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rling,
Душечка,
Anton Pavlovich Chekhov,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원제목은 두셰치카Душечка,
영문판 제목은 'The Darling'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제목은 ‘귀여운 여인’이고요.
퇴직 공무원의 딸 올렌카Оленька,Olenka가 집 앞 작은 계단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건넌방에 세 든 남자가 뜰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푸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노천극장 치볼리ТиволиTivoli의 매니저인 쿠킨Кукин Kukin 이 남자,
이번엔 올렌카 쪽을 향하더니 푸념을 계속합니다.
"계속 비가 내리니 야외극장은 항상 파장분위기에요.
임대료에 인건비는 그대로 나가니 난 이제 파산지경이고요.
더구나 요즘 관객은 싸구려 유행물이나 찾곤 하니, 예술성을 추구하는 난 죽을 맛이죠."
그 이튿날 저녁에도 또 비가 내립니다. 이제 이 사람 쿠킨, 아예 히스테리 수준입니다.
"그래, 아주 퍼부어라! 퍼부어! 아예 극장이 물에 잠기고 내가 빠져 죽게 해버려라!
차라리 배우들이 고소해 시베리아 유형이라도 갔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아니, 아예 단두대에나 오르지 뭐!"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올렌카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올렌카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여자입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사랑했고, 그 다음엔 이모를, 그리고 또 프랑스어 선생을 사랑했었습니다.
목덜미도 부드럽고, 뺨에는 장밋빛이 흐르고, 티 없는 미소가 흐르는 그녀를 보며, 사내들은 “괜찮은 걸!” 하며 웅얼거렸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들의 입에선 자기도 모르게 “사랑스럽네!Душечка(두셰치카)!”가 나오곤 했습니다.
잘 생긴 구석이라곤 어디에도 없고 목소리까지 갈라진 쿠킨,
그에 대한 올렌카의 동정이 연민으로 이어지더니, 거기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어느 새 쿠킨도 상냥한 이 아가씨에 마음을 빼앗겨, 결국 그가 먼저 청혼하고,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됩니다.
살이 통통하고 어깨가 단단한 올렌카를 가까이서 보며 쿠킨이 즐겨하던 말, “두셰치카!”
올렌카는 티켓을 팔고, 장부정리에 급료 지불 등 극장 일을 거들며,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삽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중요한 것은 연극’이고, ‘참된 즐거움과 휴머니즘을 위해서는 연극이 필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악사들을 감독하고, 배우의 연기를 고쳐주기도 하고, 악평을 실은 신문사를 찾아가서 직접 해명하는 것도 마다 않습니다.
배우들도 그런 그녀를 좋아해 ‘두셰치카’라고 부르곤 합니다.
어느 날, 남편이 극단교섭을 위해 모스코바로 떠나자, 그녀는 마치 리더를 잃은 암탉신세가 된 느낌입니다.
부활절 한 주 전, 어느 날 밤, 문을 두드리는 불길한 소리.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받아든 전보엔,
“이반 페드로비치 오늘 갑자기 사망. 지시 바람. 화요일 장례.”
맑은 하늘에 날벼락, 올렌카는 온 이웃이 다 들을 만큼 큰소리로 통곡하고,
이웃들은 착하기만한 그녀가 불행을 맞은 것에 성호를 긋습니다.
남편이 묻힌 지 석 달이 지났는데 올렌카는 아직도 상복 차림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흰 조끼에 금시계 줄을 한 이웃이 말을 건넵니다.
“세상일은 다 미리 정해진 것.
누가 세상을 떠났다 하더라도 그건 신의 섭리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을 한 사람은 목재상을 경영하는 바실리Василий입니다.
며칠 후, 잘 알지도 못하는 중년부인이 찾아와 정신없이 수다를 떨고 가더니,
그 사흘 뒤, 이번에는 그 남자 본인이 찾아와 아무 말도 않고 10분가량 앉아 있다 떠나고,
모든 것이 급물살을 탄 듯, 얼마 후 올렌카는 바실리와 약혼하더니, 곧 이어 결혼에 골인합니다.
올렌카는 이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은 목재’라 생각하며, 이 분야의 전문가가 다 된 기분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낭만이니 여유니 그런 것 전혀 모르는 일벌레,
그렇게 사는 올렌카가 참 안 됐다는 생각에 친구들이,
“가끔 연극이나 서커스 구경이라도 좀 다녀오지?”
충고라도 하면, 그녀는 정색을 하고 대답하곤 합니다.
“연극이란 건 구경해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어.”
사람이란 이렇게 변하는 법이죠.
남편이 목재를 구하러 다른 지방으로 가면, 건넌방에 세 들어 있는 젊은이 스미르닌Смирнин이 놀러 오곤 합니다.
이 사람은 근처에 주둔해있는 부대의 수의사입니다. 그가 신세타령을 늘어놓습니다.
부인이 바람피워 이혼했는데 자식양육비로 매달 40루블을 부치고 있다고요.
그에 대한 그녀의 충고,
“부인과 화해하세요. 아드님을 위해서라도 부인을 용서해야 해요! 아드님도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거예요.”
남편이 돌아오자 올렌카는 그에게 그 수의사 이야기를 열심히 들려줍니다.
부부는 성상 앞에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도 자식을.....”
이렇게 함께 살기 6년.
어느 추운 날, 남자가 목재발송 확인하러 모자도 안 쓰고 밖에 나갔다 감기에 걸리더니 며칠 후 사망합니다.
올렌카는 다시 미망인이 되었습니다.
올렌카는 모자니 장갑이니 멋 부리기엔 관심도 없이 늘 검은 상복에 흰 상장입니다. 교회와 남편묘지 외엔 가는 곳 없습니다.
수녀처럼 살던 그녀가 6개월이 지나자, 가끔 요리사 마브라Мавра를 데리고 시장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녀가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거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는 그녀가 뜰 안에서 수의관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고,
또 누구는 수의관이 그녀에게 신문을 읽어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 모두 그저 추측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친구에게,
“가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질병이 많아요.
가축의 건강에도 인간의 건강과 마찬가지로 주의를 기울여야죠.”
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다른 여자라면 세상 비난을 받았겠지만, 누구 하나 이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오래 갈 수는 없었습니다. 주둔부대가 떠나는 바람에 수의관도 함께 이동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자리만 보존하던 아버지도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올렌카는 이제 다시 외톨, 완전 외톨이 되었습니다.
층계에 앉아있노라면 불꽃놀이 요란한 노천극장 음악소리도 들려오곤 하지만 그녀에게 어떤 상념도 일으키지 못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조차 귀찮아진 그녀는 날이 갈수록 더 야위어갑니다.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도, 전처럼 미소 짓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불행한 일은 자기주관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주위의 대상이 눈에 보이고, 또 주위의 일이 이해되기는 하지만, 생각을 정리해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남편과 또 수의사와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고 또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이제는 머릿속도 마음도 마치 그녀의 집 뜰처럼 텅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도시는 '발전' 중입니다.
이곳에도 이제 거리이름이 붙고, 노천극장과 목재하치장이 있던 곳에도 새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올렌카의 집은 낡아져, 지붕은 녹슬고, 창고는 기울어지고, 뜰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올렌카도 늙고 추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불현 듯 추억이 떠오르면, 가슴이 메어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지만,
그것도 잠깐뿐, 그냥 다시 공허해져, 자기가 왜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곤 합니다.
이제는 아무런 의욕도 주장도 의견도 없고, 살림도 아예 요리사에게 전부 다 맡겨버렸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고능력을 다시 살려주고 식어가는 피를 데워줄 사랑뿐.
무더운 7월 어느 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립니다.
문을 열어주러 나간 두셰치카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머리가 희끗해지고 평복을 입은 수의관 스미르닌, 그녀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엉엉 웁니다.
어떻게 된 것이냐는 물음에, 이제 군대를 그만두었고 이곳에 정착하러 왔답니다.
부인과 다시 결합했고, 아들이 중학교 갈 나이랍니다.
수의사의 아내는 마르고 못생겼고 고집도 세게 생겼습니다.
아들 사샤Саша는 푸른 눈에 보조개가 있는데, 나이에 비해서 작은 편입니다.
그가 집을 알아보고 있다 말하자, 올렌카가 틈을 안 주고 자기 집을 권합니다.
집세 그런 것은 한 푼이라도 받을 생각 전혀 없다고요.
소년과 차를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올렌카에게는 이 소년이 마치 자기 자식인 것처럼 느껴지며 가슴이 뭉클해옵니다.
'어쩜 저리 영리하고, 또 어쩜 저리 잘생겼을까!'
소년의 앞날을 의논하는 부모에게 들려주는 ‘자신’의 견해,
“실업교육보다는 고전적 교육방법이 낫죠. 의사도 될 수도 있고, 기술자도 될 수 있잖아요?"
오랜 침묵과 공허의 세월 후, 처음으로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주견입니다.
어느 덧 중학생이 된 사샤. 스미르닌은 매일 가축검사를 나갔는데, 어떤 때는 며칠씩 못 들어오기도 합니다.
사샤 엄마는 하르코프Харьков에 있는 언니네로 놀러갔다가 아예 거기에 눌러앉았다는 소문입니다.
사샤가 굶어 죽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든 올렌카는 아이를 자기 건넌방 작은 방으로 옮겨옵니다.
올렌카는 매일 아침 소년의 방으로 갑니다.
곤히 자고 있는 그를 깨우기가 안쓰럽지만 그래도 할 수 없이 깨워 일으킵니다.
소년이 옷을 입고, 테이블에 앉아 기도를 하고, 아침을 시작합니다.
차를 큰 컵으로 석 잔, 도넛을 두 개, 버터 발린 빵 절반.....
“사샤, 아직 우화를 외우지 못했지?”
“아, 좀 내버려두세요. 제발!”
사샤가 작은 몸에 큰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합니다.
올렌카가 그의 뒤를 따르자, 사샤가 짜증을 냅니다.
“제발 그냥 돌아가 주세요! 나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그녀는 학교 정문 안 저쪽으로 소년이 사라질 때까지 곁눈질도 않고 지켜봅니다.
지금까지 이토록 깊은 사랑을 느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아아, 내 이 소년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모성애 같이 마음속에서 강하게 불타고 있는 감정, 타산도 욕심도 없이 그저 기쁘고 뿌듯하기만 합니다.
사샤를 학교에 바래다주고 나서 그녀는 흡족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가슴 깊이 애정을 느끼며, 집으로 발걸음을 향합니다.
사샤와 함께 지낸 반년 동안 그녀는 다시 젊어졌고, 얼굴엔 미소가 가득해졌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그런 그녀에게 다시 친밀감을 느껴 말을 건넵니다.
“안녕하세요. 올리가 세묘노브나Ольга Семеновна! 요즘 어떠세요?”
“요즈음은 중학교 공부도 어려워졌어요. 1학년에게 우화암송과 라틴어번역 또 수학문제까지 숙제를 내주다니..... ”
올렌카는 소년을 잠재우고 나서 오래도록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올린 후, 침실로 돌아가 소년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나 기술자가 되어, 큰 저택을 짓고, 마차를 갖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녀의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톡, 톡, 톡. 문 두드리는 소리.
올렌카가 공포에 질립니다.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
‘사샤 엄마의 전보야! 아이를 하르코프로 보내라고!’
그 생각이 들자, 올렌카의 머리와 사지가 싸늘해집니다.
'절망! 세상에 나처럼 불행한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잠시 후 들려오는 목소리. 전보가 온 것이 아니라 수의사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심장 고통은 서서히 가라앉고, 기분이 다시 가벼워집니다.
그녀는 다시 드러누워 사샤의 일을 생각합니다. 깊이 잠들어 있는 옆방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사샤의 잠꼬대가 들려옵니다.
영어 : http://www.eastoftheweb.com/short-stories/UBooks/Darl.shtml
러시아어 : http://www.lib.ru/LITRA/CHEHOW/dushechka.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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