 돈을 요구했다.

난 저금통에 있던 돈을 주었고, 그는 더 요구했고, 난 집에 있는 돈에 손을 대게 되었는데,

그가 결국 2마르크라는 거금을 요구, 한 번의 작은 거짓말이 점점 더 큰 ‘죄악’으로 이어져갔다.

 

의지할 누구도 상의할 누구도 없이, 한 주가 1년같이 느껴지는 고통의 시간이 계속되던 어느 날, 한 학생이 전학 왔다.

이름은 막스 데미안Max Demian, 그는 보통아이들과 달랐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할 줄도 알고, 때로는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에 반박하는 것도 마다않았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카인과 아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도 그랬다.

카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용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아벨은 그 용감함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였다고.

집에 가는 길에 그가 내게 들려주었다.

카인의 표식은 그가 뛰어난 인물이라는 뜻인데,

사람들은 그의 진정한 가치를 몰랐고, 용감한 그를 죽였다.

카인이 악마의 표식을 가졌다는 것은 그를 두려워하는 비겁자들이 날조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우리 집에 대해서도 뭔가 알고 있는지, 우리 집 문에 있는 새매의 문양을 보며 그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기도 했다.

난 이런 ‘새로운 사고방식’이 있다는데 충격을 받았다.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프란츠가 날 광장으로 불러내더니, 이번엔 돈이 아니라 누나를 데려오라고 했다.

이번엔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할까 두려워하며 힘없이 걷고 있다, 데미안과 마주쳤고,

난 그에게 내가 프란츠와 무슨 악연인지 하소연했고, 내 이야기를 다 듣고 그가

자기도 전부터 내가 프란츠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짐작은 했다면서,

그런 녀석은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복종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프란츠가 길에서 나를 보더니, 잔뜩 겁을 먹고 피했다.

난 데미안에게 물었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 하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날, 난, 거짓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을 불러왔는지, 그 동안 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다 고백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내가 아버지에게 카인과 아벨에 대한 데미안의 해석에 대해 물었더니,

그건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교도들의 이론이라고 했다.

 

이제 사춘기, 난 성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고,

부모님들이 바라는 나의 삶과 그 유혹 사이의 갈등 속에서 지내면서,

성에 대한 호기심이 유혹이요 원죄요, 내 속에서도 프란츠처럼 어두운 세계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 난 오랫동안 데미안과의 접촉을 피했다. 프란츠의 일로 그에게 크게 빚을 진 것 같은 마음에서 말이다.

견신례 수업시간에 아벨과 카인 이야기가 나오자 난 그를 보았고, 그도 나를 보며 씽긋 웃었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 그와 난 다시 가깝게 되었고 내 항상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그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인형처럼 다룰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

그는 정신을 집중하면 상대의 마음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하며, 이런 말도 했다.

   “똑바로 상대방의 눈을 들여다보는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못 견뎌하지. 다들 불안해져.”

그런 방식으로 자기 눈으로 선생님을 움직였고, 그래서 내 옆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고도 했다.

어느 날, 집에 돌아가던 중, 수레에 묶인 말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그때 데미안도 보였다.

그런데 난 그의 모습에서, 그가 여자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하고 또 죽은 것 같기도 한데,

그 속에는 생명력이 충만하고, 어쩌면 시간을 초월한 사람의 모습 같기도 하다는

그런 아주 이상하고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난 이후 계속해서 이 ‘데미안’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따라 해보려 했는데,

그런 나의 모습이 걱정이 되었는지, 부모님은 나를 김나지움(인문계 학교)으로 전학시켰다.

부모의 이끌음도 없고 데미안의 인도도 없이 기숙사에서 지내는 반 년 동안, 내 키는 훌쩍 컸고 몸은 야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난 기숙사에서 제일 힘이 세다는 알폰스 베크Alfons Beck와 길에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가 날 술집으로 끌고 가, 난 그에게 아벨과 카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는 여자 이야기를 하고∙∙∙∙∙∙∙,

내 비록 그날은 경험이 없어 술이 약했지만, 그 후로도 계속 그와 어울리면서

어느덧 난 술집 단골에 폭음과 만행으로 기숙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래도, 난 순결을 유지하고 싶었고, 여자와의 육체관계는 피했다.

 

소년 같지 않게 어른스럽게 행동하며 독특한 생각을 했던 데미안의 흉내를 내려했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영혼이 불안에 퍼덕이고 있었다.

남들과 다른 행동, 혼자 사색하는 습관, 또 내 독특한 생각에의 집착, 그런 것 때문에

결국 난 그곳 나쁜 친구들조차도 어울릴 수 없게 되었고, 하루하루 외로움을 곱씹으며,

왜 카인이 용감한 사람이었고 그의 이마의 표적은 또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고통을 견뎌야 했다.

결국 나는 퇴학 위기를 맞게 되었고, 그 때문에 아버지가 두 번씩이나 학교에 와야 했다.

 

어느 봄날, 난 공원을 산책하는 한 우아한 여인을 보았는데,

얼굴이 총명한 소년 같기도 하고, 또 슬퍼 보이면서도 아름다운 그녀가

내 그때까지 만났던 어떤 소녀들보다 더 인상이 깊어, 그녀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난 술집을 순례하던 생활을 끝내고, 독서와 산책으로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말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더구나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한 모습이지만, 그녀는 내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고,

난 그녀에게 베아트리체Beatrice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녀를 잊지 않으려 그림을 그리곤 했다.

영리하고 우아한 모습을 그리려는 그 생각대로 되지를 않아, 그냥 붓 가는대로 그렸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그림도 변해, 데미안의 모습이 떠오르는,

또 어찌 보면 내 모습도 들어가는 그림이 되어갔다.

 

어느 날, 시내에서 우연히, 휴가를 온 데미안을 만났다.

오랜만의 만이었지만, 그는 내가 술을 마신다는 것을 언짢게 생각했고,

또 나는 그에게서 어떤 훈계도 듣고 싶지 않아, 우리는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로 치달았다.

그와 헤어진 후 난 내 꿈에 나타나곤 하는 새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그림 역시 변해가더니, 어느 새, 머리는 황금빛, 머리는 매인 큰 새로 변했다.

우리 집 문장의 새를 설명해주던 데미안이 생각났지만, 난 그의 새 주소를 몰라, 옛 주소로 그 그림을 보냈다.

 

학교에서 내가 좋아하는 얼마 안 되는 수업 중 하나, 헤로도트Herodot에 대한 Follens선생님의 강의.

어느 날, 그 수업시간에 앉아있는데, 쪽지 하나가 내게 전달되어왔다.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Das Ei ist die Welt. ​                                                  알은 세계다.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비록 그 쪽지에 보낸 사람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지만,

난 이것이 내 새매 그림에 대한 데미안의 응답인 것을 직감, 생각에 잠겨있는데,

바로 그때 내 귀에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하였다.

아브락사스는 신성神性Gottheit을 뜻한다고.

   (정신분석학자 Carl Gustav Jung에 의하면 Abraxas

    삶과 죽음, 참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둠 등 양극적兩極的인 것을 포괄하는 신성神性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난 이상한 꿈을 꾸곤 했다.

우리 집 문양의 새매가 빛을 발하며 집을 밝히고,

어머니가 다가와 포옹하려 하면, 어머니는 내가 그린 베아트리체요 데미안의 모습으로 변하곤 했다.

 

이제 곧 대학에 가야하는 나이,

다른 친구들은 의사나 변호사 기업가가 되려는 그런 계획들이 있는데,

난 그저 ‘진정한 나’에 이끌리기를 원할 뿐, 이것이 내 길이다 하는 무슨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내가 산책하곤 하던 길목에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난 거기서 흘러나오는 오르간 음악에 끌리곤 했다.

그러기 몇 번, 어느 날 황혼 무렵,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오가니스트를 따르게 되었고,

술집에서, 그가 초대도 않는데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가 거부반응을 보이이기에, 그에게 말했다.  

   “난 그저 음악이 좋아요. 음악은 도덕과는 상관없기 때문이죠. ”

그의 이름은 피스토리우스Pistorius.우리 사이에 대화가 성립되었고,

내가 아브락사스를 좇고 있다고 하자, 그가 놀랐다. 아무나 아는 이름이 아닌데 어디서 들었고, 무엇을 아느냐고.

난 그에게 데미안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가 다음엔 교회에 들어와 앉아 연주를 들으라 하였고, 그 후 만남이 계속되었다.

그는 원래는 신부가 되려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포기해, 집안에서 배척되는 신세가 되었고,

이제는 ‘아가리 닥치고 배 깔고 엎드려 생각하기’ 그 철학만 한다고 했다. 그의 말,  

   “사람들은 타인을 그의 기이한 행동으로만 평가하려 하는데,

    사실 한 사람의 인격을 이해하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지.

    누구나, 어떤 존재든, ‘그 영혼에 한 때 있었던’ 것을 모두 포함하는 복합체거든.”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경청하고, 나를 이끌어주려 노력했다.

때로는 그에게서 데미안과 비슷한 분위기가 풍기기도 했다.

 

같은 반 크나우어Knauer가 내게 집착하곤 했다.

내에게 데미안이 있었듯, 그에게는 마치 내가 그런 존재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가 어느 날 내게 하소연해왔다.

자기는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데, 성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 힘들다며 그런 생각을 어떻게 누를 수는 없겠느냐고.

내가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 욕구를 따르는 것이라고 하자,

그가 흥분해, 날 짐승 같다고 하며 자리를 떴다.

난 그때 깨달았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온 난 새매를 어머니를 데미안처럼 보이는 여인을

내 꿈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는데, 이번엔 그 그림이 나 자신처럼 보였다.

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에 난 잠자리에 들을 수가 없었고, 한 밤중에 목욕을 하고 산책을 나갔다,

골목길에 혼자 웅크리고 있는 크나우어를 만났다.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 있냐고 묻자, 그는 자살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크나우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난 피스토리우스와 시간을 보내며, 내 반복되는 꿈에 대한 답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일반론에서 겉돌 뿐, 진심으로 다가오는 그 무엇인가가 없었다.

그의 ‘철학’에서는 도대체 깊이가 있다거나 ‘새로운 그 무엇’인가가 있다거나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어서,

결국 그에게 “당신에게서는 ‘골동품 냄새’가 난다.”는 말을 던지고 나왔는데, 며칠 후 그가 나를 만난 자리에서,

자기는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아브락사스를 세상으로 내려오게 할 사람도 못 된다고 했다.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은 없었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난 대학은 철학과로 가기로 했다.

 

난 계속 꿈을 꿨고, 밤마다 그 꿈이 반복되었다.

꿈속의 인물은 어머니요 관능과 욕정의 여인이기도 한데, ‘차마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었다.

김나지움 졸업 후, 이젠 누군가 만나야겠다며 나서봤지만, 눈에 띄는 여성 나를 따라오는 여성 그 누구도 그저 환멸뿐이었다.

난 데미안을 찾아 나섰다.

우선 내가 찾아간 곳은 데미안의 옛집,

그의 행방을 모른다는 새 주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가 앨범을 보여주는데, 거기 있는 데미안 어머니의 사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녀는, 놀랍게도, 내가 꿈속에서 만나고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이제 내 나이 18세, 대학생활이 시작되는데, 철학시간 강의내용은 하나같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조립품 같은 환멸뿐,

다시 방황하던 어느 날 늦은 저녁, 쾌활한 젊은이들 한 무리 가운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미안.

그가 말했다. 카인의 표식을 가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이끌린 것이라고.

그가 언제든지 오라고, 자기 새 집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다시 그의 집을 찾으니, 데미안의 어머니가 나를 알아봤다.

그녀가 친구들과 유럽문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회주류’의 통념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친구들이 돌아가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데미안에게 보냈던 그림, 술집을 전전했던 학교시절, 또 피스토리우스와의 관계 등등.

그녀가, 앞으로는 자기를 에바 부인Frau Eva이라고 부르라며, 친구로 가깝게 지내자고 했다.

난 그녀에게서 양면성을 느꼈다. 훌륭한 ‘어머니’로서, 또 동시에 아름다운 ‘여인’으로서.

언제나 길 위에 있었던 것 같았던 내 삶이 이제 집으로 돌아온 느낌,

세상에서 당신을 안다는 것이, 그 목소리에 젖어든다는 것이, 그 곁에서 숨 쉰다는 것이∙∙∙∙∙∙∙

내게 어머니가 되든지, 연인이 되든지, 여신이 되든지, 당신이 거기 있기만 하다면∙∙∙∙∙∙∙

그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돼요, 강요해서도 안돼요.

    사랑은 그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끌게 되는 것이지요.”

또, 전설 하나를 들려주면서 이런 말도 했다.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찾게’ 돼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으로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죠.”

집 뒤의 정원으로 나가니, 데미안이 돌아와 있었다.

어머니가 첫 번째 만남에서 자기를 에바 부인이라고 부르라고 한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 후, 난 아들로서 형제로서 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 집에 가곤 했고, 그 집이 내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거기서 만나곤 하는 믿음이 다르고 관심이 다른 사람들, 그들은 다 이마에 표식을 가지고 있었다.

에바부인은 내 모든 생각과 욕망을 이해하는 듯했고, 난 크리스마스 때 보름 동안 그 집에서 머물렀다.

꿈같은 시간,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은 시간, 이것이 나의 느낌이고 바람이었는데,

나에게도, 데미안에게도, 또 에바부인에게도 환상이 보였다.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환상이.

 

그해 여름,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때로는 행복에 잠겨, 때로는 우수 속에,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어두운 느낌이 엄습하는데,

데미안이 찾아와, 어머니가 자기를 보냈다며, 내게 어머니를 불렀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난 그의 어머니를 불렀었다.

데미안은 이제 러시아와의 전쟁이 임박했다며,

자기 같은 사람도 나라에 필요하다며, 이미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습니다.

둘이 찾아간 데미안의 어머니, 언제든지 자기를 필요로 하면 부르라고 했다. 자기와 같은 사람을 보내겠다고.

 

나도 군대에 들어갔다.

야간보초를 서는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상태에서, 하늘에 있는 데미안과 어머니가 보였다.

그들의 이마에는 카인의 표식이 빛나고 있었고, 거기에서 별들이 튀어나오더니, 그 중 하나가 나를 맞췄다.

난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었고, 나중에 들으니, 내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었다고 했다.

난 의식을 차리기가 힘들었고, 계속 환상 반 실제 반 상태에서 헤맸다.

 

그러던 어느 날 ‘옆 침대’에 보니 데미안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내게 프란츠 크로머를 기억하느냐 묻기에, 난 그저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랬다.

   “이제는 네가 나를 불러도 난 올 수 없어.

    나를 필요로 하는 때가 오면 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돼.”

 

 

http://www.gutenberg.org/files/41907/41907-h/41907-h.htm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황야의 이리,

       유리알 유희 등의 줄거리는

     카카오 페이지의 ‘뚝틀이의 문학산책’에 정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