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mann Hesse (1877 – 1962), Das Glasperlenspiel, 1943
몇 백 년 후 먼 훗날, 그 훗날 사람들이, ‘오래 오래 전’에 살았던 요제프 크넥히트Josef Knecht의 기록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 크넥히트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보다는 ‘훨씬 후’의 사람입니다.
이 시대 유럽에서는 종교가 제 기능을 잃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문화라는 것이 몰락해버리고 인성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죽음 또 무정부 상태에 대한 공포를 자동차 달리기, 카드놀이, 퍼즐풀기로 달래는 것이 고작입니다.
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서, 진리와 권리, 이성, 질서, 새 출발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은 커져만 갑니다.
이런 사회를 우려한 ‘아침의 나라’ 사람들의 주도 하에 카스탈리엔Kastalien이란 특별지역이 태어납니다.
‘정신적 삶’을 추구하는 교육州 성격으로, 여기에서는 ‘기술’이나 ‘경제활동’이 극도로 억제됩니다.
‘고매한 지식인’들이 모여 사는 이곳 카스탈리엔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소년들을 위한 기숙학교 발트첼Waldzell을 운영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유리알 게임의 내용을 심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유리알 게임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단지, 고대 중국의 벽화를 보면, 그런 유사한 형태가 있다고 합니다.
게임의 유래는 이렇다고 합니다.
쾰른Köln의 발명가 바스티안 페로트Bastian Perrot가,
일체의 문자나 기호를 쓰지 않는 수학과 음악을 결부시킨 게임을,
갖가지 크기와 빛깔과 모양의 유리구슬들을 배열하여 놓는 방법으로 만들었는데,
그 게임 룰도 오랫동안 엄한 훈련과정을 거쳐야 터득될 수 있을 정도로 어렵고∙∙∙∙∙
(소설의 성격상, 이야기는 이어지지만, 점점 더 애매하게 흐릅니다.)
그저 원칙적으로만 말하자면,
이 게임이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과 정확성을 아우르기’이고,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토픽들을 심도 있게 연결해가는 이 게임의 성격 상,
문학, 음악, 예술, 철학, 과학, 역사, 전 분야에 걸치는 깊은 지식이 필수적입니다.
속세와 격리된 이곳에서는,
게임의 전통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도록,
최고 엘리트들을 뽑아 금욕주의적 분위기 하에서 엄격하게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그 모든 비용은 정부로부터 제공됩니다.
이곳과 가톨릭 사이에 교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와 상관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서의 최고의 가치 또 성취는 ‘유리알 유희’ 그 자체입니다.
‘유리알 유희 문화’는 요제프 크넥히트가 최고명수Magister Ludi였을 때 절정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크넥히트(Knecht, 의미로는 하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어쩌면 부모를 일찍이 잃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주 어린 나이에 관리들이 그를 싼 값에 빼어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12살인가 13살 때 시골의 라틴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우연히, 음악대가Magister Musicae의 눈에 띄었고, 그래서 17살 때 발트첼의 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크넥히트는 이 학교에서 플리니오 데시뇨리Plinio Designori랑 사귀게 됩니다.
정식학생은 아니고, 유력정치가인 아버지 힘으로 들어온 일종의 ‘방문 학생’인데,
여기 사람들이 ‘상아탑에 갇힌 거세된 꼭두각시’들이니, ‘정열이 사라진, 영원한 아이들’이니 하며 비난해,
골치 아픈 존재입니다.
24살 때 크넥히트의 교육은 끝나고, 음악장인Musikmeister이 주최한 화려한 의식을 통해 지도자의 일원이 되는데,
마리아펠스Mariafels 수도원에서 ‘유리알 유희’의 고수를 보내주기를 간청해,
그곳으로 파견되어, 수년간 야코부스Jakobus 신부와 교분을 쌓게 됩니다.
크넥히트는 이 명망 높은 역사학자와의 논쟁을 통해, 카스탈리엔의 유래와 존재가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가 40살 되던 해, 유리알 유희 최고명수 토마스 폰 데어 트라베Thomas von der Trave가 별세 해,
크넥히트가 마기스터 루디Magister Ludi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때부터 ‘개인 크넥히트’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는 프리츠 테굴라리스Fritz Tegularis라는 뛰어난 게임 장인과 사귀게 됩니다.
감정불안을 겪는 그는 ‘진정한 바보’로 행세하며 남과 어울리기를 거부하는 기인,
그는 이 사람을 통해 카스탈리엔에 존재하는 위험성도 알아차리게 됩니다.
어느 날, 옛 친구 데시뇨리가 정부 공식 대표단의 일원으로 발트첼을 찾아옵니다.
그는 집권당 당수의 딸과 결혼해 중요인물이 되어 있습니다.
크넥히트는 그를 통해 이 특별구역 밖 세상의 실상을 배우게 됩니다.
데시뇨리가 집권한 후, 이 나라의 수도로 그와 그의 가족을 방문하곤 합니다.
요제프 크넥히트가 마기스터 루기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청원합니다.
사실, 이것은 규정에 어긋나는 행위, 하지만, 그는 자기의 ‘가르치는’ 재능을 활용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를 밑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는 집의 다락방에 갇힌 현자에 비유하면서,
이제 머지않아 ‘동쪽’으로부터의 위협으로 전쟁이 발발할 텐데,
그렇게 되면 정부는 유리알 게임을 한낱 사치로 여겨, 카스탈리엔과 지원을 끊을 것이고,
결국 유리알 게임의 존립자체가 위협받게 되므로, 자기가 바깥세상 교육의 일익을 맡아야 한다는 이론을 내세웁니다.
예상했던 대로, 그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크넥히트는 이번엔 자신 스스로 변론에 나서,
여행을 하기 위해 마기스터의 자리를 내어놓아야겠다고 선언합니다.
또, 최고 지도자인 장인 알렉산더Meister Alexander를 찾아가,
자신의 행동은 자의적인 것도 불충한 것도 개인적 포기도 아니고,
역사의 변천을 볼 때,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적 수순이라고 설득합니다.
자기는 도피자가 아니라 적극적 봉사자로서의 소명을 받아들이고 싶다면서요.
그가 첫 번째로 맡은 일은 폴리니오의 아들 티토Tito에 대한 교육입니다.
아이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티토를 데리고 산속의 오두막집으로 들어갑니다.
크넥히트는 몸이 아픈 것을 느끼지만, 그것을 남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티토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광란의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들킨 티토는 멋쩍어져서
크넥히트에게 내기 수영을 제안하고, 제자를 실망시키기 싫은 스승은 그러자고 합니다.
물이 아주 차갑습니다.
앞서던 티토가 뒤를 돌아보니 스승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가 가라안고 있습니다. 티토는 기지맥진 상태로 스승을 끌고 나옵니다.
이제 티토는 이 스승 크넥히트로 인해 자기 운명이 크게 변할 것을 직감합니다.
*********
이야기는 여기에서 ‘더 이상은 쓸 수가 없다’며 중단되고, ‘세 개의 삶’이라는 ‘전설’로 이어집니다. *********
그 하나는, ‘수천 년 전, 여인들이 다스리던 시대’의 ‘비를 만드는 사람’에 관한 내용입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가던 마술사가 질시와 모함에 걸려 괴로워하다,
자기 스스로를 기우제의 제물로 바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은둔 수도사 요세푸스Josephus에 대해서입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의 참회를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고해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그런 사람을 찾아 나서, 사방을 헤매다가,
결국 한 사람을 찾기는 찾았는데, 그 역시 자기처럼 자신의 고해를 들어줄 사람을 찾던 중이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도의 정통왕자 다사Dasa가 이복형에게 왕위를 찬탈 당해, 목동으로 변장해 숨어사는데,
숲에서 요기yogi를 만나게 되고, 그처럼 마음의 평정을 얻기 원하지만 여의치 않자,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는데, 이 여인이 왕과 불륜을 저질러,
그가 이 왕(자기 이복형)을 죽이고, 다시 요기를 만나, 마야Maya의 영적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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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리알 유희’는 헤르만 헤세의 마지막 작품으로,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썼는데,
이 소설이 노벨문학상 수상의 절대적 결정요인이었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이 작품을 이렇게 본답니다.
원래는 이 기우사 -고해자 - 결혼 - 마기스터 루기,
이 ‘네 개의 삶’을 동격으로 어우러지는 그런 이야기로 구상되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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