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식 책 요약

푸시킨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뚝틀이 2015. 12. 8. 03:44

바깥나들이가 꺼려질 정도로 쌀쌀해지면 내 마음은 원점으로 돌아오곤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라고나 할까, 레퀴엠이나 미사곡을 크게 틀어놓곤 하는데,

주로 베토벤의 C장조 미사, 모차르트의 D단조 레퀴엠, 또 포레의 레퀴엠을 번갈아 듣곤 하다,

가끔, 이런 나 자신에 대한 반발로, 9번 합창 교향곡도 틀곤 하지만, 그건 정말로 잠깐.

그런데,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kyrie만 반복해서 틀곤 한다.

그의 死後에 채워진 부분은, 선입견일까,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자신을 위한 것이 될 지도 모르는 곡을 혼신의 힘을 다해 써내려가던 그의 모습,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그 처절한 장면들과 음향이 머릿속에서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실제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아니 그런 의혹이라도 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지만,

푸시킨이 풍문을 바탕으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Моцарт и Сальери’라는 극본(일종의 습작)을 쓰고,

림스키 코르사코프Николай Римский-Корсаков가 이것을 오페라(작은 Singspiel)로 만든 후,

이제는 거의 정설처럼 굳어버린 이야기가 되었다.

 

러시아어 텍스트를 찾아보니, 거의 200년 전 언어, 내 실력으로 읽을 수준이 아니다.

http://rvb.ru/pushkin/01text/05theatre/01theatre/0839.htm

전에 ‘스페이드 여왕’ 때 했던 방법으로 프랑스어를 디딤돌로 시도해볼까, 번역본을 찾아보니,

http://agora.qc.ca/Documents/Wolfgang_Amadeus_Mozart--Mozart_et_Salieri_par_Alexandre_Pouchkine

있기는 있는데, 텍스트가 전혀 user-friendly한 모양이 아니다.

할 수 없이, 효율은 떨어지지만, 영어 텍스트를 찾으니 애들레이드 대학에서 만든 것이 나온다.

하긴, 이곳 역시 내 아주 힘들었던 시절, 반년이란 시간을 보냈던 추억이 담긴 곳.

https://ebooks.adelaide.edu.au/p/pushkin/aleksandr/p98mo/

이제 이 텍스트들을 나란히 블로그에 저장해 놓으면, 지하철에서 좋은 읽을거리가 되겠구나 생각,

포맷 맞추는 작업을 하는데, 계속 이유 없이 인터넷이 끊어지고 파일을 날리곤 해,

(나이 탓일까. 이젠 이런 식의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거의 일상화가 되어간다.)

왜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지? 포기할까 생각 몇 번,

하지만,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 역시 관성의 법칙을 따르다보니,

이 반복되는 텍스트 줄 바꾸기 정리 작업 중에 어느 새 이야기를 다 읽어보게 되었다.

 

 

하긴 천재란 天災란 말도 있지 않은가.

하나의 천재 주위에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는 수많은 사람들....

극은 살리에리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이 세상엔 그래 정의도 없단 말인가? 하긴 저 세상에도 정의라는 것은 없지.

   음악사랑은 내 천성, 어렸을 적 교회 오르간의 그 깊고 웅장한 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흐르곤 했고,

   그 후 ‘놀이’라는 것을 모르고, 음악 이외의 것은 다 하찮게 느껴져, 오직 음악에만 전념해,

   처음 길은 험했으나, 점차 손가락 움직임이 정교해지고, 귀 또한 발달해,

   마치 시체를 다루듯 곡을 해부해, 수학을 풀듯 화음을 분석해냈다,

   창조성 호기심이 발동, 누구도 모르게,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당시에는 감히 영화榮華라는 것은 꿈꿀 생각조차 못했었다.

 

   내 작품에 불어넣은 사상과 소리가 불꽃처럼 타오르기도 하고, 또 연기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하루 종일 먹지도 자지도 않고 내 골방에서 영감의 환희와 눈물을 맛보기 그 얼마였던가.

   글루크Gluck 그 자신이 나타나 그의 음악 비법을 알려주었을 때,

   난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그를 따르지 않았던가?

   난 정말로 지독하게 끈질기게 노력해, 결국 무한한 음악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으니,

   영광의 신이 내게 미소 지었고, 나의 작품은 사람들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난 행복했다. 나의 작품, 나의명성 또 내 주위사람들의 노력과 성공,

   거기에서 우리들 음악세계의 경이로움을 즐겼다.

   난 결코, 한 순간도, 시기심이라는 것을 몰랐다. Never!

   그 유명하다는 사람의 신작 발표 때도, 또 그 누가 파리지앵Parisians을 사로잡을 때도,

   누가 감히 이 살리에리가 자존심이 상해 시기심이 발동할 것이라 말할 수 있었겠는가. Nobody!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 자신만은 그렇지 않아야 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시기한다. 내 자신을 파괴시킬 정도로 마음이 깊이 상해, 시기한단 말이다.

   오, 하늘이여. 정의는 도대체 어디 있는 것입니까?

   어찌 불멸의 신동이 나타나, 그가 이 세상에 빛을 발하게 한단 말입니까?

   자신을 부정하고 음악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며 노력하고 기도하는 나를 누르고 말입니다.

   더구나 생각하는 것도 바보요, 행동까지 경박한 그가 말입니다.

   아, 모차르트여. 모차르트여!

 

그가 모차르트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 언제부터 여기 있었느냐고 묻는다.

모차르트가, 뭔가 당신과 의논할 것이 있어 오던 중,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기에, 

당신을 놀라게 하려 몰래 들어왔는데 들켰다며, 자기가 데리고 온 ‘깽깽이’ 장님에게 들어오라고 한다.

그가 장님에게 모차르트 곡 하나를 해보라 하자, 장님이 돈조바니를 '깽깽'거리고,

모차르트는 그것이 재미있다고 깔깔대며 소리 높여 웃는데,

살리에리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나무란다.

자기는 누가 설령 (살리에리가 아닌) 단테나 라파엘을 패러디한다 하더라도 재미있어 할 수 없다고.

그러면서 그가 장님을 쫓아내자, 모차르트가 쫓겨나는 그에게 용돈을 쥐어주며 자기 건강을 위해 건배해달라고 하고,

당신 심기가 불편하고, 보아하니 시간도 없는 것 같으니, 다음에 오겠다고 하는데,

살리에리가 그를 말리며, 그래 원래 얘기하려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

 

모차르트가 어제 밤에도 잠이 안 오는데,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라, 낮에 그것을 썼다며,

   어떤 젊은이가 사랑에 빠져.... 갑자기 장례식 환영이... 무엇인가 불길한....

한동안 설명 후, 피아노 앞에 앉아 그 곡을 치자, 살리에리가 말한다.

   그래 이 곡을 가져오다, 중간에 술집에 앉아 그 장님의 깽깽이 소리나 듣고 앉아 있었다고?

   맙소사. 모차르트. 당신은 당신자신에게 가치가 없어. You are unworthy of yourself.

   이렇게 대담하고 완벽한 곡을 쓰다니, 당신은 신이야. 그것도 모르다니.

그에 대한 모차르트의 반응,

   천만에, 그럴 리가. 아니 어쩌면 그럴 수도...

어쨌든 '어부인께서' 배고파할 테니 가야한다는 그를

살리에리가 황금사자Golden Lion에서 식사나 하자고 초대하고,

모차르트가 집에 얘기하고 오겠다고 나가자, 살리에리의 독백이 나온다.

 

   나의 사명은 저 자를 멈추게 하는 일이요, 난 이제 그 운명을 거역할 수 없게 되었으니,

   저 자 때문에 우리 모두, 신부도 음악감독도, 또 나의 명성도 다 스러져버릴 것인데,

   저 인간이 계속 살아남아 승승장구 한다면?

  그가 예술의 경지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아니지, 그가 사라지면 예술은 다시 내려앉을 것이요, 더구나 그는 후계자도 없지 않은가.

   자, 모차르트여 제발 사라져다오. 그것도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은 법이니.

   여기 이 이소라Isora의 독약은 내가 지난 18년 동안 지니고 있었던 것.

   내 비록 나에 대한 모독을 깊게 받아들이고, 내 목숨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죽음에 대한 갈증이 나를 괴롭힐 때면 생각하곤 했지. 내가 왜 죽어야지?

   어느 날 갑자기 재능이 찾아오고 영감이 생겨, 내 환희에 잠길 텐데.

   또, 적을 만나면 생각하곤 했지, 이제 더 악한 적을 만날 텐데, 뭘.

   자존심의 최고봉에서 쓰디쓴 모욕이 나를 폭파시켜버린다면,

   너 이소라의 독약이 헛것으로 있지 않았음이 증명될 텐데....

   그런데, 내가 옳았어. 드디어 두 가지를 다 발견했으니.

   이제 나의 적을 찾았고, 새로운 하이든이 나를 환희에 빠지게 했어.

 

황금사자에서의 식사 자리,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음식도 와인도 다 좋은데 왜 아무 말도 않고 찡그리고만 있느냐 물으니,

모차르트가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다가, 사실은 레퀴엠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살리에리가 그 말에 놀라며 묻는다. 뭐? 레퀴엠을 쓴다고? 언제부터?

이어지는 모차르트의 이야기,

   삼 주 전에 어떤 사람이 나를 찾아 왔다는데, 누군지 궁금했고,

   그가 세 번째 왔을 때, 식구들과 놀고 있는 나를 불러내, 나가보니,

   검은 옷을 입고, 내게 공손히 인사하더니, 레퀴엠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사라졌다.

   그 후 그가 다시 찾아온 적은 없지만, 어쩐지 낮이나 밤이나 그가 항상 내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자리에도 마치 그가 앉아있는 것 같고....

살리에리가 그럴 리가 있겠냐며, 어린아이 같은 환상을 떨쳐버리라며,

자기 친구 보마셰Beaumarchais라면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샴페인 뚜껑을 따든지, 아니면 피가로의 결혼을 다시 읽든지 하라며 충고할 것이라고 하자,

모차르트가 자기는 기분 좋을 때 그 보마셰의 곡을 흥얼거리곤 한다며,

그런데 그가 누군가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묻고,

살리에리는 그의 성품으로 볼 때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에 대한 모차르트의 반응,

   사실 그 친구도 당신이나 나나 마찬가지로 천재인데,

   천재와 악독함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니, 그렇기는 하네요.

살리에리가, 그렇게 생각해? 하면서, 모차르트의 잔에 몰래 독약을 풀어 넣는다.

 

모차르트가 잔을 들고,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하모니의 두 아들, 우리의 충실한 우정을 위해 건배”한 후,

피아노로 가 자신의 레퀴엠을 들려주는데, 그가 눈물을 흘리자, 무슨 일이냐 당황해하고, 살리에리는

   이것은 전에 흘린 적이 없는 고통의 눈물인데,

   지금은 마치 상처를 칼로 도려낸 듯, 내가 깊은 의무감을 떨쳐버린 듯, 반가운 눈물이고...

하다가, 상관 말고 계속하라고 한다.

   어서어서 서둘러 내 영혼이 그 소리로 충만하게 해주게나.

모차르트가 모두들 당신처럼 화음의 힘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우리 둘은 선택받은 자들이요, 행복한 ‘게으름뱅이’다. 그렇지? 하다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고, 가서 누워야겠다고 나간다.

 

홀로 남은 살리에리가 생각한다.

   네 이번 잠은 아주 길거야, 모차르트.

   그런데 그의 말이 맞나? 내가 천재가 아니던가?

   그런데 천재와 악독함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천만에, 그렇다면 바티칸에서 사람을 죽인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은 다 바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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