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구토’가 아니다. 이 ‘어지럼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지? 까뮈의 이방인처럼 햇빛이 강해서?
어제 은행에서 받은 예금이자, 그 몇 푼 안 되는 숫자를 봤을 때의 핑그르르 느낌이 아직 남아서이다.
결국 이제 정기예금이란 이자를 받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써버리지 못하게 묶어두기’ 그것인가?
하긴 이자 밖에 기댈 곳이 없는 이 늙은이의 ‘개인감정’을 덮고 생각해보면 억울해할 것도 없다.
금리가 높을 때는 인플레이션도 심할 때니 이자는 많지만 원금의 가치는 그 보다 더 떨어진다는 이야기고,
불경기일 때는 이자는 적지만 원금의 가치도 그만큼 덜 떨어진다는 바람직한 측면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도 어지럼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이자에 연연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젊은이들이여, 이 狂人을 탓하지 마오. 이제 겨우 집 마련했는데, 은행이자 더 내라는 배부른 타령이나 하느냐고?
젊은이들이여, 이 狂人을 이해해주오. 내 한때 그대들처럼 젊은이였고, 그대들처럼 빚에 쪼들리며 살았다오.
아니 한 걸음 더, 다음 월급 들어오는 날까지 며칠 동안은 소금국에 밥 말아먹으며 버티기도 했다오.
그대들에게도 언젠가는 이 늙은이처럼 평생 모은 재산을 은행에 넣고 이자에 목매는 날이 올 텐데,
그때 가서 ‘이 지옥 같은 세상’이라는 저주를 내뱉게 되거든 이 狂人을 기억해주기 바라오.
젊은이들이여. 내 이제 생각을 정했소.
아등바등 이 아파트 부둥켜안고 살다가, 이 세상 떠나며 남은 식구들에게 ‘좋은 일’하는 것도 좋지만,
내 평생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아파트 팔고, 돈을 정기예금으로 묶어두지도 않고, 펑펑 쓰다 가기로 했소.
젊은이들이여, 그런데 걱정되는 것이 있소. 모든 늙은이들이 나처럼 이렇게 미친 생각을 한다면?
쏟아지는 물량에 아파트는 폭락, 펑펑 써대는 老人族 소비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금리가 올라갈 텐데, 이젠 어쩌죠?
물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반가운 현상도 일어나겠지만 말이오.
이런 식으로 가볍게 이야기를 끌며 단선적 생각을 계속할 마음은 전혀 없다.
狂人이 누리도록 허용되는 특권은 시간을 아낄 필요도 생각범위를 제한할 필요도 없다는 것.
돈이 계속 풀리는 현재의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개인 - 기업 - 국가 이들 경제주체의 ‘손익계산’은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다.
우선, 기업의 입장에서는 중앙은행이 돈을 많이 풀어준다는 것은 '틀림없이' 고마운 일이라 생각된다.
연구개발과 투자의 비용이 줄어들고, 또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소비가 살아나야 기업이 살 것 아닌가.
정말로? 좀비기업들이 가격구조를 왜곡시키고, 또 이들이 금융시스템 전체를 서서히 몰락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데?
그건 그렇다고 치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돈이 이렇게 풀리는 것을 반가워해도 되는 일일까?
비록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선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기업이 살아나야 일자리도 생기고 그래야 ‘여력’이니 하는 것들도 생길 것 아닌가?
하지만 잠깐, 조금 더 큰 틀에서 보면 그 밑에 깔린 실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선 그 ‘큰 틀’에서의 진실을 보기위해 하나의 ‘작은 틀’을 생각해본다.
(이제 狂人의 횡설수설이 시작된다. 시간이 아까운 사람들은 이쯤해서 떠나는 것이 좋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에서처럼,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처럼 인간들이 무인도에 표류해,
(통상, 무인도와 유인도의 구별은 그 섬에 식수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구별되는데, 여기서는 그냥....)
(또 그 소설과 희곡에서와는 달리) 이들이 ‘후손을 생산’해 오랜 세월에 걸쳐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자.
(원시 물물교환으로부터 태환 불태환의 과정을 거치는 그런 진부한 화폐의 역사를 말하려함이 아니다.)
이들이 화폐라는 ‘증서’를 교환해가며 경제활동을 영위하는데, 과연 만물의 영장다운 모습이다.
사실, 인간도 이 섬의 동물들처럼 패거리를 지어가며 피 터지도록 싸워가며 ‘자연스런 삶’을 살 수도 있는데,
이들은 그 근육과 머리에 해당하는 ‘능력’을 화폐라는 대상에 투영시켜,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는가.
(이 섬에는 금도 은도 나지 않는다. 따라서 달러는 currency요 금은 money니 하는 그런 구별도 필요 없다.)
그 자손들이 번식하며 이 섬이 하나의 나라 규모로 커지는데, (영국 일본을 말하려함이 아니다.)
문제는 그 ‘증서’가 공정한 체육대회나 경시대회로 실력 가르듯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누구인가 어느 지방 어느 학교 어느 패거리의 성장배경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적당히’ 갈라지고 흐른다는 것.
돌아가는 모양을 곰곰이 생각하던 (요즘말로 개념 있는) ‘새끼돼지’가 현실을 직시하자며,
자기는 의지할 곳 없었는데 늑대는 ‘절대강자’의 힘까지 등에 업고 자랐으니 ‘이 섬은 불공평하다’고 외치는데,
‘늑대’가 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늑대의 입장에서도 불이익이 없어야 그것이 공평한 사회 아닌가?”
(전에 ‘누구’와 평등사회에 대한 논쟁을 벌일 때 나왔던 표현, 사실 그도 ‘늑대’ 기업인이었다.)
‘다수의 공감’을 끌어내려는 이론, 자조적인 숟가락 논쟁 다 부질없는 짓이다.
(버니 샌더스의 열변을 들어보시라.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를 노회한 힐러리 클린턴 옆에 세워놓으면 다른 그림이 보이지 않는가?)
억울하면 힘을 키우고 동지들을 규합해 세상을 엎어라?
(사회주의 역시 결국 ‘동물농장’에서 보듯이.....)
이제 이야기가 ‘중간 틀’로 넘어간다.
이 섬이 바깥세상과 연결되어(제국주의 역사를 말하려함이 아니다.) 다른 나라와 교역을 하게 되었는데,
‘편리성’을 제고하고 ‘위험’을 줄이려, 선물시장Futures Market을 열고 파생상품Derivatives이라는 것을 만드는데,
(인간의 맹점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것이고, 이 ‘생각’이 반드시 옳은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
‘운 좋은 돼지’들도 ‘늑대’들의 이 두리둥실 두둥실 댄스 시스템에 동참하고, 어느덧 투기장이 열리고,
몇몇 돼지들도 늑대의 일원이 되는 ‘기회의 사회’가 열리는 듯 보이는데,
어느 날 갑자기 펑!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건 같은 일이....)
언제나 그렇듯 ‘죽어가는 자’의 소리가 제일 큰 법이고, 또 그 절절한 호소엔 설득력이 있는 법.
(더구나 소위 ‘엘리트’들은 말하는 재주도 뛰어나고, 또 이들에겐 숨겨놓았던 ‘데이터의 寶庫’도 있지 않는가.)
“금융이 무너지면 기업이 무너지고, 기업이 무너지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그러면 ‘분노의 포도’에서와 같은 일이....”
늑대들의 울부짖음에 온 섬에는 공포가 감돌고, 어느새 ‘無腦대중’은 이들의 외침을 ‘이론’으로 받아들이고,
표를 모아야 ‘밥줄’이 끊어지지 않는 정치인들은 이 ‘대중’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모두를 살리기 위해’ 돈을 마구 찍어 이들에게 뿌리며 그 관리를 맡기게 되는데,
(사실 뭐 번거롭게 찍어낼 것도 없다. 그냥 모니터 앞에 앉아 ‘숫자’ 몇 개를 치면 그것으로 끝.)
이 늑대들 이제 살 판 났다. 돈의 pool 그 수영장에서 희희낙락 잔치판이다.
‘모두를 살리려’ 원흉인 ‘금융’을 살려줬는데, 이제 그 원흉이 이 섬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고? 이제 ‘큰 틀’에서 보면 그 모습이 보이게 된다.
육지에서 볼 때, 이 섬은 하나의 경제 주체, 말하자면 주식회사와 같은 것이다.
돼지가 판을 치건 늑대가 주름잡건 이 섬의 자원과 주민들의 경제능력의 합 이것이 이 회사의 시가총액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 회사가 ‘내부사정’으로 대량의 신주를 발행했다. 외부에서 평가하는 기업 가치는 오히려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자본의 증가 즉 增資가 아니라는 것. 액면분할 효과만 내는 주식 수의 단순 증가일 뿐이다.)
섬의 주민들이 쓰고 있는 ‘화폐’는 말하자면 이 ‘회사’의 주식인데, ‘지분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보통 돼지’들은 그렇지 않아도 별로 가진 것이 없었는데, 이제 주가가 떨어진 만큼 재산이 더 화끈하게 줄어든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 狂人의 돼지에 관한 辯, 인류의 문명은 돼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원시인들이 척박한 땅에서도 살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돼지들이 인간이 도저히 직접 소화할 수 없는 것들을 ‘통과’시키면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단백질로 ‘변신’해준 덕분 아니었던가? 돼지야 말로 진정한 ‘변환공장’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제 이 섬의 돼지들은 늑대들의 ‘식품공장’ 역할을 충실히 해낸 셈인데, 아직도 늑대들에게는 할 말이 남아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너희들은 벌써 굶어죽었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사실은 그때, ‘펑’했을 때, 늑대들의 ‘경제적’ 목줄이 끊어졌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때 ‘난리’가 났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난리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것이 미국이라는 섬나라의 지금 모습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어떤 섬’이 아니라, ‘강대한 섬’이라는 것.
우리는 미국을 자본주의의 표상으로 여기지만,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란 탈만 썼다가 사라져버렸듯이,
이미 미국은 진정한 자본주의와는 상관없이 그 탈만 쓴 ‘무늬만 資本주의’ 위험한 체제가 되어버렸다.
‘모두’에게 기회가 있는 그런 국가가 아니라, ‘돈 그 자체’가 모든 것인 그런 체제 말이다.
FED가 아무리 궤변을 늘어놓으며 발버둥을 쳐도, 앞날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비정상적인 상태는 언제인가는 끝나게 되어있다. ‘난리’는 단지 미루어졌을 뿐이다.
(독일에서는 얼마 전부터 두 젊은이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인데, 그 제목은 ‘Der Crash ist die Lösung.’
내 아직 ‘추락만이 해법’이라는 이 책을 구하지는 못했고, 이들의 인터뷰들을 유튜브에서 보는 것이 전부인데,
‘버블 살리기’는 수학적으로도 명백히 불가능한 미친 짓이요 ‘버블 더 키우기’일 뿐이고,
결국 오고야 말 경제적 파탄 모습은 그동안 부푼 만큼 더 비참해질 것이라는 내용.)
‘섬나라’들의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제 이 狂人이 살고 있는 반섬半島의 모습을 본다.
어제 내가 들렸던 그 oo은행의 xx지점의 모습은 그야말로 狂景. 창구직원 뒤에 책상 네 개가 나란히 놓여있고,
그 각각에 중늙은이들이 앉아 있는데,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데 자판 두드리기도 잊은 모양,
손가락엔 움직임이 없었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들 눈에 살짝 경련이 일어나더라. 정말이다.
아마도 희망퇴직의 기회도 마다한 ‘毒種’들에게 내리는 은행 측 復讐의 현장 아닐까 보였는데,
누구를 탓할 것인가. 밥줄 끊어지면 비참하게 되는 저들? 아니면 ‘효율’만을 생각하는 은행?
그런데, 더 큰 충격은 오늘 아침 다른 곳 다른 은행에 가서 본 또 다른 모습.
내 궁금한 것이 창구직원 눈치 보며 오래 붙잡고 있을 사안이기에, 아예 무조건 VIP 라운지로 들어섰다.
닫힌 유리 칸막이 지점장실, 무슨 팀장이라고 붙은 작은 유리방, 그 앞 공간에 깨끗한 데스크가 세 곳 있는데,
내가 들어갔던 그 시간에 팀장 한 사람과 데스크 직원 한 명만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계속되는 그들의 상담,
소리 죽인 텔레비전 화면 앞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狂人의 귀에까지 간간히 들려오는 대화의 내용, 이건 정상업무가 아니다.
가진 자들의 횡설수설에도 가끔씩 웃어줘야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 그 비애의 현장.
난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손님접대’는 끝날 줄 모른다.
중간에 그 두 직원이 밖의 일반창구 쪽으로 갔다 오곤 하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는 그들, 쌀쌀하기 그지없다.
옷차림으로 보나, 안면이 없는 이 狂人의 표정으로 보나, 내가 이곳 VIP는 아닌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기에 그랬을 것이다.
30분이 그렇게 지나고 이제 정확히 35분,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비어있던 데스크에 칫솔을 입에 문 직원이 다가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데,
그의 표정도 로봇 같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발음과 억양 역시 로봇에서 나오는 합성어 같았다.
‘일’을 끝내고 나오는데, 어제 그 중늙은이들의 모습과 오늘 이곳 라운지 귀족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모든 것이 ‘자본’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다루는 자들의 모습,
만일 다른 업종의 어떤 기업이 이랬다면,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았을 것이다.
분하고 슬픈 마음을 달래면서 나오다, 찬바람을 피하려, 근처의의 커피 집으로 들어가는데, Starbucks.
중국인들은 씽빠커星巴克로 부르는 곳? 내 정말 미쳤다! 반섬을 걱정하다 向美國 送金所그 현장으로 들어가다니!
(그러고 보니 이 狂人은 정말로 美親者요 위선자다. 어제는 맥도널드麦当劳에서 먹었으니 말이다.
거기선 話法도 미국식이다. “거스름돈 7,400원이십니다.” “치킨너기트 나오셨습니다.”
더구나, 문앞에 써있던 구호, "새해에 행운하세요!" 이 땅에 이런 말이 있었던가?)
난 잔을 들고 창가에 잡는다. 미국에선 은행원들이 선 자세로 업무를 처리하던 모습을 떠올리다,
창밖으로 줄을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내다본다. 렉서스, 벤츠, 에쿠스, 택시, 베엠베, 택시, 인피니티,
狂人이 넋을 잃고 내다본다, 택시, 제네시스 몇 대, 포르쉐 모델도 세 가지, 마제라티도 봤다.
어쨌든 이 땅의 공장에서 나온 차보다는 이런 차들이 많았다. 훨씬 많았다. 그런데도 불경기라고?
맞다. 그래서 불경기다. 이들은 한半島 경제에는 보탬이 되지 않는, 심하게 말하자면, 叛徒들에 다름 아니다.
이곳은 특성상 늙은이보다 젊은이들이 오가는 곳, 자신의 사업을 키워 이런 사치를 누리는 아직 그런 나이들은 아니니,
‘부모 늑대’가 사원들 몫을 ‘깎고 또 깎아’ 만든 여유로 ‘새끼 늑대’들에게 열쇠를 주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설령 그들이 ‘새끼 사업’을 한다 해도, 그건 대개 ‘애비 사업’과 관련된 곳에 납품하는 회사일 텐데,
그렇다면 그건 더 문제, ‘연줄’없이 오직 실력으로 애쓰는 경쟁회사의 납품기회를 박탈하는 것 아닌가?
이쪽으로 생각해도 저쪽으로 생각해도 어쨌든 이곳엔 ‘새끼 돼지’도 ‘새끼 토끼’도 발붙이기 힘들다는 증거의 현장인 셈이다.
도대체 이들에게도 ‘공정위원회’의 손길이 미칠까?
그렇다. 생각이 자연스럽게 국가의 역할로 넘어간다.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지? 이렇게 돈을 풀고, 나중에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지?
양식 있는 공무원들이 설자리는 없다.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이 ‘政府’라는 시설에 앉아있다.
그들에게 부동산 버블 후유증이니 뭐니 하는 것은 그저 심심할 때 한 번 씩 입에 담는 단어일 뿐이다.
임기가 있는 그들의 행동강령은 하나,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떻게든 미루고 미루다 다음 정권으로 넘기면 되고,
(그 정당 그대로 정권을 잡아도, 주류가 비주류가 바뀌고, 푸른 기와집 또 청사 높은 분의 집무실은 다 다른 사람들로 채워진다.)
그래도 국가부채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텐데.....
천만에, 인플레이션(가능하면 그 앞에 하이퍼-까지) 한 방이면 다 풀린다.
명목임금이 오르면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 그 세입이 늘어나고, (그 임금을 받을 사람이 얼마일까, 그건 다른 문제.)
물건 값이 오르면 소비자들로부터 부가가치세가 더 걷힐 것이고, (경기가 그만큼 살아나느냐 하는 건, 그런 걱정일랑...)
물론 법인세도 더 들어오고, (불황을 버티고 살아남을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걱정까지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
부동산 거래 때 들어오는 양도소득세 또한 높아질 것이고, (거품이 꺼지면 어쩌겠냐고? 쯧쯧, 그런 걱정까지....)
증권거래소에서도 거래세가 들어올 것이고.... (희망이 사라진 사회의 특징, 도박성격도 때로는 미덕이 된다.)
그렇다면 이 狂人이 정말로 미치게 되는 그런 일이 없으려면? 덜 빼앗기기, 그것만이 살길이다.
차는 굴러가면 되고, 스마트 폰은 화면만 나오면 되고, 옷은 춥지만 않으면 되고, 음식은 칼로리만 맞으면 되고....
아끼고 또 아낄 일인데, 위의 ‘섬나라’ 사람들의 화폐가치가 희석된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면, ‘화폐’는 피할 일이다.
(이건 정말 狂人의 생각, 전에 ‘버블붕괴는 모처럼의 기회’에서, 불황 때는 화폐가 왕이라고 했던 것 기억하세요?)
이 狂人은 그 다음에 필연적으로 닥쳐올 인플레이션 대비에 나서려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따라하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이제부터는 틈틈이 은붙이 금붙이들을 사 모을 것이다.(나중에 가짜를 샀다고 땅을 치는 일이 없도록 은행 창구에서만 살 것이다.)
인플레이션에는 부동산이 최고라고? (물론이다. 하지만 작금의 불황은 부동산 狂風 바로 그 거품 때문이란 것을 잊지 마시라.)
현재로선, 비를 피하고 발 뻗고 잘 수 있는 공간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집 사는 것은 거품붕괴 이후다.
이 狂人이 은이니 금이니 타령하는 것은 헷지 차원? (땡! 틀렸습니다.) 다른 미친 생각 때문이다.
주말을 기분 좋게 지낸 어느 월요일 아침, 뉴스에 큰 자막이 뜬다면, 무슨 자막? “화폐개혁”(딩동댕! 정답입니다.)
내가 미쳤다고? 젊은이들이 가는 카페나 식당의 가격표를 보시라. 1.5니 3.4니 하는 것들이 눈에 띄는가?
그것은 달러로 표시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산뜻한 표기법이라고? (천만에.)
이 狂人의 눈에 그것은 ‘화폐개혁’ 후의 가격표로 보인다. (미쳤다고?)
他山之石. 그리스를 보라.
한번 혼쭐난 저들은 이제 은행도 믿지 못해 침대 밑에 현금을 보관한다.
그래, 정부는 가구당 현금과 귀금속 보유상황을 당국에 보고하라며, 형사적 처벌까지 들먹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국가가 위기상황에서 재정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그 상황이라면 우리나라라고 다를 리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선견지명’의 나라, 그런 일이 닥칠 기미가 보이면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할 것이다.
국가 경제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하경제, 탈세를 목적으로 금고에 감추어둔 부유층의 고액권,
이런 것들을 한 방에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데 화폐개혁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물론 그런 의혹이 돌 때마다 그런 고려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발표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 어느 누가 화폐개혁을 준비하고 있다고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금과 은에 대한 이야기.
(유튜브에서 떠들어대는 장사들Gold bulls Silver pumpers의 요란한 수법에 넘어갔다고?
천만에, 비록 이 狂人이 미치기는 했지만, 그냥 맹목적으로 따를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다.)
냉철한 차트 분석 거기에 근거해 내린 결론이다. (狂人의 판단력을 믿는다면, 그는 미친 사람. ㅎ ㅎ)
바닥이 가까워진 것은 여러 정황으로 나타난다. (狂人의 진심으로 다시 한 번, “어린이들은 따라하지 마세요!”)
아무리 저들이 화폐시스템의 붕괴를 막으려 애를 쓴다 해도, (Comex에서 실물인출은 200~300개에 하나 꼴, 이건 정말 투기장!)
언젠가, 위기의식을 느끼는 실수요자들이 본격적으로 실물인출을 시작하면 그 positive feedback의 위력은 가공할만할 것이다.
(미쳤다. 밤새도록 미친 듯이 써내려갔다. 이 狂人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이제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미친 듯이 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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